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만 열심히 해 온 우리도 결국 난독증이다
글자로만 생각하는 사람 이미지로 창조하는 사람 / 토머스 웨스트, 김석훈 옮김 / 2011, 지식갤러리
최근에 난독증에 대한 책을 여러 번 접하게 되었습니다. 난독증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일부러 관련 책을 찾아 읽을 의도는 아니었는데 여러 책에서 난독증 얘기가 나오더군요. 난독증에 대한 글을 처음 읽은 건 말콤 글래드웰의 [다윗과 골리앗]에서 입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약자들이 살아남는 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약자들이 가진 여러가지 역경 중에서 난독증을 하나의 예로 들면서 그것을 '바람직한 역경'으로 묘사하더군요. 물론 난독증을 직접 겪은 사람들은 절대로 '바람직한'이라고 얘기하지는 않겠죠. 난독증을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슬기롭게 이겨낸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역경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김용규의 [생각하는 사람]은 지식과 생각의 기원, 생각을 만드는 다섯 가지 생각인 은유(메타포라metaphora), 원리(아르케arche), 문장(로고스logos), 수(아리스모스arithmos), 수사(레토리케rhetorike) 등을 소개합니다. 다양한 이미지를 활용하는 시각적 사고가 글자만을 생각하는 사고 보다 얼마나 창조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강조하면서 토머스 웨스트의 [글자로만 생각하는 사람, 이미지로 창조하는 사람]을 인용합니다. '글자에 갇혀버린 창조력의 한계를 뛰어넘어라'라는 책 머리의 문구가 글을 열심히 읽는 사람에게 그것을 열어보라고 부추키는 듯 합니다. 책은 1841년 여름,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뛰어난 과학자로 칭송받았던 마이클 패러데이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어지는 제임스 맥스웰, 알베르토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앙리 푸앵카레, 조지 패튼, 윈스톤 처칠, 토머스 에드슨, 니콜라 테슬라, 루이스 캐럴, 윌리엄 예이츠 등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과학자, 예술가, 수학자, 군인, 정치인, 발명가, 문학가, 시인들은 모두 글 읽기와 쓰기 또는 셈하기 등에서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입니다.
난독증은 어떤 증상을 말하는 것일까요?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서울대학교 의학정보로 난독증에 대한 정의가 나와 있더군요. 그대로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난독증(dyslexia)이란 듣고 말하는 데는 별 다른 지장을 느끼지 못하는 소아 혹은 성인이 단어를 정확하고 유창하게 읽거나 철자를 인지하지 못하는 증세로서, 학습 장애의 일종이다. 이는 지능 저하나 부모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대학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 한편 한국난독증협회(www.kdyslexia.org)에서는 '난독증은 신경학적 원인에 의한 특정학습장애다. 난독증이 있으면 단어를 정확하고 유창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철자를 잘 못 쓰고, 문자 해독을 어려워한다. 이러한 어려움은 전형적으로 음소인식능력의 부족 때문에 생긴 것으로, 다른 인지능력의 문제나 효과적인 교육이 제공되었는지 여부와 연관성이 없다고 여겨진다. 2차적으로 독해력의 문제와 독서 경험이 적어서 생기는 어휘력이나 배경지식 부족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국제난독증협회, IDA)'라고 제시해 놓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10여년을 하고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교감 등 교육행정직과 관리직을 16년을 넘게 하면서 현장에서 난독증을 직접 접한 적은 없습니다. 접하지 못한게 아니라 '난독증'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말이 정확하겠네요. 지금이나 그 때나 마찬가지로 난독증이라는 증상을 겪고 있던 아이들이 분명히 있을텐데 말이죠. 학교 현장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난독증에 대한 이해나 평가는 물론이고 교사들의 이해를 돕는 연수 등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난독증, 즉 글읽기나 쓰기, 셈하기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은 공부를 못하는 아이, 공부를 하기 싫은 아이, 게으른 아이, 머리가 나쁜 아이 등으로 불렸을 겁니다. 그나마 학습부진아에 대한 진단과 지원책이 생기고 부터는 학습부진아로 분류되어 '학습부진아 지도 대책'에 의한 추가 지도라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학급에서 담임선생님이 직접 지도를 하기도 하고, 학년 단위나 과목별로 모아서 지도하기도 하죠. 때로는 학습부진아 지도 강사를 채용해서 지도를 합니다. 학습에 필요한 기초적인 능력인 한글의 읽기나 쓰기, 셈하기 등을 지도하는거죠. 물론 이것도 학부모들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남겨서 추가 지도를 하게 하면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을 찍히게 된다고 해서 꺼리거던요. 차라리 다른 아이들도 같이 다니는 학원을 보내시는 분도 많습니다. 학교든 학원이든 '난독증'에 대한 개념 보다는 '학업능력'에 대한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이들은 그저 잘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지도'와 '교육'의 대상으로만 여겨져 왔던게 사실이고 현실입니다.
오래 전 일 입니다. 교사 2년차 때이니 1992년도 일이네요. 첫 발령지인 거제도 둔덕면의 산골학교인 상동분교에 근무할 때 입니다. 학생수가 적어 교장, 교감 없이 평교사들만 있는 4학급으로 운영되는 학교였습니다. 2개 학년을 한 교실에서 가르치는 복식학급을 맡았습니다. 6학년이 6명이었고, 2학년이 3명으로 총 9명이었죠. 도시학교에서는 이런 광경을 거의 볼 수 없지만 섬이나 산골 학교에서는 3개 학년을 모아 놓은 복식학급도 가끔 있던 시절입니다. 그 해 맡은 2학년 세 명 중에 한 아이는 전학을 온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의 학습 수준이 매우 낮은 상태였습니다. 2학년이면 한글은 어느 정도 읽고 쓸 수 있는 수준인데, 자기 이름만 겨우 쓸 정도 였습니다. 그 아이가 아는 글자는 자기 이름 석 자와 ㄱ, ㄴ, ㄷ 한글 모음 3개가 전부 였습니다. 신기한 점은 이 아이가 유치원도 2년간을 다녔다는 사실입니다. 유치원 2년과 초등학교 1학년, 도합 3년을 다녔는데 3년 동안 글자에 대해서 배운게 단 3개였던거죠. 1년에 모음 한 개씩 익힌 꼴이니 좀 어아했죠. 그래도 아이는 밝고 장난기도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타러가고 엄마는 도회지에서 식당 일을 하는 등 가정사가 있어서 학교 근처에 있는 외할아버지에게 임시로 맡겨진 거였습니다. 알고 보니 엄마가 지능이 좀 떨어지는 분이셔서 그 쪽으로 유전이 되었나 생각을 했었죠. 당시에는 단순히 유전적으로 지능이 떨어져 학습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배우는 속도가 매우 느리긴 했지만 학년이 마칠 때 쯤에는 어느 정도 글을 읽는 정도의 수준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적은 학교였으니 선생님의 관심을 아무래도 더 받기도 하고, 나 역시 초임교사 시절의 열정이 있어서 나아졌구나 하며 나름 소소한 자부심을 가지기도 했었죠. 학년이 바뀌어 3학년이 진학할 시기에 다시 도시 학교로 전학을 가버려서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창의력을 가진 난독증 아이였는지, 시각공간적 능력을 가진 아이였는지, 아니면 정말 유전적으로 지능이 많이 부족한 아이였는지...
난독증의 원인은 현재 여러가지 가설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좌뇌와 우뇌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의 뇌가 어떤 일을 할 때 실상은 좌뇌와 우뇌 사이에 복잡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지만 대뇌의 좌반구와 우반구가 어떤 특화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 뇌과학들의 주장입니다. 뇌의 한 쪽 부위가 손상된 환자들에 대한 임상연구 등에서 밝혀진 내용입니다. 난독증은 언어 기능을 담당하는 좌뇌의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일어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좌뇌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더라도 우뇌의 기능에는 문제가 없는 경우, 언어를 읽고 쓰는 것에는 문제가 있을지라도 듣고 이해하는 것 등 다른 언어적 능력에는 문제가 없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어느 한쪽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경우 그것을 대체하기 위한 다른 부위의 기능이 더 강화되는 경향이 종종 발생한다는 사실입니다. 좌뇌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경우, 우뇌의 역할이 더 커지면서 그런 부족한 부분들을 메워간다는 거죠.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종종 간과하고 있는,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점이라는 것을 이 책은 줄곧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좌뇌의 기능 저하 등의 문제를 가진 아이들이나 성인들을 대할 때 그들의 약점에만 시선을 고정시켜 버립니다. 그들이 잘 못하고 있는 부분에 촛점을 맞춤으로써 정상적이지 않은 '장애'나 '부족'으로만 인지를 합니다. 그러면서 부족한 부분을 개선, 치료, 보완해야 한다고만 생각하는거죠. 그 약점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더 강화될 수 있는 장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못한다는 겁니다.
[새로운 미래가 온다]의 저자 다니엘 핑크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 의미가 더 와 닿습니다. 그는 미래 사회를 '하이터치, 하이컨셉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하이터치는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미묘한 인간 관계를 잘 다루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잘 유도하는 능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이컨셉은 패텬과 기회를 감지하고, 예술적 미와 감정의 아름다움을 창조해 내며, 훌륭한 이야기를 창출해내고, 언뜻 관계가 없어 보이는 아이디어를 결합해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능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미래사회는 이러한 하이터치와 하이컨셉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고 인정받는 사회가 될 것으로 내다본거죠. 하이터치와 하이컨셉은 뇌 과학자들이 말하는 우뇌의 기능과 관련있는 것들입니다. 뇌 과학자들에 의하면 좌뇌는 언어, 논리, 분석, 수리 등에 분야를 담당하고, 우뇌는 시각적 사고, 공간지각능력, 패턴인식, 문제해결력, 창조성 등에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미래에는 형식화, 조직화, 체계화 된 지식 등 좌뇌가 담당하던 역할은 점점 컴퓨터가 대신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간은 비형식적이고 직관적이며 감각적인 부분을 맡게 되는거죠.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단순히 지식을 대량으로 암기하는 좌뇌의 역할 보다는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능력,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 등 우뇌의 역할이 훨씬 더 필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예상하고 있습니다. 좌뇌 중심의 시대에서 우뇌가 중심이 되는 시대가 된다는거죠. 이런 변화는 한편으로 보면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의 시대에는 글을 읽고 쓰는 언어적 능력보다는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변화를 이해하고, 변화를 감지하고,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동족을 보호할 수 있는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능력이 더 필요한 시기였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죠. 문자의 발명 이후 인간의 문명이 더욱 발달한 시대에 문자 발명 이전 시대에 더 유용했던 능력들이 다시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좌뇌와 우뇌의 역활이 불멸의 DNA속에서 이어져 왔는지도 모릅니다.
창의적인 난독증을 가진 사람들의 약점, 즉 글을 바르게 읽고 쓰고, 셈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만 우리의 시선과 관심을 집중시키고 그들이 가졌을지도 모르는 장점에 대해서 눈을 감고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들 역시 일종의 난독증을 가진 존재입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부분만 볼게 아니라 잠재력과 가능성과 기회를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똑같은 방식으로 교육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 결과가 어땠는가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낡은 지식을 흡수해서 넘겨주는 것보다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가진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어떤 경우에는 기존의 교육 체계가 최고 수준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 특히 언어적 재능보다는 시각적 재능이 두드러지는 사람들을 도태시키기도 한다 ' 라는 저자의 말은 교육자로 살아온 나에게 따끔한 일침이 됩니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학습 곤란을 겪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결국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들 중에서 반쪽만 열심히 해 왔다는 것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그 동안 보지 못한, 아니 볼려고 시도 조차 하지 않았던 그 반쪽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너무 늦지는 않았겠죠?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다윗과 골리앗 / 말콤 글래드웰, 선대인 옮김 / 2014, 21세기북스
생각의 시대 / 김용규 / 2014, 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