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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2년 01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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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68쪽 | 642g | 150*218*30mm |
ISBN13 | 9788976777188 |
ISBN10 | 8976777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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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81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이 책을 덮은 지 보름이 지났습니다. 지난주에 어머니의 기일이 있었고 그 전주에 산소를 다녀왔는데 그때 이 책을 가져갔습니다. 사실 가져갔는지도 모르고 여행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짐을 싸며 책을 넣어둔 이유는 아마 이 책을 그 전부터 읽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이 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이었을까요. 여행에서 돌아오기 전날 밤 습관처럼 책을 집어 들었고 몇 개의 답은 가슴에 그래도 알 수 없는 것들은 무덤에 묻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계절이 한 바퀴 휙, 돌아와 있었습니다.
올 초에 아는 분이 제게 이 책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쩐 일인지 이 책이 썩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았고 책에서 제시하는 질문들에 하나도 가슴이 뛰질 않았습니다. 책을 건네준 분은 평소 성당에 같이 가자고 늘 틈만 나면 이야기 하는 분이었고 저만큼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모르긴 해도 일 년에 한 두 권 베스트셀러 위주로 독서를 하는 분이라 믿었습니다. 신앙인이면서 신부님의 책을 권하고 자신이 읽은 몇 안 되는 책 중에 하필 이 책을 읽어보라 하는 것이 결국 성당에 가자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즈음 서점에 가보니 마침 이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보란 듯이 진열되어 있었던 점도 더욱 반감이 들었습니다. 보편적 대중성, 그러니까 사람들이 많이 택하는 책에 대한 일종의 불신과 폄하, 더군다나 종교적 색채가 가득한 사유의 향연, 오만과 편견인줄 알면서도 나는 설득당하지 않겠다하는 비뚤은 마음도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책을 받아 들고 와서 질문의 리스트만 보았을 때 저는 지금까지 그 어떤 종교도 불신해온 한 사람이 명망 높은 한 종교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이제부터라도 종교를 가져볼까 하는 복잡한 심경을 엿보았습니다. 질문은 한눈에 보아도 종교를 가진 사람이 던지는 내용이 아니었어요. 하나같이 너무 흔하고 닳아빠져서 마치 참고서에 정해진 답이 있을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안다고 하여 답을 말해보라 하면 저마다 답이 달라질 수 있는 내용이었죠. 그래서 더욱 뒤돌아 나만의 정답이 절실해 지는 질문이긴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몇 가지 답을 알고 있다고 믿었고 누군가 인생을 상담한다고 물어왔을 때 어줍잖은 몇 마디로 답해주던 장면도 회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구태여 이 책에서의 답과 내 질문을 교환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누구에게든 곱고 예의 바른 말투로 친절하게 옳은 내용을 전해주실 테니까요. 내 마음 하나 열어젖히면 이 책은 그대로 희망이 될 것이니까요. 그렇게 선뜻 마음을 주기엔 심술이 났습니다. 삶이 이렇게 시험노트처럼 일목요연하게 요약되는 문제들이었다면 그동안 내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번민하던 시간들은 대체 무엇이었나. 갑자기 주마등처럼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이 생각나자 인생이 이처럼 몇 가지의 질문과 답으로 명쾌하게 정리될 수 있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답을 찾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만큼 이상하게도 이 책처럼 누구에게나 공평한 희망에 화가 났습니다. 예, 저는 선물 사달라고 떼쓰던 아이가 막상 청을 들어주었더니 고맙다고 인사하기 싫은 마음이었습니다. 누가 좀 떼쓰던 그동안의 시간을 알아주었으면 했던 것이죠.
그런데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참 묘하기도 해 산소가기 며칠 전부터 스쳐지나갔던 질문들이 꼭 잠들기 전에 불현듯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오면서 외치던 질문들과 하나둘씩 겹쳐지는 것입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돈에 권력과 명예를 한껏 누려온 한 대기업 회장이 타계하기 직전에 남긴 질문이라 생각하니 그도 사람이었고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었구나 싶어 새삼 부끄러운 위로가 되는 것이었어요. 찬찬히 생각해보니 어쩌면 일반인들보다 더 죽기 싫지 않았을까 싶었죠. 그도 두려웠던 것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진시황도 죽음은 피할 수 없었으니 자신도 곧 죽을 텐데 종교를 믿으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지, 지금이라도 종교인이 되면 천당에 갈수 있을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특정한 종교를 믿지 않는 제게 있어 이 궁극의 질문은 누구도 내 마음에 드는 답을 말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가슴속에 묻어둔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잊혀진 질문이라기 보다는 잊고 싶은 질문이라고 할까. 분명 비종교인이라면 신이니 천당이니 하는 것은 없다고 할 것이고 종교인이라면 일단 자신처럼 믿어보라고 설득할 것이니까요. 그러니 故 이병철 회장의 경우 더더욱 죽기직전까지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했을 의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다른 많은 걸 이루느라 질문의 기회나 계기, 필요성도 가질 일이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록 필경사가 꾹꾹 눌러 대신 쓴 글이지만 두어본 훑어 본 질문의 위력은 예상외로 컸습니다. 다른 건 다 이루고 깨우치고 이해하고 준비했을테죠. 그런데 왜 신의 존재 의미와 종교의 목적이 마지막 질문이 된 것일까요. 짧은 생각이지만 시기상으로 보아 죽음을 준비하는 막바지 과정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죽기는 정말 죽기보다 싫지만 누구보다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편안한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 그래서 자신보다 큰 신에게 의지하고 그 절대적 믿음으로 마지막 눈을 감고 싶었던 것. 저는 대기업 총수가 아닌 평범하고 나약한 한 인간의 마지막 간절한 소원을 느꼈습니다.
산소로 떠나기 전에 신은 악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들었을 뿐이라는 대목을 읽었습니다. 선인과 악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선과 악 앞에서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우리. 신은 우리들의 그 자유의지를 허락했을 뿐이라고. 신은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매를 드는 것이라는 구절도 보았습니다. 수준이 낮고 높은 기도는 있어도 세상에 틀린 기도는 없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자신의 부귀영화와 성공을 위해 하는 기도도 틀린 것은 아니라는 말씀에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중고등학교를 불교학교에 다녔고 대학교를 기독교학교에 다녔습니다. 회사의 사장님은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살면서 종교에 노출되는 시간들은 충분했고 기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주차 위반하는 차에 떡하니 십자가가 걸려 있을 때 손가락질을 했고 평일 내내 허름하게 다니다가 일요일 하루 한껏 치장하고 교회를 다니는 아줌마들을 비웃었습니다. 신은 없다고 믿는 것보다는 있다고 믿는 것이 손해를 덜 보는 생각이라고 믿어 왔지만 종교를 학문으로만 여기고 일상으로 체화하지 않았기에 모든 원인과 결과를 신과 연결 짓는 태도는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어느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말처럼 저도 다만 ‘내 삶은 글을 쓸 뿐’ 쓰는 게 나의 종교이며 그것이 ‘존재할 수 있는 종교들 중에서 가장 높은 종교’라 말하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이십 년 전 아버지의 어려운 수술을 앞두고 신에게 기도를 했었고 오 년 전 어머니의 뜻밖의 사고를 목격하곤 신을 원망했다는 것을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신이 있었기에 수술은 성공이었고 덕분에 아버지의 생명이 연장되었다고 여겼습니다. 어머니의 사고를 겪고 나선 반대로 신이 있다면 나와 어머니에게 이럴 순 없다고 목 놓아 소리쳤습니다. 그러다가 그동안 내가 벌여온 일들, 내가 저질러온 잘못을 생각하면 신이 내게 벌을 내린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악한 사람이 오래 살고 착한 사람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것도 어쩌면 착한 사람만이 운명을 감당하는 능력을 타고 났기 때문이라고 단지 신은 그러한 특별한 능력만을 주었을 뿐이라고 자위도 해보았습니다. ‘꿈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이렇게 버티다 보면 언젠가 신도 나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 슬며시 기대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알고 보면 드러내지 않아왔지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내 자신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그 모두를 아우르는 신을 향해 감사도 하고 때론 넋두리도 또 어떨 땐 욕을 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내심 의지를 해온 세월을 부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번이 어머니의 다섯 번째 기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형제들과 오늘처럼 바람 좋은 어느 봄날 꽃구경을 떠나셨다가 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던 관광버스에 치여 죽었습니다. 어머니의 몸은 10m 절벽 아래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고 머리는 깨져버렸습니다.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관광버스 기사보다 어머니와 달리 멀쩡히 살아남은 다른 이모들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왜 같이 떠난 사람들 중에 하필 내 어머니가 죽음을 당해야 했는지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마치 다른 이모님들 때문에 어머니가 죽은 것처럼 생각되어 저는 그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어머니가 죽음으로써 그들을 살렸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생이 그렇게 억울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당신의 오빠와 동생들에게 모든 걸 양보하며 희생적인 삶을 살아온 분이셨습니다. 아무리 땅을 치고 가슴을 쳐봐도 분노와 원망에서 해방되지 못한 시간들을 보내었습니다. 신이 어머니에게 주신 자유의지가 결국 어머니를 죽게 하였다면 우리가 과연 선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똑바로 따져 묻고 싶었습니다.
매년 이 맘 때면 곳곳에 봄기운이 만연한데 산소 근처 강물은 얼어 있었습니다. 주변을 둘러싼 산도 건물도 나무도 모두 얼음으로 느껴졌습니다. 묘지를 갈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곳은 허허벌판이기 때문에 무슨 사막이나 남극 같은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와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꾸밈없이 벌거벗은 내 자신과 독대할 수 있습니다. 그날은 뒤늦게 찾아온 한파로 손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하늘만 그래도 태양이 떠있음을 증명하듯 시리도록 파란 날이었습니다. 신기한건 그 하늘만 믿고 묘지 앞에서 돗자리 깔고 앉아 있다 보니 내 머리위로 쏟아지는 햇빛이 참 따스하게 느껴지더군요. 연신 콧물을 훌쩍이며 앉아 있는데도 순간 봄소풍 온 것같이 그 공간만 안온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록 영하 십도의 날씨였지만 어느새 추위에 적응이 되면서 그 속에서도 반짝이던 온기를 발견하고 기뻐하던 나...... 이것이 혹 절망을 없애려 하지 말고 절망과 싸우려 하지도 말고 자꾸 희망을 붙잡다 보면 결국엔 절망을 몰아 낼 수 있다는 신부님의 이치와 같은 것이었을까요. 일어서면서 예상외로 한 시간이나 지났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숙소로 돌아온 경주 보문호엔 운치 있게 자리 잡은 호반교의 다리가 흡사 거울에 비친 것 마냥 수면에 대칭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어림없다는 듯 얼음은 여전했습니다. 그날 저녁 얼마 남지 않은 책의 후반부를 읽어버렸습니다. 중간 중간 시인과 철학자, 문학작품을 인용해 이성과 감성에 두루 공감 가도록 해석하는 성찰의 모습도 자꾸 호감이 가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서울로 올라가고 싶었습니다. 신부님은 마치 나 들으라고 하는 말씀처럼 ‘용서는 그 놈에게 아무 득이 되지 않’는다 힘주어 타이르시더군요. 왜 모르겠습니까.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모른 척 했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나를 위해 하는 것이 용서이고 용서를 하고 나면 자기가 풀어준 포로가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용서를 하지 않으면 내 마음만 지옥이라는 걸 용서하지 않아온 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지옥을 견디며 그들을 더 괴롭게 하리라 다짐했습니다. 내가 지옥인 건 얼마든지 참아도 그들이 편해지는 건 싫었습니다. 그들 중 한명의 이모님은 이제 팔순이 넘었습니다. 내일이라도 부음기사를 듣게 되면 달려가 통곡을 하게 될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저는 오랫동안 마음의 빗장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묘지 앞에서 늘 그 사실이 면목 없고 목에 걸려 어머니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이번 역시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 마음이 하는 일을 마음대로 부릴 수는 없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故 이회장은 자신의 무덤에 질문을 물었지만 저는 어머니의 무덤에 침묵을 가득 묻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날 아침이었습니다. 산책을 하다 같은 호수에서 얼음이 녹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얼음은 '스르르' 녹는 것이 아니었어요. 아침부터 어디서 공사를 하는 것인지 둘러보던 중에 그 소리가 물 밑에서 나는 소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얼음 저 밑바닥에서 부터 심하게 싸움을 벌이는 듯 하나둘 부숴 지고 빠개지고 으깨지고 때론 예리하게 돌아서면 둔탁하게 그야말로 요란을 떨면서 형태의 변형을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얼음이 깨지는 곳에서 퐁퐁 여린 물이 솟아나는 것이었습니다. 내친김에 돌을 던져 저 균열을 극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와 함께 여러 번 돌을 던져 보았습니다. 나쁜 짓이었을까요. 어떤 곳은 꿈쩍도 하지 않아 애꿎은 돌만 저 멀리 미끄러져 갔고 어떤 곳은 돌의 충격이 컸는지 물의 파장이 꽤 멀리 나아가는 듯 했습니다. 무엇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봄을 기다리는 사이 몸소 제 살을 깨뜨리며 자신을 처절하게 녹이고 있었습니다. 그건, 모르긴 해도 우리처럼 아니 우리보다 더 전쟁 같은 삶이 아니었을까요.
그럴 것입니다. 얼었던 마음이 녹는 것도 그와 비슷할지 모릅니다. 마음이 녹는 걸 보고 기온이 올라가는 걸 보고 풀린다고 하지 않나요. 단단한 응어리가 녹아야 비로소 풀리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우리는 대단한 발견을 한 과학자나 되는 듯 한참을 다리위에서 얼음이 녹아 다시 물이 되어 흐르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아프더라도 봄은 오고야 말 것이라 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니 날씨는 거짓말처럼 풀려있었습니다. 일부러 나 추우라고 날씨가 심술을 부렸나 싶기도 하고 아직은 아니다 긴장감을 주려고 그랬나 싶기도 한데 여튼 겨울을 통과하고 돌아온 느낌은 확실했습니다. 무엇보다 내 두 눈으로 얼음이 녹고 있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죠. 아픈 겨울은 반드시 떠나가는 것. 자신을 부수면서까지 떠나가기 때문에 다음에 도착한 봄은 자리를 내어준 겨울을 잊지 말아야 하겠죠. 무쇠 같던 저 얼음을 녹이고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흘러가는 저들은 누구보다 아팠기 때문에 봄이 된 것이니까요.
그렇게 산소 여행도 마치고 이 책도 다 덮고 나서 얼마 후였습니다. 일상의 평화를 찾아 다가오던 새봄이 마냥 설레기만 한 날이었습니다. 이 책의 말미에 소개된 강영우 박사가 고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군요. 마음은 다시 그날 꽁꽁 얼어있던 호숫가로 달려갔고 이 책을 있게 한 故 이병철 회장의 질문들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분명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을 못 보는 대신 그분은 우리가 깨닫지 못한 더 아름다운 영혼의 세상을 믿고 따르며 아름답게 살다간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어쩐지 이 책에서의 모든 질문과 답을 일찌감치 깨달은 분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질문을 남긴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두 아들과 아내에게 사랑과 감사 가득한 편지를 남긴 것을 보면 말입니다. 故 강영우 박사의 부처님 같은 미소가 깊은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저는 결국 이 책을 만난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 책과 함께 남몰래 의심하고 또 더 몰래 의지하면서 겨울을 지나온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책을 읽었다는 생각보다는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는 생각이 많습니다. 요즘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쌓여진 냉철한 비판정신이 서슬 퍼런 냉소와 무관심으로 바뀌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저 역시도 조금씩 아는 것도 많아지고 작가와 작품을 많이 접하다보니 대충 목차만 보고서 저자가 어떤 식으로 독자를 설득하려고 하는지 첫 장만 읽어보고서 속내가 무엇인지 섣불리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나 신부님, 스님의 글을 읽고 감동하는 독자를 향해 내심 콧방귀를 끼는 사람의 편에 들 때도 있었습니다. 냉소주의자들은 자기 종교를 근간으로 한 추상적 설명이 반복된다는 이유로 그들의 논리를 폄하하며 결국 종교교화와 선도의 목적이 아니겠느냐 저자의 선의를 오독하길 즐겨합니다.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은 꼭 종교와 결부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한번은 마주치게 되는 질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답을 찾아야 하는 운명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질문을 하는 것도 답을 하는 것도 모두 사는 동안 지혜롭게 삶을 이어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오늘처럼 질문을 많이 해보고 답도 오래 생각하다 보면 어느덧 정답과 가까운 인생을 살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나는 몰랐지만 내가 가고 있는 길을 아름답게 보고 있을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을까요. 먼저 가신 故 강영우 박사님처럼 말입니다. 어떠한 질문을 던졌고, 어떤 방식으로 해답을 찾아갔고 어떠한 이유에서 나름의 의견을 개진했는가는 사실 철학자가 철학하는 방법과 같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모두는 결국 주어진 삶을 한번만 살 수 있고 또 언젠가 한번은 꼭 죽어야 합니다. 사는 동안 내 삶을 나만큼 고민하는 철학자, 종교인은 없을 것이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합니다. 묻고 답하는 동안 의심하면서도 그냥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오늘의 질문과 답이 잊혀 질 수 있어도 사는 동안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만은 잊어서 안 되지 싶습니다. 그건 아마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내 삶을 스스로 잊혀 지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일 테니까요. 내가 나를 잊지 않아야 세상도 나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내년 봄에 산소에 갈 때엔 이번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어 묵묵히 묻고 온 그 질문을 다시 슬그머니 꺼내어 볼 생각입니다. 일 년 후엔 가슴속에 묻어온 그 답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꼭 확인할 생각입니다. 그때까진 오늘의 질문도 답도 그리고 그동안 더 뜨겁고 단단해질 고통의 시간들도 잊지 않으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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