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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4년 05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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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43쪽 | 424g | 153*224*20mm |
ISBN13 | 9788989351559 |
ISBN10 | 8989351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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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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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나간 청춘은 한 편의 시와 연결되지 않는다. 아쉽게도 내 인생의 곳곳에는 아무것도 숨겨져 있지 않아 20살의 슬픈 이야기와 시가 연결되지 않는다. 다행히 코 끝이 시린 겨울날에는 가요 몇곡과 별 쓸데 없는 장면들이 떠오른다. 아스팔트 도로 위를 달리는 자전거를 보면 고등학교 시절의 철 없던 때가 생각나기도 한다. 50주년 광복이었으니 고1, 고2였을 것이다(고3 이었나?).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전주에서 서해안으로 향했다. 이런 청춘에게 계획이 있을리 없다.
어제 거나하게 취한 우리들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여행을 생각하다 그 자리에서 서해안 자전거 일주를 떠올리고 다음 날 아침 출발하였다. 50주년 광복이라 전봇대에 널려 있는 태극기는 우리에게 독립을 빼앗기고 우리 가방 위의 속국이 된다. 한 친구는 자전거가 없는지라 동네 자전거 가게 아저씨에게 외상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왔다. 그 대단한 친구는 험난한 비포장 도로까지 달려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지 싸이클을 타고 온다.
우리는 무조건 달리기 시작한다. 아스팔트가 내뿜는 입김과 페달을 밟으며 느끼는 맞바람이 서로 싸우기 시작한다. 우리에게 네편 내편은 없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페달을 밟아야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맞바람이 아스팔트 입김을 쳐부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고생 끝에 우리는 서해안에 도착해서 남들이 내지 않는 비싼 자리세를 어떤 아저씨에게 기분 좋게 주었다(쉽게 말하면 사기 당한 것이다). 우리 고딩들은 술을 마시며 밤을 지샜다. 다음 날 아침 어차피 계획에 없던 여행이었느니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다 자란 성인의 몸은 엄마가 보고 싶었나 보다.
우린 지도를 꺼내 들고 다시 고향으로 향했다. 불과 24시간만에 이렇게 항로를 수정할 수 있는 우리에겐 역시 나약함만 남아 있었나 보다. 한 현명한 친구가 우리의 길을 리드했다. 그는 두 갈래길 중 과감하게 아무도 가지 않은 그 길로 우리를 인도했다.그를 신뢰하지 못했지만 별 생각 없는 우리는 페달을 밟는다. 돌아올 수 없을 만큼 길을 달렸을 때 우리 모두는 깨달았다. '이 길이 아닌가베. 아까 그 길인가베' 우리는 할 수 없이 한 친구의 고향집으로 행선지를 옮겼다. 정읍으로 향하는 그 길 속에서 우리는 말이 없었다. 눈물을 흘리며 살끼리 맞부딪혀 쓸린 샅과 엉덩살을 걱정해야만 했다. 고통 속에서 우리는 그 친구집에 도착해서 건성으로 인사하고 그 집의 반찬들과 가난한 어미의 쌈짓돈을 강탈하였다.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세우고 우리는 동물의 허기진 배를 채웠다.
이미 어두워진 어둠 속에서 후레쉬등이 우리를 비추었다. 숙직하고 있던 그 학교의 선생님은 우리를 빼꼼히 쳐다 보았다. 우리는 순간 이 곳에서 나가달라는 속마음을 읽었지만 갈 수 없었다. 그 선생님은 갑작스럽게 표정을 바꾸며 우리를 환하게 맞았다. 10여년이 지난 세월을 회상해보면 그 모든 세상의 호의는 우리가 전봇대에서 훔친 태극기 때문이리라. 우리 모두의 가방에는 태극기가 꽂혀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인정할 수 없겠지만 태극기를 짊어진 우리가 대한민국을 짊어질 청춘이라 생각했으리라.
힘겹게 여행을 마친 우리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았다. 모든 일에 마무리가 있듯이 우린 결산을 하여야 했다.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우리의 손놀림은 바빴다. 난 고스톱판에서 모든 돈을 잃고 한참을 자고 일어났다.
나의 청춘은 계획 없던 그 방황에서 시작되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내가 지혜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내 작은 역사와 시 한편을 꿰어낼 수 있었으리라. 행인지 불행인지 난 기억을 하지 못한다. 불과 1주일 전의 말다툼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나에게 청춘을 과거를 기억해 내라고 명령하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 처사이겠는가? 이제 청춘을 넘어서 나의 기억은 기억될 수 있는 그들과 함께 하리라. 기억이 과거를 추억하여 역사를 써주길 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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