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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3년 08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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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6쪽 | 419g | 132*224*30mm |
ISBN13 | 9788937460821 |
ISBN10 | 8937460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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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기대도 하지마.
-도리스 레싱의 <런던 스케치>
런던.
지구 상의 가장 거대한 도시 중에 하나인 런던.
아스날, 웨스트햄, 토트넘, 첼시를 비롯 13개의 축구클럽이 모여 있고, 한때는 세계를 제패한 대영제국의 유산들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
게다가 [On Style]이나 [Olive]와 같이 대한민국의 트렌드를 완벽히 증명해 보이려는 안간힘을 쓰는 케이블채널들에게 런던은 패션과 쇼핑의 천국이자, 그것을 열렬히 알리는데 정신이 없고,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들이 그 눈에 보이지 않는 트렌드를 따라잡기에 여념이 없는 도시, 그야말로 이 시대 수많은 된장녀들을 양산하는 도시 런던.
이렇게 저마다 ‘런던’에 대한 기대와 이미지들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도리스 레싱의 <런던스케치>에서의 런던은 우리가 기대하거나 상상하는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고 <배트맨>에서의 고담시처럼 필요이상으로 우울하게, 어둡게 그리지도 않는다. ‘딱 그 정도의 크기’로서의 런던을 보여준다.
원제인 <London Observed: Stories & Sketches >처럼 거대도시로서 있는 그대로의 런던 말이다.
그림을 그릴 때, 제일 먼저 하는 과정이 스케치다.
스케치는 소재의 윤곽과 형태를 나타낸다. 그것이 풍경화든 추상화든 스케치는 화가의 색깔이 들어가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과정이다.
그 스케치 위에 밝은 색이 들어가는가, 어두운 색이 들어가는가, 혹은 단순한 색으로 표현되는가, 복잡한 색들이 서로 덧칠하여 표현되는가에 따라 화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드러난다.
그야말로 스케치는 아직 시선의 색깔이 들어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
[원칙]에서 런던의 교통난과 그것을 대처하는 국민성, [장애아의 어머니]에서 거대도시 속 소수
서울, 뉴욕, 도쿄, 파리와 같이 세계 여느 대도시에도 있을 법한 이야기인 동시에 런던에서만 벌어지는 런던이야기이다. 이것은 도리스 레싱이 독자들에게 거대도시로서, 다인종사회로서 런던에서만 벌어지는 모습들도 있지만 거대도시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다른 여느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매한가지가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불행한 일들이 닥치고, 시련에 빠지더라도 삶에는 늘 희망이 함께 한다는 작가의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이 담겨있다.
현대사회는 ‘이미지’에 과대노출 된 사회이다. 방송,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세상 모든 것이 이미지에 의해, 이미지로 왜곡되고, 움직이고, 보여지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 내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들을 끊임없이 양산해낸다.
그리고는 자신도 미처 감당하지 못할 만큼 키워놓은 거대한 환상이 냉혹한 현실과 자신을 그대로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허우적 거린다.
물 위에 아름다운 백조가 되기 위해 물속에서 필사적으로 발길질을 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도리스 레싱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강조한다.
- 나 역시도 ‘런던’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나 이미지 같은 게 있다. 우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축구클럽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아스날, 토트넘, 첼시. 이 세 팀은 내가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싫어하는 1~3위를 다투는 클럽들이다. (그나마 좋아하는 런던의 클럽은 웨스트햄 정도.)
그리고 안개 낀 풍경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유명한 런던의 안개를 직접 한번 보고 싶다.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안개 낀 풍경은 압구정에서 신사동으로 넘어가는 도산대로에 낀 안개이다.
그리고 추리소설의 광팬인 나로서는 런던은 셜록 홈즈를 비롯한 범죄가 도사리고 있는 어둠의 도시이다.
-나 역시도 도시나 국가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 적이 있었다. 3년전 인도에 대한 환상을 품고서 인도를 여행하러 갔는데, 첫날 델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 모든 기대가 한 순간에 깨졌다. 초반 3일 동안 내내 우리나라는 안 그런데, 인도는 왜 이러지, 내가 생각하는 인도의 모습이 아냐 등과 같은 생각 때문에 여행이 상당히 힘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왜 그러지, 왜 여행을 하는데 이렇게 힘이 드는건가, 라고 반문을 했는데, 그때 내가 이 나라에 뭔가 기대를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인도는 가만히 있는데, 나의 기대 때문에 인도가 나빠 보였던 것이었다. 아. 이것은 제대로 된 태도가 아니구나. 그때부터 나라든, 도시든, 사람들이든, 인간관계든 지구 상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기대를 접기로 했다.
기대를 안 하게 되니 여행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고, 모든 게 살아있어 보였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이해한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이 이해한다는 말을 정말 많이 사용한다.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이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 말이 가지는 정확한 의미는 없다. 가령,초등학생이 어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해해요. 이별을 통고한 여자친구에게 눈물을 머금고, 이해해요.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친구에게, 이해해요.
도대체 뭘 이해한다는 것일까. 아니, 이해한다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해한다는 것일까.머리부터 발끝까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떤 경우에는 나는 나 자신의 행동이나 말, 생각도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자기 자신도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어찌 그렇게 쉽게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서 조금 더 확장해 나가면 이 '이해해요'라는 말은 정말 무책임한 어휘라고 생각한다.
그냥 개인적인 생각인데, 정말 상대방을 이해하고 싶으면,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물론 이것이야 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나는 단연코 도리스 레싱 여사가 이 책을 쓸 때 이런 생각을 했을거라고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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