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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7년 0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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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22쪽 | 322g | 132*224*20mm |
ISBN13 | 9788937461385 |
ISBN10 | 89374613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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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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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는 도시들을 생각했다. 내 기억 속의 도시들을 떠올렸다. 내가 살았던 도시들, 내가 여행했던 도시들. 도시는 삶의 시작과 끝이 무한히 반복되어 현재와 과거와, 혹은 미래의 무수한 삶이 건져 올린 기억과 욕망의 자국들로 빼곡하게 채워지는 공간이다. 도시의 연기, 도시의 바람, 도시의 안개, 도시의 온도, 그 모든 것들이 과거의 울림이자, 미래를 여는 빛이다.
소설이라는 장르 속에서 공간은 언제나 배경이었다. 배경 속에서 변화를 겪으며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주체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다. 감동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배경과 인물이 바뀐 느낌이다. 안과 밖이 바뀌듯 배경과 중심이 바뀌었다. 도시는 배경이 아니라 작품의 주인공이다. 인물은 배경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위해 존재한다. 제국의 황제 쿠빌라이 칸과 도시를 여행하는 마르코 폴로다. 폴로가 칸에게 그가 여행한 도시를 묘사한다. 탄생과 발전과 쇠퇴 그리고 명멸하여 폐허로 남겨지는 숱한 이야기들을 엮어가고 감동을 일으키는 것이 도시이다. 책에서 묘사되는 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보이지 않기에 마치 손에 잡힐 듯 더욱 선명하고 생생하게 상상 속을 신비의 세계로 가득 채운다.
쿠빌라이 칸은 중국과 금나라, 거란족을 정복하여 몽골제국을 확장하고 원나라의 초대황제가 된 칭기스칸의 손자이며, 마르코폴로는 베네치아 공국에서 태어나 우리에겐 <동방견문록>으로 알려진 탐험가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소설이라고는 볼 수 없는, 그러나 소설 말고 다른 어떤 장르에도 적합치 않으므로 그냥 소설일 수 밖에 없는 소설이다. 이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탈로 칼비노보다 더 재능있는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싶을만큼 이 책은 형식과 내용에서 새롭다.
실제로 쿠빌라이 칸은 역사 속 제국의 다른 정복자들이 대량학살과 약탈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과는 달리 정복 후 살육과 약탈과 폭력을 금지시켰고 피정복민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위키 코리아:포제어-쿠빌라이 칸 2015-10-27자 참조). 황제 칸은 패전을 거듭하며 저항했던 적들이 무너져내린 제국의 영토의 구석구석을 서양의 탐험가 마르코 폴로에게 듣는다. 각 도시들은 칸과 폴로의 대화로 이루어진 장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여러 개의 도시들이 섞이어 위치한다.
다시 우리의 인터넷 만물박사 위키의 설명을 빌리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편견과 허구가 많다는 비판(특히 중국 학자들로부터)을 받는다. 동방견문록의 내용과는 달리 실제로 중국 문헌에는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을 알현했고 황제의 칙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마르코 폴로가 칸에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 전체를 구성하는 55개의 가상의 도시들이 순전히 구라라는 사실이 묘하게도 실제 인물에 얽힌 허구들과 일치하는 센스를 발견할 수 있다. 마르코 폴로가 베네치아라는 매우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지구상 유일무이한 도시에서 왔다는 사실도 서술자로서의 지위를 돋보이게 한다. 베네치아는 과거의 기억과 영광이 주민들의 현재의 삶을 책임진다. 수백개의 운하로 이루어진 물골목을 누비다보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도시가 상상의 공간인 듯 환상적인데, 이러한 베네치아의 정체성은 폴로가 전하는 가상의 도시들을 닮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동방에 도착한 이 베네치아인은 그곳의 언어를 전혀 몰랐기에, 언어 이외의 기호, 몸짓과 감탄사, 동물 울음소리, 그리고 가방에서 꺼낸 각종 물건들로 도시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쿠빌라이가 소중하게 생각한 것은 그가 전하는 정보 주위에 남아 있는 공간, 말로는 채울 수 없는 여백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은유와 암시를 통해 마르코의 언어를 배워가는 황제는 완벽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자 오히려 그런 의사소통이 더이상 즐겁지 않다. 언어는 도시의 중요한 요소들을 열거하는 데 유용했지만 그들의 삶을 표현하는 데는 부족하다고 느끼고, 그들은 다시 소리 없는 몸짓으로 된 의사소통을 한다.
'제국 자체의 무게가 제국을 짓누르고 있어(p94)'. 지나치게 성장한 칸의 도시는 풍년이 들어 창고마다 곡식이 넘쳐나고, 불어난 강물들은 왕궁 건축 자재들을 운반하고, 노예들은 산더미같은 대리석을 옮기지만, 칸은 대지와 내리누르는 제국의 무게가, 그 뒤얽힌 재화와 교통수단과 장식과 의식이 복잡함이 무겁다. 그는 그물처럼 투명하고 잎맥 같고 손금 같고, 세공품 같은 도시를 꿈꾼다. 그가 담뱃대를 입에 물고 꿈꾸듯 몽환적 표정으로 폴로의 도시들을 경청하는 이유이다.
도시가 시작될 때 그 태초의 바람과 필요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도시는 세월의 풍화를 겪어오면서, 수없이 많은 변화를 겪으며 독특한 모습으로 형태를 갖춘다. 이탈로 칼비노가 상상한 도시들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도시들이다. 디즈니랜드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멀고 아득한 상상으로만 가능한 도시다. 그러나 그 환상적 풍경에는 실재가 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렇다. 읽으면서 조금이라도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 도시들은 상상의 도시들이면서 결국 실재하는 도시들이라는 사실이다. 존재하는 모든 도시는 칼비노가 상상한 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속성을 조금씩 내포한다.
사실 제노비아를 행복한 도시로 분류해야 할지 불행한 도시로 분류해야 할지 결정하는 일은 무의미합니다.... 여러 해가 흐르고 변화를 거듭해도 욕망에 자신들의 형태를 부여하기를 계속하는 도시와, 욕망에 지워져버리거나 욕망을 지워버리는 도시, 이렇게 두 종류로 나누는 편이 더 의미가 있습니다. (p48)
지속되는 도시, 확장되는 도시에서 도시를 빠져나오는 것의 불가능함과 도시를 들어가는 것의 불가능함은 오늘날 서울의 모습이다. 뉴욕이기도 하고 런던이기도 하고 파리이기도 하고 토쿄이기도 하다. 번영 뒤에 남겨진 파괴와 보존과 보호에 대해서도 많은 단서를 남긴다. 폴로가 묘사하는 모든 도시들이 더할 수 없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매력적이었지만, 내게 가장 눈물겨운 도시는 죽은 자들이 사는 도시였다.
어떤 도시를 갔는데, 그 도시들에 죽은자들과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살아간다면, 그곳에 머물고 싶을까 떠나고 싶을까. 아델마는 죽은 자들의 도시다. 그 도시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생전의 부모이고 생전의 조부모이고 우연히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은 죽은 군대 동기이거나, 알고 지냈던 어부이거나 사랑에 미쳐 자살한 여자이거나 한다면. 다른 모든 도시들을 하나씩 통과하면서는 느낄 수 없었던 그리움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죽은 자의 외형을 똑같이 닮은 그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 그곳에서 생전의 내 할머니 모습과 한창 때의 내 아버지, 어린 시절의 친구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면 바라볼 수 잇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리라. 그런데 이 도시가 기다리고 있던 반전은 화자인 마르코폴로, 도시의 방문자가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가 아는 다른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생각한다. 이것은 나 역시 죽은 사람이라는 뜻이고, 저승세계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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