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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7년 07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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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95쪽 | 459g | 153*224*20mm |
ISBN13 | 9788984312357 |
ISBN10 | 89843123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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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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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30일 ~ 2024년 10월 31일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9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지하철을 탄다. 그 사각의 공간, 불이 환하다. 자리에 앉는다. 눈을 들면 마주볼 수밖에 없는 긴장의 공간 사이로 초점 잃은 눈들이 허공, 어느 한 점씩 세 들었다. 책을 꺼낸다. 무언가를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허공에서 시선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은 위안이다. 낡아빠진 위안들이 무가지라는 이름으로 선반 위에 걸려있다. 그것은 흡사 명태. 늙은 사내가 그것들을 걷는다, 말없이. 책을 본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제목 아래로 벌거벗은 몸에 지하철 노선을 새긴 남자가 가드를 올린다. 그이의 가드를 뚫고 책장을 넘긴다. 덜컹덜컹, 덜컹덜컹. 지하철이 달린다.
김하진. 덜컹덜컹, 덜컹덜컹, 뉴욕 지하철에서 깬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지갑 속에 들어 있는 신용카드로 자신의 이름을 짐작할 뿐, 함께 들어 있던 사진 속 여자와 꼬마애가 가족인지도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김하진, 말이 많다. 그는 책 속에서 뛰쳐나와, 마치 싸구려 외판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어댄다. 악몽에 대해서 기억상실증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는 의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허나 그의 쉴 새 없는 주절거림이 어쩐지 슬프다. 그는 손에 승차권 하나를 쥐어준다. 뉴욕 지하철 승차권. 그는 또 말한다. 승차권을 받게 되면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한 남자가 목수가 된 딱한 이야기를, 지상으로만 나가면 정신을 잃고 다치기에 지하에 갇혀 살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처량한 이야기를, 지하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사내의 기막힌 이야기를, 그저 아들의 생일을 챙겨주고 싶었을 뿐인 아빠의 슬픈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곤 속삭인다. 어쩌면 이 이야기들은 지하철 1구간 표 값의 가치도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선택은 자유라고. 누군가는 그 승차권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받는다. 그리고 김하진은 승차권을 받은 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김하진이 들려주는, 아니 작가인 서진이 들려주는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는 종래 한국 문학에서 볼 수 없었던, 그가 등장시키는 빨간 모자를 쓴 난쟁이처럼 이질적인 이야기다. 다른 모든 이야기들이 종점에서 종점까지, 1구간의 단일 노선이었다면 서진의 이야기는 서너 번쯤 환승을 해야 하는 복잡하고 낯선, 그럼에도 흥미진진한 복합 노선이다. 잘 만들어진 노선표처럼 어지러운 환승을 도와주는 것은 서진이 빈번이 사용하는 ‘Fade In’과 ‘Rewind’ 등의 영화 용어들이다.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이 용어들은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풀어주고, 그리하여 독자들을 안전하게 최종 목적지까지 안내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서진의 이야기에는 종착역이 없다는 사실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독자들은 끊임없이 되돌리기를 해 다시 첫 장으로 넘어가야 한다. 물론 서진이 자신의 소설에서 했던 절묘한 비유처럼 독자들은 덜 감긴 비디오테이프를 앞에 두고 ‘Rewind’ 버튼을 눌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하는 기로에 설지도 모른다. 물론 선택인 개인의 몫이다. 그렇지만 서진의 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는 몇 번을 되돌려서 읽어도 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 소설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다. 오버그라운드에 남아 있지 못한 모든 것들이 스며드는 언더그라운드처럼 악몽과 기억상실증, 희망과 절망, 유머와 공포, 냉소와 연민, 폭력과 희생, 도망과 죽음이 가득하다. 모든 요소들이 한겨레문학상의 심사위원들이 칭찬해 마지 않은 ‘박진감 있는 서사의 전개’속에 적절히 들어가 있다. 또한 이 모든 요소들이 잘 조제된 환각제처럼 화학반응을 일으켜 독자들을 절망과 악몽이 넘실거리는 가득 찬 공허(언더그라운드)로 인도한다. 진정, 다시 깨기 싫은, 황홀경이다.
작금의 문학 위기론은 서사의 부재에 기인한다. 철학은 있으되 서사가 빠진 소설들은 뼈만 앙상한 생선처럼 독자들의 천대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새로운 젊은 작가들은 신묘한 ‘이야기’로 가득 찬 소설을 만들어 내고 있고, 이제 서진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다년 간 ‘언더그라운드’에서 내공을 닦은 그의 등장은 분명 신선한 바람이 될 것이다. 그가 온라인상에서 남긴 몇 몇 작품들에 등장한 요소들, 마술과 난쟁이 그리고 장르문학적인 냄새를 풍기는 장치들은 이번 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에서도 유효하다. 이는, 서진이 앞으로 펼쳐낼 이야기도, 충분히 매력적이며 기기묘묘하고 신통방통하리란 기대를 갖게 한다. 일찍이 그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본 온라인상의 팬들이 열광한 것이 바로 그의 기기묘묘하고 신통방통한 이야기들 때문이었으므로.
책장을 넘기다, 순간, 눈을 든다. 지하철은 어둠 속을 달린다. 덜컹덜컹. 문득 불안하다. 책에서처럼 이것은 악몽이 아닐까, 주위를 둘러본다. 무심한 사람들이 무심하게 앉아 있거나 혹은 서 있다.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린다.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린다. 전자 피아노 소리. 창밖으로 언뜻 글자가 스쳐 지난다. Prove Yourself. 흡사 코니아일랜드에서 불어오기라도 한 듯, 한 줄기 바람에 짭짤한 바다 냄새가 섞여 있다. 눈을 감는다. 모든 것은 악몽일 것이다. 눈을 뜨려 한다. 셋을 센다.
하나,
둘,
호흡을 가다듬고,
셋.
덜컹덜컹, 덜컹덜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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