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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6년 08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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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17쪽 | 256g | 128*205*11mm |
ISBN13 | 9788932028842 |
ISBN10 | 8932028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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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03일 ~ 2024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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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PD가 보내는 백 번째 편지 : 100호 기념 기획전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10월의 굿즈 : POINT OF VIEW 북커버/스탬프/유리 티포트/페이퍼 아크릴 문진/북 백/저널 노트
2024년 09월 30일 ~ 2024년 10월 31일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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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2017. 1. 8. 일.
1982년생이면서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출신의 시인 오은의 시집을 읽었다.
이름이 오은이라서 여자일 것 같지만, 남자다. 권혁웅 시인은 오은 시인을 말을 갖고 노는 말놀이의 달인으로 일컬으며, 오은의 시들이 현대의 도시락폭탄과 같다고 해설을 했다. 마치 혁명처럼 기존의 평범한 질서에 말폭탄을 던져서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다시 새롭게 재구성을 시도하는 오은의 시들. 천천히 읽어볼수록 그 말들은 정말 노는 것처럼 춤을 추고, 생각도 뒤집어지고, 정형화 된 시의 틀은 전복된다. 아마도 오은의 시들은 호불호가 꽤 갈릴 것 같다. 처음에 읽으며 이건 뭐지...라고 생각하다가 두번째 읽으며 어어...하다가, 세번째 읽으니 뭐가 살짝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시마다 제각각 이라서 와닿는 시도 있고, 여전히 잘 모르겠는 시도 있다. 하지만, 시를 파고들고 싶지도 않거니와 시를 연구한다는 것은 생각해 본적도 없다. 그냥 내 마음에 느끼는 대로, 시가 나에게 말하는 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시인의 손을 떠나서 작품으로 읽혀지는 시는 이미 제 스스로 발화하는 중이며, 성장하는 중이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사람들의 담을 넘어 뻗어가는 중이다. 그렇기에 독자의 손에 들어온 이상 무엇을 느끼고 상상하든지 그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니까.
공포
밤에 손톱을 깎으면 안 된단다
귀신이 해코지를 할 거야
밤에 별이 깜빡거리면 강풍이 분단다
유혹하는 것들은 다 위험하지
밤하늘이 유독 맑으면 된서리가 내린단다
정수리에 힘을 주고 또박또박 걸어야 해
할머니의 비밀은 모두 밤에 있었다
밤에 어둔 길을 혼자 가면 안 된다
뒤통수는 항시 조심해야 해
낮은 흘러가는 것
밤은 다가오는 것
낮은 불발의 연속이었다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밤은 장전되어 있었다
닥쳐오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리 없는 공포탄이
사방에서
폭죽처럼 터지고 있었다
밤에는 작게 이야기해야 한단다
밤말을 들은 쥐가 어떤 일을 저지를 지 몰라
비밀들이 아우성치며
베갯속 사이를 앞다투어 메우고 있었다
공포감을 조성하는 다양한 얘기들이 어렸을 때는 이상하면서도 싫었는데, 지금은 우스개소리처럼 들린다. 이제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더이상 공포를 못느끼는 걸까? 아님 공포에 대해 익숙해진 걸까? 생각해 보면 공포를 조성하는 말들은 분명히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경계심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낸 말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냥 하지 말라고 하면 분명 앞에서만 알았다고 하고, 뒤에서 몰래 하는 게 아이들이니까. 그리고 몰래 하는 것은 스릴이 있기에 아이들에게 어른들 몰래하는 금지된 일들은 장난이면서도 어른으로 가는 중간 시기의 통과의례같은 일로 여겨지기도 했다. 전등도 없었던 시절 희미한 호롱불이나 촛불 아래서 손톱을 깎다가 손이라도 다칠까 걱정부터 앞서고, 밤에 돌아다니다가 도둑이나 밤짐승에게 해를 당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어른들의 노파심. "유혹하는 것들은 다 위험하"다는 것을 미리 경고해 주고 싶고, 소리가 잘 들리는 밤에 함부로 남의 험담을 하면 "밤말을 들은 쥐가 어떤 일을 저지를"수 있다는 주의를 주고 싶었던 어른들의 깊은 마음이 느껴진다. 공포라고 하면 모두가 무서워서 덜덜 떨 것 같지만, 이 시에서는 어른들이 자손들에게 경계해야 할 것들을 알려줬음을 "비밀들이 아우성치며 / 베갯속 사이를 앞다투어 메우고 있"다는 표현으로 재미있게 풀어주고 있다.
너무
나도
아름다웠다
왼팔을 벌려봐
너무 벌리지 말고
너는 요구 사항이 많다
너는 저기압이다
왼팔을 내뻗으니
공기가 바람이 되었다
바람이 바람이 되었다
축일전야처럼
간절하게 불었다
너는 휘청인다
너는 느리고 탄력이 있다
너는 무성하다
무성하게 아우성친다
나는 우뚝 서 있다
가지가 하나밖에 없다
나는 앙상하다
항상 앙상하다
뼈에 살을 붙이듯
생각한다
나에 대해, 너에 대해
내가 너에게 더 가까워지려는 찰나에 대해
너무에 대해, 너무가 갖는 너무함에 대해, 너무가
한쪽 팔을 벌려 나무가 되는 순간에 대해, 너무가 비
로소 생장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는 순간에 대해, 너
무가 세상을 향해 팔 뻗는 순간에 대해, 너무가 품은
부정적 의미는 사라져
나무는 너무 많이 흔들린다
너무 너다워
너무 쑥스러워
가지가지 비밀들이 수줍게 움텄다
너무
나도 너도 아름다웠다
원래 "너무"라는 부사는 부정의 의미로 쓰였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라는 표현을 부정에도 쓰고 긍정에도 쓰면서 그 의미가 흐릿해 졌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긍정의 의미에 "너무"라는 표현을 진짜 너무 많이 쓰다보니 국립국어원이 다수의 뜻에 따라서 긍정에도 쓸 수 있다고 인정했다. 솔직히 "너무"는 당연히 부정이라고 생각하지만, 민주주의는 다수의 뜻을 따를수 밖에 없기에 긍정의 의미로 쓰다보니 자꾸 쓰게 된다. 이 시 <너무>에서는 "너무가 / 한쪽 팔을 벌려 나무가 되는 순간"을 말하고 있다. 팔을 벌려 나무가 되면서 "자신감을 얻"고, "세상을 향해 팔 뻗는 순간에 대해, 너무가 품은 / 부정적 의미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너무"가 팔을 벌려서 "나무"가 된다는 이 쉽고도 독특한 발상이 미소를 짓게 한다. 시인의 상상 속에서 "ㅓ"가 살짝 위치를 바꿔서 "ㅏ"가 되는 순간, "너무 / 나도 너도 아름다"워진다니... "나도 너도 아름다"워지는 순간, 생각 만으로도 너....무 좋다.
트라이앵글
평면에서는
각도가 필요하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강철봉은 구부러진다
막대는 누그러진다
이제 너는 60도씩 공평해
공평함은 형태로 드러난다
울고 싶은데도
너는 매달리지 않는다
바늘도 아닌데 실이 필요하다
스스로 울지 못할 때
공기는 더욱 단단해진다
3차원에서
너는 60도씩 공평하게 심심하다
너를 울려줄 사람이 절실하다
울리는 사람이 다가와
너는 팽팽해진다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
강철봉이 가까스로 실에 매달리는 순간
막대가 떨고 떨리는 순간
울음이 소리를 뚫고 나오는 순간
진동이 여백을 장악하는 순간
맑고 높은 것에
금이 하나 그어져
형태가 아주 잠깐 공평함을 잃었다
60도씩 공평하게 구부러진 트라이앵글이 그려진다. 직접 손으로 잡으면 맑은 소리가 나질 않기에 꼭 실로 묶어줘야 하는 것을 "바늘도 아닌데 실이 필요하다"라고 표현했다. 또한 "스스로 울지 못"하는 트라이앵글의 비애를 "공기는 더욱 단단해"지는 걸로 갑갑함을 말해주고 있다. 트라이앵글을 울리기 직전의 모습은 자못 긴장 된다. "막대가 떨고 떨리는 순간"이 되고, "울음이 소리를 뚫고 나오는 순간"이 되며, "진동이 여백을 장악하는 순간"이 되는 이 기가 막힌 순간에는 "맑고 높은 것에 / 금이 하나 그어"지는 감동이 있다. 그리고 "형태가 아주 잠깐 공평함을 잃"기도 한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리듬악기를 배울 때, 모두가 타악기기에 두드려서 소리를 냈는데, 트라이앵글처럼 맑고 고운 소리를 내는 악기는 없었다. "맑고 높은 것에 / 금이 하나 그어"지던 그 때의 그 청아한 트라이앵글의 울림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읽다 만 책
핑계는 언제든지 댈 수 있다
책 속에서만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려워요
재미가 없어요
취향에 안 맞아요
유행이 지났어요
제목과 달랐어요
시기를 놓쳐버렸어요
결말을 알아버렸어요
영화로도 나왔더라구요
최근에 야근이 많았어요
좀 한가해지니 앞부분이 기억나지 않았어요
급하게 읽을 다른 책이 생겼어요
더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왔어요
끄집어내고 갖다 붙일 사연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책 속의 주인공은 할 말이 있는데
우리는 입을 다물린다
책 밖에서는 우리가 주인공
할 말이 많아서
대사는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책 밖의 세계에서는 실시간으로 페이지가 넘어가는데
책 속의 주인공은 머뭇거리고 있다
한동안 그럴 것이다. 혹은 영영
다문 입으로
다 읽은 책은 말이 없다
닫힌 입으로
읽다 만 책은 말이 없다
사다 만 책은 없다
빌리다 만 책이나 버리다 만 책은 없다
읽다 만 책만 있다
다 읽은 책에는 먼지가 쌓인다
읽다 만 책에도 먼지가 쌓인다
하루하루의 더께 속에서
기억과 망각이 동시에 일어난다
당분간 책갈피는 움직이지 않기로 한다
반쯤 열리거나 반쯤 닫힌 입으로
산 입에 거미줄을 치는 표정으로
제자리를 집요하게 더듬는 걸음으로
무수히 접한 처음들
무수히 남은 마지막들
마음이 한번 마음먹고 얼면 봄이 돼도 녹지 않는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는 책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에 도서관에서 빌리기 보다는 구매해서 소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 시 <읽다 만 책>을 읽다 보니, 내게도 읽다 만 수많은 책들이 있기에 살짝 마음에 찔림을 피할 길이 없다. 일단 책을 펼치면 서평단당첨 책처럼 의무감이 있는 책이면 재미를 떠나서 무조건 열심히 읽는다. 하지만, 내 소유의 책이면 천천히 읽게 되고, 또 다른 책이 궁금하면 읽다가 책갈피를 해놓고는 궁금한 책으로 손이 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서문만 읽은 책, 서너 장만 읽은 책, 반 정도 읽은 책, 겉장만 만져몬 책까지 결과적으로 읽다만 책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왠만하면 끝을 보는 우리 남편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다. 우리 남편은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일단 시작을 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기에 완독을 한다. 근데 나는 꼭 이 책을 읽으면서 저 책이 궁금하고, 저 책을 읽으면서 또다른 신간이 궁금해지는 참 끈기가 없는 성격이다. 게다가 궁금한 책은 사서 펼쳐봐야 직성이 풀리니 이 무슨 넘치는 소유욕이란 말인가. 다행히 남편이 나의 책에 대한 소유욕을 말없이 감당해 주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무수히 접한 처음들 / 무수히 남은 마지막들"을 기억하며 이제 나도 "읽다 만 책"들을 다 읽은 책으로 돌려놓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래야 내손을 애타게 기다리던 책들도 편안해 질테니까.
질서
늦은 사람들은 신호를 위반하고
늙은 사람들은 법을 위반하지
그들이 법이기 때문에
자기 부정은 자기 갱신으로 거듭나지
법전에는 예외 조항이 늘어나지
넥타이가 점점 짧아지는 동안
목이 졸려 숨 막히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지
말은 물 같고 성격은 불같아서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들 수 있었지
흐를 때와 고일 때를 잘 알아서
자기 비하는 겸양지덕으로 둔갑하지
덕은 떡처럼 도타워지지
없이 여기거나 업신여기는 식으로
법이 설령 중립적일 때에도
법전은 이미 중의적은 문장을 쓰고 있었지
들이받는 게 아니라 들이치는 식으로
사고(事故)로 위장한 채 사고(思考)를 치며
갑남(甲男)을 물들이며 을녀(乙女)를 불붙이고 있었지
하나밖에 없어서 입은 틀어막기 쉬웠지
신호는 빨간불에서 좀체 바뀔 줄을 몰랐지
법은 관습법처럼 굳어졌다가 악법처럼 활개를 쳤지
이윽고 늦은 사람이 늙은 사람이 되었을 때
그릇된 것은 죄다 그릇이 되어 있었지
철옹성처럼 단단해서
섣불리 두드릴 수도,
진흙처럼 물러서
선선히 발 담글 수도 없었지
오은 시인의 시에 많은 풍자시들이 있다. 말놀이를 통해서 교육제도를 풍자하고 청년실업을 비판하고 기득권층을 고발한다. 시 <질서>에서는 늙은 자들, 즉 기득권층의 뻔뻔한 부당함을 말하며 스스로를 법으로 규정해 버리는 그 오만함을 교묘하게 풍자하고 있다. 무슨 문제만 생기면 회장님들은 나와서 자신의 덕이 부족해서 생겼다며 고개를 숙이는 시늉을 한다. 그것을 시에서는 "덕이 떡처럼 도타워"진다고 말하고 있다. 부덕의 소치라며 카메라 앞에 잠시 고개를 숙여주는 대기업대표의 모습이 떠오른다. "법전은 이미 중의적인 문장을 쓰고 있"다는 말은 법전의 내용을 권력자나 대기업일 경우 그들에 맞게 해석을 해준다는 내용으로 대상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법원의 이중성을 표현한 것 같다. "사고(事故)로 위장한 채 사고(思考)를" 친다는 것은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부정을 저지르고 장부를 조작하고 다양한 비리를 저질러 놓고 그것을 들켰을 때는 실수였다고, 본인은 잘못인지 몰랐다고 억지주장을 하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숱한 권력자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릇된 것은 죄다 그릇이"되어 버리는, "철옹성처럼 단단"한 그릇이 되어버리는 현실에 대한 암담함,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금력과 권력에 에워싸임을 당해서 억울한 죄인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시인은 하고 있다. 이 시의 제목은 <질서>이지만 실제로는 질서가 무너져버린, 질서란 힘있는 자들의 마음대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 어지러운 세태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슬쩍 꼬아서 기득권을 성토한 이 시는 모르는 것 같아도 사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국민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시원하기도 하고, 현실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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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오은의 시집을 읽으니 즐거운 언어유희를 하며 재밌게 논 기분이다. 일상의 단어를 해체하고 새롭게 다시 조립함으로써 생각하지 못한 각도로 언어를 바라보게 만드는 놀라운 시인의 능력.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즐겁게 말놀이를 하며, 독자는 독자대로 받아치기도 하고, 수긍도 할 수 있는 시집 [유에서 유]다. 보통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면 대단하다고 하지만, 이미 있는 기존의 유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은 이미 뿌리박혀 있는 고정관넘들이 있기에 훨씬 더 어렵다. 그렇기에 애초부터 고정관념을 타파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나온 시인의 의도가 [유에서 유]라는 시집의 제목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일까 했는데, 시집을 다 읽고 나니 이해가 된다.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시인, 다음엔 어떤 식으로 새로운 언어의 세계를 구축할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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