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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6년 07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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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42쪽 | 590g | 148*210*30mm |
ISBN13 | 9788932017150 |
ISBN10 | 8932017158 |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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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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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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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1학년 시절, 5,6학년의 키 큰 형들을 보면 나는 얼마나 더 자라야 저만큼 클까 안달했었다. 중학생 때는 콧수염 거뭇한 고등학생들은 이미 어른들이었다. 이십대의 나이에 바라보는 삼십세는 많은 것을 배우고 갖춘 어른, 기성세대였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느끼게 된다. 내 마음 속에는 1학년 때부터 조금도 자라지 않은 어린애가 살고 있고, 서른 아니라 마흔이 되어도 새로운 거 보면 신기하고 갖고 싶은 거 못 가지면 속 상한 것 다 마찬가지이다.
"생속이다"라는 말이 있다. 생나물, 생고기와 마찬가지로 속마음이 여리고 푸릇푸릇하고 민감하다는 소리이다. 생속은 나이가 들면서 과일이 익듯 익어 삭은 속이 되는데, 그러기 위하여 고통의 세례를 거쳐야 한다. 고통 중에 제일의 고통은 역시 내가 사랑하는 여인, 남자, 그리고 아이들이 속을 썩이는 것이다. "내가 시방 내 속이 아니여 이눔아."하고 등짝을 퍽 때리고 싶어도 동시에 사랑스럽고 가여우니, 이리하여 속이 푹 곪고 삭아서 익은 속이 된다. 이것은 누구나 겪기 마련인 것이고 어찌보면 잘 삭을 수 있는 것은 복받은 거다. 그런데 제대로 고통의 세례를 겪지 않아 생속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꼰대들이 있으니 제때 익지 못한 늙은 풋과일은 여럿에게 민폐를 끼치고야 마는 것이다.
남성에 비하여 여성은 일단 외모로는 많은 변화를 거치는 것 같다. 소녀와, 여인과, 아줌마와 할머니의 변화는 소년,청년,중년,노년 남성보다 더 드라마틱해 보이니 이것은 아마도 다른 성의 외모에 대한 나의 감수성이 더 민감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초경과 결혼, 임신-출산-양육, 폐경을 거치는 여성의 육체가 남성보다 호르몬 변화의 영향을 더 많이 받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혹자의 의견에 따르면, 미래인류는 보다 더 어린아이같아질 거라고들 한다. 일단 영양상태가 좋으며 육체적 과부하가 적으니 얼굴에 주름살이 적고, 마음은 생속을 더 오래 가질 수 있을 것이고, 세상과 학문에 대한 공부가 많으면 사고가 합리적이고 여유있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동의한다. 과거의 남자배우들은 우락부락한 남성미를 자랑하였으나 요즘의 배우는 남녀 모두 선이 곱고 동안이며 어여쁘지 않은가?
정이현의 소설에 나오는 세 명의 여성 또한 마찬가지라, 재인,은수,유희 각기 성격은 조금 달라도 대체로 소녀의 마음을 가진 채 결혼이라고 하는 삶의 마디 앞에 서서 고꾸라지고 아파하고 외로워하고 슬퍼한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시간은 줄기차게 흐를 것이고, 어머니의 삶을 살아가든지 아니면 솔로부대의 최전선을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있을 터, 그러나 정이현의 주인공들은 그 미래를 찬찬히 살피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외로움과 자기연민에 빠져든다. 이럴 때 우리는 인간적이라고 하지 않는가?
미래는 지나고 나면 그다지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 미래라는 것이 내가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막무가내로 내 삶으로 밀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순간을 선택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감정이란 나와 남의 경계에서 생겨날 수 밖에 없다. 평생을 먹을 것 천지에 둘러싸여 꼬박꼬박 졸며 사는 팬더나 나무늘보가 아닌 이상,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판돈을 걸고 내기에 뛰어드는 것 이외의 길이 있겠는가.
결혼와 남편이라는 괴물에게 데이고 도망나온 재인공주. 쇼핑하듯 꿈을 고르고 가치와 가격을 끝없이 재보는 유희장군. 그리고 '나는 잘난 것 하나도 없는데 남자가 자꾸 따르네' 수인양. 자자, 정이현 작가님. 순정만화 주인공들을 30대의 나이로 높여서 서울 바닥에 가져다 놓았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독자로 하여금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내고 같이 슬퍼하고 기뻐하게 해 놓은 것이 이야기꾼의 할 바 아니겠습니까? 드라마작가의 작업이 인문학자의 작업보다 가치 없다고 누가 감히 말하겠습니까?
학교 앞 문구점에 파는 500원짜리 반지도 핑크빛 보석함에 넣어두는 우리 딸내미. 자그마한 삶의 여정도 아름답게 포장하여 판매하고, 또 이를 평화롭게 소비하는 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세상에서, 가벼운 아침드라마 한 편은 또한 즐거운 소일거리가 아니겠습니까. 저야 뭐 연애소설보다는 치고박는 무협지를 더 좋아합니다만.^^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었다. 주인공에 감정이입도 잘 되고 보면서 웃기도 하고 흥분을 하기도 했다. 한국적 사회의 특성, 30대라는 나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고려되는 각종 계급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조건들을 우울하지만 담담하게 다뤘다. 보는 내내 깊이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치부를 들킨 듯 쓰리고 아팠다. 3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번 쯤 해보지 않았을까?
지극히 현실적인 듯 보이는 이 작품은 그러나 환타지다. 미국의 밝고 샤방한 칙릿이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먹물을 좀 먹고 우울과 사색이라는 걸 바르면 이런 글이 나오지 않을까.
만약 김영수가 문제가 없는 사람이어서 은수가 그대로 결혼을 했다면 그녀는 과연 행복했을까? 특별한 문제가 없으니 재인이처럼 이혼도 못하고 아마 또 그럭저럭 꾸역꾸역 살아야 했을지도 모르는 거다. 마지막에 떠밀리듯 창업을 하고 독립을 하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보다보다 이렇게 답답한 애는 또 처음이다.
그래도 32살이면 어른이고 사회생활을 8년이나 했는데도 불구하고 남한테 보호받고 보살핌을 받고 싶어한다니........ 친구가 이혼을 했는데도 결혼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한다는 건 좀 심하지 않나? 평범한 여자라면 다들 한번 씩은 하는 생각이라지만 누군가에게 구원받고 싶다는 거 이거 신데렐라나 백설 공주 콤플렉스 아니야? 내놓고 말하기 쪽팔린 생각이다.
나는 결혼에 대해서 상당히 회의적이다. 물론 둘이 같이 산다는 사실 자체에 거부감이 드는 건 아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외로운 존재고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같이 산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현대의 결혼은 두 사람이 각자에게 서로의 짐을 떠넘기고 사회가 만들어준 짐을 하나씩 더 지고 사는 거 같다. 사회나 제도를 만들 때는 분명히 더 편하고 행복하게 살자고 만든 걸 텐데 이제는 주객이 전도되서 사람들은 사회나 제도의 눈치를 보면서 서로를 착취하면서 살고 있다.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구조나 사회가 개인의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과감히 내려놔야 하지 않을까? 물론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사회에서 조장한 30대 여성의 위기감, 남들에게 소개시킬 때 쪽팔리지 않을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강박관념. 사회적 체면과 시선, 여러 가지 방식으로 무의식에까지 각인된 각종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
그 때문에 여자가 남자를 변화시키려는 건 자신의 자존심 때문이라는 유준의 이야기는 참 가슴에 와닿았다. 자기 남자친구가 다른 사람의 남자친구보다 조건이 쳐진다고 느껴지면 열등감을 느껴서 남자를 볶는다는건 자신의 인생을 친구의 인생과 비교한다는 거다. 과연 행복이라는게 객관적으로 비교가 가능한가?
물론 나도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한건 아니었다. 살다보니까 내가 맘대로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더라. 바뀐 나 때문에 상대방이 바뀔지도 모르고 혹은 그 바뀐 나에 맞는 다른 사람이 나타날지는 그 다음 일이다. 옆에 있는 상대방의 존재가치는 허영의 충족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으며 서로의 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아픔을 공유하고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것으로 옆에 있는 사람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나이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불행해진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마치 과거의 내 잘못들을 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혹시 내가 또 이런 실수를 저지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마저 들었다.
사람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 옆에 있는 누군가는 떠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건 아픈일이다. 때로는 나도 부정하고 싶다. 하지만 나를 위로 할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고 내가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도 나 자신이다.나머지 관계는 그 다음문제다. 부모든 남편이든 애인이던 자식이던 아무리 죽고 못 살 것처럼 굴어도 내가 아니면 결국 남일 뿐이라는 서늘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그러니 30살이고 40살이고 나를 사랑하면서 열심히 살자. 나이에 얽매여, 사람들의 시선에 얽매여 나를 버리지 말자. 언제나 하루는 24시간 똑같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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