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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3년 06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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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4쪽 | 440g | 135*205*30mm |
ISBN13 | 9788954621496 |
ISBN10 | 895462149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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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83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스스로 문학 관련
논문이나 문학비평이 아닌 글로는 처음 엮는 책이라고 밝힌다. 신문에 실었던 칼럼이 대부분이라고 하는데 원문을 그대로 옮겼는지 아니면 일부 손을 봤는지
알 수는 없다. 신문 칼럼의 특성인 짧은 길이의 글들은 읽을 때 긴 호흡을 요구하지 않으며 촌철살인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다만 여러 소재를
다루다 보니 글 별로 글쓴이와 다른 생각이 드는 경우가 생김은 때로는 좋은 점이 되고 때로는 나쁜 점이 된다.
책은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2008년과 그 이후애 쓴 칼럼으로
구성되었는데 칼럼을 쓸 당시의 정치와 사회 이슈에 대한 글쓴이의 관점을 글 내용에 투사한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해당 이슈와 연결하여 글을 풀어가는 방식과 사용하는 표현은 자극적이지 않고 뭉근하다. 글쓴이의 원래 성정 탓인지
바뀐 정권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지 모르겠다. 나는 섞였다고 애매하게 짐작하는데 부분 부분 그리 마음에 와닿지 않는 내용들이 발견된다. 2부는 전문 사진작가의
사진 작품에 대한 글쓴이의 감상이 실려 있다. 매우 섬세하게 사진을 읽어서 놀라웠는데 사람을 이해하는 그의 시선이 따스하지만 단호하기도
하다. 3부는 다시 칼럼으로 돌아가는데 1부의 칼럼들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것들이 대다수이다. 1부의 내용들에 비해 정치, 사회 문제들을 덜
다루기도 하고 그 시각도 덜 예리하다. 3부에서 주로 다룬 시기가 2000년대 초인 영향도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책에 대한 칭찬과
추천을 많이 듣고 구입을 했는데 그 정도의 떠받들림을 받을 책인지 다소 의문스럽다.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과장된 평가가 없지 않다는 뜻이다.
길이가 짧은 글이
어쩔 수 없이 지니게 되는 약점이 보이는데 이런 것이다.
글을 쓴 시점의 시대
상황과 연계되는 부분들은 그 당시의 모습을 잘 알고 있지 못하면 그 글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아 답답해진다. 가령 최근에 미국으로 돌아간 가수 박재범 씨의 불행(p. 34) 같은 내용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는데 별도의 설명을 통해 상세한 정황을 알렸더라면
좋았을 터이다. 원 글이야 신문에 실렸을 때에는 사건과 글이 동시대성을 지니고 있었으니 그럴 필요가 없었겠지만 책으로 묶여 나올 때에는 보완이
되었어야 했다.
원래 중간까지 읽다가
여러 이유로 중단하고 다시 읽게 되었다. 다시 읽다 보니 먼저 번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글의 이상점이 눈에 들어온다.
심신이 건강한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누구도 빠짐없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한다는 생각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p. 23)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실제가 글 쓴 바와 같던가? 백 보 양보해서 신체의
건강이야 일정한 신체검사 기준이 있으니 저 글이 적용될 수 있다 해도 마음의 건강을 어떻게 따질 수 있겠는가. 썩어빠진 마음을 지닌
사람은 군대에도 부지기수다. 또한 심신이 나보다 훨씬 건강한 이들 중에서도 이런저런 사유로 입대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니 저 표현은
매우 차별적이고 무신경한 언어의 사용 사례로 다가왔다.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은 심신이 건강하지 않다는 전제를 깔고 만들어진 문장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김기덕 감독의 한이라는
제목의 글도 그렇다. 글쓴이는 튼튼한 상상력, 우리 시대에 가장 높은 투지 등의 언어로 김기덕을 치켜세우는데 작금의 상황에서 그를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늘 고민하는 일 중의 하나가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 평가할 때 실제 무엇을 보고 하는 얘기인가이다. 글쓴이가 일체의 noise를 배제한 상태에서
자신이 감상한 김기덕의 영화 세계를 평하지 않고 어디선가 입수한 김기덕의 배경을 이해의 바탕에 두고 글을 썼다는 느낌이 든다. 긴 의문이 남는다. 이 칼럼의 다음에
나오는 글에서 글쓴이가 보들레르의 악의 꽃 중 레테를 해설하는 장면을 보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해설이 나오는데 시대의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김기덕과
관련된 부분은 어설픈 이해에 기반해서 썼다고 본다.
사람은 알 수 없다. 나는 요즘 대학생들의 편에서 박정희를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존경한다는 말을 들으면 저 우체국 창구를 뛰어넘을 때와
같은 충동을 다시 느낀다(p.12). 라고 했던 글쓴이가
시공사-전두환의 아들이 대표로 있는-에서 나온 책에 추천사를 쓴 모순이 얼마 전에 발생했으니. 결국 내게 글쓴이의
이름은 독재자 전두환의 아들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에 추천사를 써준 이의 그것으로 기억될 뿐이다.
사람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순간에 스스로를 내려놓는가 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겠지만 지금은 우선 글쓴이를 어디에 구축하려 한다. 그리고 이전에 내가 썼던 한 줄 평을 철회한다.
‘문학이 삶의 어떤 부분에 기여하는가?’에 대해서 회의한 적이 있었다. ‘자기계발서를 애독하고 처세에 민첩하게 움직여 이 한 몸 건사하는 게 잘 사는 길’이라 여겼던 시절, 어느 책읽기 커뮤니티 게시판에 질문을 올린 적도 있었다. ‘시’나 ‘소설’은 왜 읽나요? 에둘러서 유하게 물어봤지만, 속내는 ‘이거 읽는다고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돈이 되지도 않는데 왜 문학이 필요한가요?’였다. 사실 그때 기대를 좀 하기도 했다. 책 읽는 사람들이 많은 커뮤니티였고, 막 책 읽기에 재미를 붙여가던 차에 문학에도 좀 관심을 가져보려 했던 것이다. 나름 논리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스스로에게 만족할만한 이유를 찾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커뮤니티에서는 별다른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냥 내가 스스로 조합해서 구성한 답이라면,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타인과 부대껴 살아야 하고 ‘문학’이야말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주는 장르 아니던가? 아주 실용적인 이유지만 맞는 말이기도 하다.
책을 조금 더 다양하게 그리고 많이 접하면서 편협한 시각도 약간은 잦아들게 되었고, 나름대로 문학에 대한 관점도 바뀌게 되었다. 문학은 단순히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인간 그 자체에 대해 깊이 탐구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거다. 인간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자신을 가까이 들여다 보게 되고, 때로는 고민과 아픔이었던 내 안의 어떤 모습에 대해서 조금은 관대하고 너그러워질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문학은 예술과 철학과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고, 기쁨과 슬픔, 그리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황현산 선생의 ‘밤이 선생이다’는 에세이의 형식을 빌린 문학이다. 선생의 과거 칼럼과 여러 곳에 발표했던 짧은 글들을 모아서 단행본으로 구성한 책인데, 문장 하나하나가 두텁고 단단해서 마치 시를 읽는다고 해야 할까? 잠언집을 읽는듯한 느낌도 든다. 마음에 꽂히는 문장들은 잠깐 멈춰 서서 생각을 해야 한다. 심호흡도 필요하다. 그 문장이 나오기 까지 수많은 말과 생각이 쌓이고 쌓여서 가장 단단하게 깎고 닦아 마지막에 남은 문장을 내어 놓은 듯한 느낌이다.
과거에는 무언가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그 내밀한 속내를 가만히 묘사하는 종류의 글들에 감흥이 없었다. 사건과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문체와 표현에만 신경 쓰는 듯한 글을 두고는 되지도 않는 소리만 늘어놓는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글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답을 주지 않는 글, 모호하고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가슴 속 깊은 곳을 울리는 게 어떤 글인지 경험하기 시작했다. 가슴을 울리는 무엇은 당연히 글로는 명료하게 표현될 수 없다. 모든 것이 문자화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글쓴이의 심정과 처지를 공감하게 만드는 문장들은 또렷하게 판단할 수 있는 글보다는 훨씬 깊은 여운을 준다. 황현산 선생의 글이 그런 글이다.
책에서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이라는 글이 나는 좋은데, 민주주의는 오롯이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이다라는 말, 그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을 때는 그 말이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제한한다는 말을 하면서 ‘사랑’이라는 말을 예시한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 자체가 완벽한 것이고 그 다른 무엇도 필요하지 않다. ‘당신을 그 무엇보다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순간 사랑은 비교대상이 되고 완전성을 잃어버린다는 말, 참 마음에 와 닿는 말이다. 비슷한 내용으로 얼마 전 읽었던 장 뤽 낭시의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에서 사랑에 대한 문구를 찾아봤는데, 내공이 깊은 사람은 사유가 비슷한 걸까? 유사한 대목이 있어 잠깐 적어본다.
“나는 너를 조금, 많이 사랑해. 여기서 여러분은 이미 이것이 사랑이 아니란 것을 알 테죠.
여러분이 “나는 너를 많이 사랑해”라고 말한다면, 이미 그를 좌절시킨 것입니다. 이 말은 “나는 너를 사랑해”가 그것으로 완전하다는 의미이며, 우리는 그저 “난 널 사랑해”라고 말하면 됩니다. 그것은 양을 헤아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나는 너를 조금, 혹은 많이 사랑해”라는 말은 내가 어떤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고, 또한 그런 말은 사물들에나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난 널 사랑해’라고 말할 때, 나는 어떠한 측량도 가늠할 수 없고, 그것이 많은지 적은지를 말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즉, 진정한 사랑이란 그 양이나 정도를 헤아리거나 비교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넘어서서 시작한다는 사실입니다…우리가 양을 가늠하고 비교하는 한 그것은 그저 이익관계에 머물 뿐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 완전한 차원에서 시작합니다.
빅이슈에서 소개한 책이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 "황현산의 첫 산문집"이라는 말이 마음을 끌었다. "첫"이란 말에서, '왜 황현산 씨가 이제야 그 주옥같은 글들을 모아 산문집을 내었는지', '이제 드디어 우린 그의 글 모음을 읽어볼 기회를 갖게되었다!'라는 기쁨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은 책이 어디있겠냐마는, 작가의 시선과 가장 가깝게 세상을 바라볼 기회는 산문을 통해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피천득의 수필 <수필>에서처럼 수필이 청자연적이며 난이며 학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피천득의 많은 수필 가운데 마음에 와닿는 것들을 일기에 그대로 옮겨 적곤 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이번 산문집에서도 그러한 보석같은 글을 발견하길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산문이란 "율격과 같은 외형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문장으로 쓴 글로서 소설이나 수필 따위"를 말한다. 자유로운 문장으로 엮어진 글이지만 내가 일기에 끄적거리는 자유로운 글과는 많이 다르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란 틀에 박힌 말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성찰의 깊이가 매우 깊은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스쳐갈 만한 장면이나 현상에 대해 사색하며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각기 다른 사회 문제에 대하여 뚜렷한 근거를 들어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사진 속의 소년이 그 생애의 어느 날에 눈밭에 가려 어둑해진 산을 배경으로, 와본 것도 같고 처음인 것도 같은 어느 고적한 길을 어머니와 조금 떨어져 헤매는 꿈을 어쩌다 꾸게 된다면, 그는 필경 그 꿈속의 길을 이 개의 마음으로 헤맬 것이다. 개는 내내 주인을 따라가지만 언제나 주인과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꿈은 사람 속에서 피어나 사람과 동행하지만 반드시 사람과 같은 방향에 시선을 두는 것은 아니다. 이 거울의 개는 우리가 흔히 에술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신이다."(<겨울의 개>(제 2부) 中)
한 아낙과 한 남자아이가 겨울길을 걸어오는 장면을 마주하며 찍은 흑백사진(물론 오른쪽에는 방향을 살짝 튼 한마리 개가 있다)을 보고 모자의 관계와 과거 여인의 삶, 목표지향적인 인간의 모습을 서술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등장인물들에게 집중된 것처럼 보이는 사진 한 구석의 한 마리 개의 모습에서 예술의 의미를 끌어냈다는 점이다. 작가의 생각대로 자유롭게 나를 끌고(?) 다니다 나의 정신을 덜컥 긴장시키며 멈추게 한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게 한다. 혹은 앞을 내다보게 하기도 한다. 나의 삶은 사람과 개의 모습 중 어떤 것과 닮았고, 어떤 것을 동경하며, 어떤 것에 만족을 얻는지.
이렇듯 작가는 사소한 것을 무심해도 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글쓰기가 독창성과 사실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사소한 사정'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당신의 쓰고 있는 글에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한다. 자신감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사소한 경험을 이 세상에 알려야 할 중요한 지식으로 여긴다는 것이며, 자신의 사소한 변화를 세상에 대한 자신의 사랑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당신의 사소한 사정>(제 3부) 中)
화려하고 신나게 보이는 삶을 꿈꾸곤 한다. 일상의 뜻이 언젠가부터 지루함과 불만족스러움으로 바뀌어버리게 되었을까. 그런데 나의 사소한 일상과 사소한 기쁨과 사소한 슬픔이 세상에 알려져야 할 중요한 지식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일상, 나의 삶, 나아가 나란 존재에 의미가 더해지고, 그것들은 가장 사랑스러운 것이 된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빛을 숨기고 있는 모든 사소한 것들에게 바치는 한 편의 글은 황현산 산문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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