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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2년 08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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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반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612쪽 | 622g | 130*207*35mm |
ISBN13 | 9791167901194 |
ISBN10 | 1167901193 |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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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1월 08일
문학 PD가 보내는 백 번째 편지 : 100호 기념 기획전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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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라 내 귀여운 아가, 넌 어쩜 그리 이쁜 짓만 골라 하니. 여기 하늘나라 내 옆에 있는 엄마에게는 소련군 점령 시절 무자히딘 전사로 지하드에 참여했다 순교한 두 오빠, 아마드와 누르의 대역으로 위안을 주더니 이젠 네 남편 라시드의 첫 번째 부인 마리암이 못다 이룬 삶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니.
네가 마리암의 아빠 잘릴의 편지를 읽는 걸 보고 기분이 참 묘했단다. 편지도 잘릴의 유품 가운데 하나였지. 그가 남긴 봉투엔 마리암이 그렇게 보고 싶어 했는데도 냉정하게 거절했던 게 마음에 걸렸던지 피노키오 만화영화 테이프를 넣었더군. 그리고 살아 있을 때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마리암 몫의 돈도 함께 들어 있었지. 그 편지를 네가 읽어 나갈 때 여러 갈레 생각이 교차되었단다. 우리 딸이 대견해 보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샘이 더 많이 났음을 고백할게. 그리고 아빠가 네게 뭐 하나 뚜렷이 남겨준 게 없구나 하는 자책도 밀려왔지. 편지 속에서 잘릴은 딸이 좀더 관대했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하고 자신이 주지 못했던 행복과 평화와 사랑을 마리암은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는데 그 대목에서 가슴이 먹먹해져 한동안 어찌 할 줄 몰랐단다. 아빠도 같은 심경이었거든. 그래서 천국에 있는 아빠도 너에게 전해질는지 모르지만 우리 딸을 축복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거란다. 아마 똑똑하고 마음결 잘 헤아리는 딸이기에 아빠의 심경도 자연스레 읽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난 네 속에 영원히 살아 있으니까 충분히 가능할거야.
라일라, 너를 낳았을 때 엄마와 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단다. 앙증맞은 너를 보며 온갖 세상 시름을 잊곤 했지. 자랄수록 너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머리에 짙은 속눈썹, 청록색을 띤 눈, 보조개, 높은 광대뼈에다 샐쭉거리는 입술까지 어찌 그리 이쁘던지. 그리고 머리는 또 얼마나 좋았고. 해마다 각 학년 최우수 학생에게 수여하는 아왈 누므라 상을 도맡아 받곤 했었지. 그러나 한편으론 늘상 무거운 것에 가위 눌린 듯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단다. 아빠와 우리 아프간이 처한 그 엄혹한 현실이 딸로 태어난 너를 얼마나 힘겹게 할는지 눈에 선하게 그려졌기 때문이었어.
그런데 내 딸아, 우리 아프간은 원래 그런 나라가 아니란다. 장미와 튤립으로 가득한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이지. 하늘의 천사들도 그 푸른 초원을 부러운 눈으로 내려다보곤 했단다. 그러니 도시의 지붕 위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달들이 반짝이고 벽 뒤에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숨어 있다고 17세기 페르시아 시인 사이브에타브리지는 노래했던 거야. 아프간은 이렇게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비치는 밝고 아름다운 나라야. 다만 그 햇빛이 벽 뒤에 가려져 있을 뿐이지. 그런데 사람들은 그 너머에 비치고 있는 셀 수 없을 정도의 태양은 보지 못하고 암울한 이쪽만 응시하고 있단다. 그러니 아프간은 사악한 나라가 되고 만거야.
특히 작년에 칸다하르 도상에서 선교팀이 피랍되어 애를 끓이던 한국이라는 나라 사람들은 더욱 심한 편견을 갖고 있는 듯해. 악마가 우글거리는 지옥이 따로 없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더라고. 그런데 그 나라 사람들은 진실을 제대로 바라보는데 익숙하지 않더라. 아니 어쩜 빤하게 보이는 일까지 불편해 하더라고. 1992년인가 미국 LA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났던 일 아빠가 말해줬었니? 유색인종으로 소외받던 자들의 울분이 폭발하던 그 때, 왜 흑인들이 분풀이 대상으로 한인 상점을 택했는지, 그렇게 어이없는 약탈을 감행했는지 그들은 아마 잘 모를거야. 유색인종으로 주류 사회 구성원이 아닌 처지는 같은 데도 말이야. 그때 보니 그들은 백인보다 오히려 더 심하더라. 와스프(WASP)의 우월 의식을 완전 자기 것인 양 내면화하고 있더구나. 그러니 공분의 표적이 될밖에.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은 아프간을 무자비한 야만인들이 사는 미개한 나라로 여겨 그들을 계몽한다는 명목으로 선교팀을 시혜하듯 파견하고 있지. 이런 편견은 아마 탈레반과 알 카에다에 대해 알려지며 더욱 공고하게 굳어진 것 같아.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가 9.11테러를 미국 심장부에서 자행하고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흔적도 없이 폭파했으며 여성들에겐 교육과 취업 기회를 봉쇄한 것 등이 공개되고 난 다음 말이야. 그런데 실은 이런 것들이 아프간 민중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인데.
그러나 예외도 있더구나. 황석영이란 작가가 있는데 한국인 바리와 파키스탄 출신 무슬림 압둘의 아름다운 연대를 담고 있는 <바리데기>란 소설을 썼거든. 그는 오히려 이슬람교도나 흑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차별하며 전지구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장본인이 미국을 위시한 서구 주류 사회라 보고 그들 행위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더라. 문제의 이면, 그 가려진 실상을 조목조목 시원하게 짚어 내더라고. 세상의 진실과 정의는 늘 일방적인 논리로 강변되기 일쑤임을 보여준거지. 황석영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과 문명의 공존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임을 상기시키더니만 그 요원한 일을 이루기 위한 방편의 일단으로 바리와 압둘이 더불어 나아가는 모습을 제시하고 있더구나. 선의의 인간들이 맺는 인연의 연쇄가 전지구적 차원의 문명 공존을 이루는 작은 출발점이자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일거야. 단번에 그 한국인 작가에게 빨려들겠더라.
라일라, 우리 아프간의 아름다운 곳을 비록 많이는 아니지만 몇 군데 가보았지. 아빠와 함께 갔던 석불 여행 기억나니? 그 때 타리크도 동행했던가. 백 살까지 산대도 그렇게 장엄한 것은 다시 못 볼 절경이었지 아마. 절벽에 조각된 불상이 마치 2천 년 전 실크로드 대상을 내려다보듯 우리를 굽어보고 있지 않았니. 불상의 머리 위쪽에 올라가 바라본 바미안 계곡의 풍요로운 장관은 또 어땠고. 그렇게 아름답고 찬란한 문화가 꽃피었던 곳이야. 앞서 얘기했던 황석영이란 작가가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 썼던 수기 제목이 아마 <사람이 살고 있었네>일거야. 뿔 달린 빨간 괴물들이 살고 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북한 사람들도 고결한 것을 흠모하며 나름대로 정겹게 살아가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지. 황석영 작가가 아프간에 와 보았다면 아마 같은 제목의 글을 썼을걸.
하지만 세월의 질곡은 우리 아프간을 피해가지 않았지. 그 와중에서 라일라 네 삶도 힘들었겠지만 지금 네가 그렇게 애틋해하고 하나가 되었으면 생각하는 마리암있지, 그녀의 신산한 삶을 생각해봐. 마리암은 마치 잘릴의 집 방에 놓여있던 마트료슈카 인형처럼 겹겹이 중첩된 사슬에 얽매어 있었잖니. 우선 세상이 악마로 여기는 무슬림에다가 남자의 부속물처럼 취급되는 하등한 존재인 여자, 또 서얼로 태어난 천출 하라미로 잘릴의 정부인과 적자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잖아. 그런 몇 겹의 질곡에 시달리던 잡초같은 존재였지. 그런 와중에 소련의 침공으로 공산화가 되고 또 무자히딘 전사들의 약탈과 살육을 고스란히 지켜보았으며 탈레반의 학정까지 겪었으니 그 고달픈 삶은 더 말해 무엇 하겠니. 그런데 그녀는 하나의 전쟁을 더 치러야 했어. 바로 라시드와의 그것이지. 폭력적인 가부장으로 지배자의 상징이었던 그. 뭇사람들의 싸움의 와중에서 죄 없이 죽어가는 이들을 너무나 많이 봐서 폭력에 길들어있던 마리암이었지만 라시드에게 당했던 그것은 인내의 한계를 한참이나 넘어선 것이었어. 인간의 몸이 어떻게 그런 악의적이고 규칙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을 견디고 계속 기능을 다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였지. 그리하여 마리암에게는 내리는 눈송이 하나하나가 고통 받고 있는 여자들의 한숨처럼 보였던 것일 거야.
그런데 이상하지. 아니 정말 대단하지. 그런 중첩된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고 발랄하게 나름의 주장을 펼쳐왔다는 게 말이야.
그런 마리암과 너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존재인 태양처럼 단단한 우정을 나누었지. 물론 처음엔 서로의 마음 문을 닫은 채 모욕을 주기도 했고. 그래서 약간 걱정도 했단다. 마리암과 너를 이어준 건 의외로 아지자였지. 고 영특한 아이. 자면서 방귀를 뀌는 모습에 서로 쳐다보며 눈물이 나도록 웃다가 자연스레 격의 없이 흉허물을 터놓는 걸 보고 아빠는 마음을 놓았단다. 그런 아지자를 고아원에 맡기고 둘이서 뒤돌아 나오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짠해 진단다. 뒤에서 공포에 질린 비명 소리가 들렸을 때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울음을 참으며 함께 통로를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나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서로를 인정하고 의지하며 더불어 나갔으니 존중받은 경험이 없고 늘 세상이 자신에게 불친절하다고 느껴왔던 마리암일지라도 마음 문을 활짝 열밖에. 그래서 너를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걸 수 있게 된 거고.
타리크의 귀환 소식을 듣고 질투와 분노에 휩싸인 라시드가 끔찍한 만행을 가해 왔었지. 좀 전에 일러 주었던 황석영 이라는 작가 있잖아. 그가 쓴 <장길산>이라는 소설에‘장산곶 매’설화가 나오는데 그게 딱 라시드의 죽음 이야기에 다름 아니더라. 너를 독점하려는 생각에만 휘둘려 오히려 너를 해하려했던 그가 바로 ‘장산곶 매’를 자기 마을에서만 오롯이 차지하기 위해 발목에 매듭을 묶어두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라는 말이야. 그런 집착이 결국 매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말았지. 매듭이 나뭇가지에 걸리고 말았거든. 정말 소설처럼 참담한 일이 벌어질 뻔한 찰나에 마리암이 개입하여 급반전이 이루어지게 되었지. 오히려 라시드가 죽임을 당하고 넌 간신히 살아나게 되었던 거고. 그 순간 마리암은 처음으로 자신의 삶의 행로를 스스로 결정하는 용단을 내렸던 거야. 그러니 조금의 거리낌도 없을 수밖에. 그 당당한 태도에 사형을 집행하려던 탈레반 병사까지 숨죽이고 올려다보았잖니. 우리 딸 라일라의 마음속에 마리암은 아마 천 개의 태양이 내뿜는 눈부신 광채로 빛나고 있을거야. 아빠 역시 네 속에서 그렇게 반짝거렸으면.
라일라. 생각해보니 마리암과 너, 둘이는 너무 앞서나갔던 것 같아. 지금 여기의 우리 아프간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거지. 그러니 시대와의 불화로 까맣게 타들어 갈 밖에.
그러나 라일라 너는 기어코 그 간난을 이겨 내었지. 그리고 이제 파키스탄 여름 휴양지 마리에서의 꿈 같이 안락한 삶을 정리하고 버겁고 팍팍한 나날이 기다리고 있을 아프간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결정까지 내리게 되었고. 9.11 이후 마리에서의 삶은 뭔가 불충분하고 중요치 않으며 낭비 같다고 여기던 네가 떠오르는구나. 넌 역시 아프간이야. 아프간이 널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단박에 가슴으로 알아차렸던 거지. 새 조국에서 네가 할 일이 정말 많거든. 그래서 결국 타리크와 함께 아지자와 잘마이를 데리고 돌아왔구나. 타리크와 너는 참 잘 어울린단다. 네 엄마가 걱정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그가 마음에 들었다. 기품 있는 외모에 자상한 심성을 지닌 타리크. 너랑은 하마터면 페르시아판 <로미오와 줄리엣>인 <라일리와 마즈눈>이 될 뻔했지. 그리고 로켓탄이 우리 집에 터지던 그 날 말이야. 거기서 17일만 먼저 출발했더라면 온가족도 무사하고 타리크와 함께 파키스탄에서 잘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신의 뜻은 정말 알 수 없구나. 하나 결국 그와 너는 인연의 끈으로 다시 하나가 되었지. 그리고 이젠 동반자고. 네가 마리암의 미완의 삶을 완수하고 이제 아지자의 인연이 배어 있는 고아원으로 향할 수 있게 된 데는 타리크의 정신적 지지가 큰 몫을 했다 할거야.
아 참! 돌아오는 길에 마리암의 추억이 깃들어있는 헤라트에 들르기로 한 건 너무 좋은 생각이었다. 역시 정이 많고 삶의 의미를 아는, 인간미 넘치는 내 딸이야. 마리암과의 작별과 진혼을 소홀히 할 순 없지. 그녀 역시 아빠나 엄마 같이 지금의 너를 있게 한 고마운 존재니까. 마리암, 아무런 불평 없이 시대를 견디며 자신에게 덮쳐오는 물살에도 굴하지 않고 품위를 지키던 그 의연한 모습, 잊히지 않는다.
이제 새로운 나라는 마치 새 이름 짓기 놀이를 하듯, 완전히 달라진 구조로 만인이 참여하는 가운데 건설되겠지. 네가 사과나무 묘목을 심고 페인트칠도 깨끗이 하는 등 작은 일에서부터 아프간 재건 사업에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단다. 그건 아프가니스탄에 돈을 주겠다던 원조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재건축이 너무 천천히 진행되고 있으며,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고, 탈레반이 다시 결집하여 돌아와 복수를 할 것이며, 세계는 다시 한 번 아프간을 잊을 것이라고 불평하며 조급해 하는 사람들에 대한 통쾌한 답변이 될 것이야. 아프간 사람들이 쳐부술 수 없는 유일한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의 내면을 바꾸는 일이라고 아빠가 전에 말했었지. 그런데 그게 이제 네 몫이라는 생각이 든단다. 우린 지혜로운 민족이니까 아름답고 안전한 곳, 푸른 보리밭이 있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그런 멋진 나라를 만들어 내고야 말거야. 그리고 그건 어디서 찾을 게 아니라 당연히 네 손으로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고. 우리 딸은 꼭 해내리라 믿는다.
라일라, 마지막으로 너에게 꼭 부탁하고픈 게 있다. 너와 마리암 같은 사람은 아프간에만 있는 것이 아냐. 다른 나라의 어려운 이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이 얼마나 필요한지 아니. 하니 아프간 재건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나면 이제 그들을 위해서도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해. 그런 의미에서 타리크가 프랑스 NGO의 장애인 의족 보급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너무 고무적인 거 있지.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고아 교육 사업도 국제적으로 펼쳐 나갈 수 있을거야. 아프리카나 다른 분쟁 지역에도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이들이 셀 수 없이 많으니까. 네가 NGO의 활동가나 UN같은 국제기구의 대표 자격으로 그런 곳에 가서 활동하는 모습을 아빠는 그려본단다. 아빠 바비가 우리 딸 라일라에게 바랐던 것이 그런 모습 아니겠니. 분노에 무력해지지 않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우리 딸이니 이것도 충분히 이루리라 믿는다.
내 딸 라일라, 네 앞길에 이제 좋은 일만 있기를 빌어줄게. 다시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비치는 우리 아프간을 만들어 내고 그걸 맘껏 누릴 수 있도록 말이야.
하늘나라에서 사랑하는 아빠 바비 하킴이
소설이 어떻게 우리의 삶 속으로 스며들 수 있을까, 나는 종종 궁금해지곤 한다. 이 두꺼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늘 멀찌감치 떨어져 구경하는 구경꾼처럼 소설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곤 했다.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책의 첫 장을 펼치고 나서, 처음에는 그저 멀게만 느껴지는 그 삶의 이야기들을 관찰하듯 읽어 내려갔다. 마치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삶을 훔쳐본다는 심정으로. 그러나 책을 펼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이건 나의 이야기라고.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라고. 바로 우리 삶에 관한 이야기라고.
이 책을 읽었던 시간은 소설이 어떻게 타인의 삶 속으로 온전히 스며들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지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타인의 삶을 관찰하듯 바라보다 어느덧 서서히 스며들면서, 그것이 바로 내 자신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소설’이라는 형식이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를 느꼈다. 소설 속 그녀들의 삶이 내 자신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아릿한 슬픔에 마음이 아파온다. 내 자신의 이야기가 된 것처럼 느껴진 그 순간부터 한 글자, 한 글자가 마치 강렬한 통증을 몰고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프게 읽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고통스런 병을 앓고 있는 지독한 환자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만큼 아팠다.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것조차 오히려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그 곳에서 소설 속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그녀들을 떠올리면.
두 여자 이야기- 그리고 그리움에 관하여
두 여자가 있다. 마리암과 라일라. 두 여자는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먼저 마리암. ‘사생아’라는, 마리암의 삶을 결정짓는 아픈 운명 속에서 그녀의 삶은 마치 불운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여행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자의 삶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문득 책장을 넘기는 일이 두려워졌다. 그녀의 삶에 드리울 어둠을 만나는 일이 겁이 났다. 아버지를 찾아가지만, 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던 밤, 그녀의 운명은 이미 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버린 느낌이 들었다. 남겨진 어머니가 자살하면서 그녀의 삶에 평생 지워지질 않을 상처가 새겨진다. 그녀의 삶은 그렇게 자신도 어찌할 수 없었던 상처를 평생 다독여 가야 할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그래도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과 회한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는 믿었던 아버지로부터 버려진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부인들에 의해 마치 팔려가듯, 결혼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마리암. 이제 늙은 구두장이 라시드라는 낯선 남자의 집에서 그의 부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녀는 자신 또한 아버지를 버리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한 여자의 삶에 깊은 상처가 드리워진다.
그리고 라일라. 라일라의 삶의 배경은 처음에는 마리암의 그것과 확연히 달라보였다. 그녀는 여성의 교육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났다. 우등생이었던 라일라. 여성의 삶이 대수롭지 않게 짓밟히는 그 곳에서도 자신의 꿈을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라일라. 그러나 전쟁은 라일라의 삶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녀는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처지가 되고 그녀의 가족들은 전쟁으로 인해 무너진다. 전쟁으로 오빠들이 죽으면서 어머니의 삶마저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전쟁은 너무나 잔인하게도 라일라에게서 남은 가족들마저 모두 앗아간다. 그녀의 집에 폭탄이 떨어져 가족들이 모두 죽고, 그녀 혼자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 것이다. 혼자 살아남은 삶. ‘여성’의 삶이 철저히 짓밟혀지는 그 곳에서 ‘여성’으로 혼자 살아남은 것이다.
그녀들은 그렇게 만난다. 가족들을 잃어버리고 여성으로 혼자 남겨진 채로. 그러나 그것이 그녀들을 이어줄 수는 없었다. 한 남자가 사이에 있었으니까. 가족을 잃은 어린 라일라를 돌봐주는 것이 그녀를 자신의 두 번째 부인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음흉한 목적임을 드러내는 라시드 사이에서 두 여자의 관계는 어긋난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엇갈릴 수밖에 없는 관계 속에서 그녀들은 처음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애초에 불가능해져버린 상황 속에서 그녀들은 엇갈리고, 갈등하고, 불신한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아이를 통해서였다. 라일라가 낳은 아이, 아지자. 한 사람은 아이를 낳기도 전에 아이를 잃어버렸지만, 그녀들은 똑같이 어머니였다. 어머니로서, 그리고 같은 여성으로서 그녀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남편의 잔인한 폭력 앞에서 두 여자는 서로에게 기댄다. 소통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그 상황 속에서 두 여자가 서로를 알아가는 그 과정들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마치 누군가를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시도 속에 우리의 삶이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처럼. 상대를 향한 차가운 몸짓에서 점차 자신의 깊은 속내까지 드러내게 될 정도로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들은 우리 인간이 차가운 고통 속에서도 얼마나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 존재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어쩌면 그녀들이 서로를 향해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그녀들의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비슷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녀들 모두 누군가에 대한 깊은 그리움이 어떻게 삶을 이루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들의 삶 자체가 똑같이 누군가에 대한 먹먹한 그리움들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마리암의 삶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와 자신이 죽게 만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고, 라일라의 삶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전쟁으로 인해 잃어버린 가족들, 그리고 전쟁으로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 타리크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 그리움의 힘으로 전쟁과 폭력 앞에서 그저 연약하기만 했던 그녀들이 서로를 차가운 고통 속에서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삶에 마침표를 찍게 만들고 싶도록 가혹하게 들이닥치는 고통 속에서도 우리 삶을 끈질기게 이어주는 것 또한 그 그리움의 힘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 삶에 남겨 놓은 사랑의 흔적들 속에서 우리는 고통을 이겨나가는 힘을 얻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희망에 관하여
이 책을 읽는 일이 힘들었던 것은 그렇게 우리 삶에 새겨진 그리움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설 속에서 그녀들이 존재하는 위치,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무거움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이보다 더 절절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이 말하는 여성의 삶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특정한 지역에서의 여성의 삶을 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 소설은 아프게 전달한다. 아프게 느끼게 한다. 무너지는 꿈, 짓밟히는 삶.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희생. 폭력과 전쟁으로 짓밟힌 그녀들의 삶은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절실한 무거움을 폭로하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 곳뿐만이 아니라 지구의 곳곳에서 아직도 수많은 여성들의 삶이 짓밟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마리암의 엄마 나나가 말했던 것처럼 소리 없이 내리는 눈들은 여자들의 한숨이 쌓여 내려앉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고통스런 여성의 삶이 소리 없이 쌓여 차가운 눈으로 내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훔쳐보기에서 나아가, 내가 소설 속 그녀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들의 이야기가 지금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리움이 어떻게 삶을 이어지게 할 수 있는지를, 삶을 부서지게 한 것들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통으로 인해 비참히 무너지지 않는 삶을 소설 속에서 만나는 일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 될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통스런 삶 속에서 고통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기에, 비참하고 고통스런 삶 속에서도 누군가에게 따사로운 빛이 되어줄 수 있기에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일라에게 마리암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역시 마리암에게 라일라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 순간, 삶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되어 우리를 비추는 것인지도 모른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내게 늘 생경한 단어였다. 누군가가 억지로 만들어낸 말처럼 느껴지던 그 단어. 만약 소설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끔찍한 상황에서도 삶이 자신을 철저하게 외면하지만은 않게 하는 그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가령 이 소설 속에서 두 여자에게 닥쳤던 상황들 속에서도 두 여자들을 살아내게 한 그 무엇처럼. 마리암은 슬픈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이 꼭 슬픈 결말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은 가장 행복한 순간 자신의 삶을 끝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라일라에게 ‘삶’이라는 가슴 벅찬 선물을 주고, 자신도 삶이 주는 가장 따뜻한 선물을 받고 떠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스런 상황에서도 삶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하는 그 무엇. 비루한 눈물들을 쏟아내는 삶이라 할지라도 우리 삶을 어느 한 순간 찬란하게 만들어주는 그 무엇. 누군가를 이해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누군가를 용서할 때 느낄 수 있는 그 무엇. 그 무엇이 우리를 살아내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희망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면, 바로 그러한 것들에 붙여줄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도, 책을 읽는 순간, 순간이 아플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녀들의 삶에 대한 얄팍한 연민의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 소설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순간들을, 찬란한 빛으로 스며드는 그 순간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 찬란한 빛이 내 삶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나는 내게 그토록 생경하게만 느껴졌던 단어, ‘희망’이라는 말을 속으로 외치며 조용히 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뜨거워진 마음으로 책장을 덮고 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 그것은 고통스런 우리의 삶을 살아내게 하는 눈부신 힘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지금 나를 살아있게 하는 바로 그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지구반대편에 있어 몇시간에 걸친 비행을 하고서야 닿을 수 있는 나라, 끊임없는 내전으로 총성이 그치지 않는 나라,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가난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맹목적인 신앙심을 가진 이슬람교도들의 나라,아프가니스탄은 지리적인 거리만큼 우리와는 먹고 사는 방식과 관습이 다른 이방인의 나라이다. 무관심했던 사람들이 이 땅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게 됐던 것은 911테러였다. 비록 텔레비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목격한 장면이었지만 내 눈을 의심할정도로 생생하고 놀라웠다. 불과 몇분도 안되는 짧은 순간에 사라져버린 건물,도시를 뒤덮은 빌딩의 잔해와 짓밟히고 뒤엉켜버린 시신들,가족과 친구를 잃고 절규하는 사람들의 눈물,현장은 참혹하다고 밖에 할수 없었다. 이 사건으로 다른 문화를 가진 미국과 아프간 두 국가간의 갈등은 전세계인을 종교적인 가치관이나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두 편으로 갈라놓는 시초가 되었다. 세계는 아프간을 중심으로한 소수민족과 미국을 중심으로 다수민족으로 나누어졌다. 아프간 인들은 종교적인 신념을 위해서라면 무차별적인 살인도 마다치 않는 미치광이 광신도였고 미국인들을 이유없는 테러에 희생된 선량한 피해자였다. 힘과 권력을 가진 다수민족국가인 미국은 이를 이용해서 그들의 절망과 불안감을 호소하며 세계인의 이해와 지지를 끌어내었다. 입지를 굳혀가는 미국과는 달리 아프간은 점점 더 궁지에 몰리며 온 세상의 비난을 받는 테러리스트들의 나라로 고립되어 갔다.
아프간도 나에게는 그들과 같이 두려운 땅이었다. 그 거리에는 검붉은 피부에 총을 두른 군인과 경찰들이 넘쳐났고 검은 천으로 온몸을 감춘 여인과 때에 찌든 아이들은 무기력하게 늘어앉아있었다. 그들의 눈에 맺힌 분노와 절망의 여파가 어디까지 어떻게 미칠지 가늠할 수 없어 공포스럽고 걱정스러웠다. 이미 그들은 평범한 외국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생명보다 신념이 중요한 무모한 살인마일 뿐이었다. 아프간은 인간적인 삶도 자유도 없는 오직 신을 위한 신에 의한 세상을 경악케할 또다른 테러만을 모의하는 용사들로 넘쳐나는 땅인 듯 했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편협한 생각이었다는 것은 알게 된것은 마리암과 라일라을 만나고 나서이다. 우리가 매체로 만난 테러리스트들이 아프간인의 전부가 아니며 그들가운데는 계속되는 전쟁이 지겹고 그 때문에 일상이 고통스럽고 힘겨운 사람들이 있음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척박한 땅에도 거룩한 용사도 비정한 살인마도 아닌 우리와 같은 희노애락의 삶을 엮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전쟁때문에 죽어간 가족과 형제때문에 눈물흘리고 총성소리에 가슴을 조리며 수없는 순간동안 죽음의 공포를 겪는 사람들이었다. 불필요한 분쟁때문에 삶을 저당잡힌 사람들이었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총성이 그치지 않는 땅,아프간에서 살아가는 두 여인의 삶을 그린 이야기이다. 마리암과 라일라는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하지 않는 낙후된 인습의 땅에서 수동적으로 살아갈수 밖에 없는 숙명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운명을 원망하거나 절망하는 약한 여인네가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의연한 모습으로 할수 있는 한 모든 마음과 힘을 다해 삶의 순간순간을 담담하게 마주하는 강인한 여인들이다.비루한 삶을 한탄하며 목을 매단 엄마를 보고서도,혈육으로 인정하지 않는 아빠의 차가운 시선에도,남편의 채찍질에 멍이 들고 발길질에 피가 터져도,사랑하는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할 수 없더라도,남자의 허락이 없으면 밖으로 한발짝도 나아갈수 없는 소유물로 취급당할지라도, 세상이 인정하지 않은 여아의 생명을 잉태하였더라도 그들은 눈앞이 아득해져오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낙담하지 않았다. 함께 두손을 꼭 잡고 닥쳐오는 모든 삶의 여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였다.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커다란 갈등구조나 손에 땀을 쥐는 흥분되는 사건없이 간결한 문체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큰 감동을 주는 것은 마리암과 라일라가 거친 삶을 묵묵히 걸어갈수 있었던 원천적인 힘이 모성애였기 때문이었다. 아프간을 바라보았던 모든 이분법적이고 편협한 가치관을 단박에 무색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떤 신을 믿고 있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건 그건 그다지 중요치 않은 것이다. 다만 나의 아이를 지키지 위해서 목숨이라도 내던질수 있는 어미의 마음에서 우리는 너와 나의 시시비비 가리기위해 벌이는 피흘리는 싸움이 얼마나 뜬구름을 잡는 허무맹랑한 행위인지를 명백하게 가리어 준다. 비명과 총소리가 무성한 땅에서도 아프간인들의 삶을 지탱하고 이어주는 것은 죽음까지 이겨내는 어미의 마음이었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로 읽는다. 작년에 <연을 쫓는 아이>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라 단번에 그의 팬이 돼버렸다. 그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첫 작품이라 다음 작품은 얼마나 기다려야하나 싶었는데 올해 말, 그의 작품이 출판됐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었다. 보고 싶었던 작가가 후작을 들고 왔기에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이번 작품 또한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전개 되는데 두 여자의 이야기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마리암은 열다섯 어린 나이로 마흔 다섯의 구두장이 라시드에게 팔리듯이 시집을 간다. 강제로 하게 된 결혼이었지만 남편의 다정함으로 버림받은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가던 마리암,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계속되는 유산과 시간이 지날수록 폭력적인 본성을 드러내는 남편 라시드의 구타로 그녀의 삶은 끔찍해진다.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삶, 그렇게 마리암은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이 모진 세월을 견뎌낸다. 전쟁으로 인해 옆집에 폭탄이 떨어져 지식인의 딸인 열세 살짜리 소녀 한 명만 살아남는다. 소녀의 이름은 라일라. 라시드는 소녀를 구하고 마리암과 함께 돌봐준다. 가여운 아이를 돌봐준다고만 생각했던 마리암과 달리 평소 라일라의 아름다운 외모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라시드는 그녀를 둘째부인으로 삼는다. 지식인 부모를 가졌고 사랑하는 연인도 있는 라일라였지만, 부모의 죽음과 뒤이은 연인의 사망 소식, 그리고 자신의 뱃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연인의 아이 때문에 라일라는 라시드와의 결혼을 받아들이고 만다. 결혼 후, 라일라는 뱃속의 아이를 라시드의 아이로 속인 채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전쟁은 그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전작 <연을 쫓는 아이>가 주인공이 전쟁을 피해 외국에서 살았다면 이 책은 주인공이 그 나라에서 몸소 전쟁을 겪는 내용이라 전쟁의 참혹함이 적나라하게 들어났고, 호소력이 강하다. 게다가 그 책은 소년의 성장과 죄의식에 관한 내용이 대다수였다면 이 책은 전쟁 자체가 내용이 대다수다. 실제로 전쟁을 느껴보진 못했지만 작가가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겪었던 전쟁을 경험으로 써 나갔는지라 전쟁의 흉포함은 훨씬 충격적이었다.
국민들을 생각이라곤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탈레반들의 이기심에 화가 났고 그 나라의 문화를 내가 관여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여자들의 삶이 옛 조선의 여자들의 삶보다 더욱 하등 시 됐고 남편의 폭력에도 그저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는 아프간여인네들의 비애가 몸소 느껴졌었다. 여자들에겐 결코 피할 길이란 없는 나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마리암과 라일라가 남편의 폭력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은 측은하기도 하고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잘못된 의식으로 화가 났다. 아프간 여인들의 삶은 불공평한 것 같다. 여자들에겐 인권 따윈 없는 나라. 그래서 더 슬픈 나라.
책 표지에 두 여자의 아름다운 우정이라기에 중반부 까진 책을 읽으며 웬 우정일까? 싶었는데 결말까지 보고 난 후 아, 그제 서야 두 여자의 찬란하디 찬란한 우정이란 말에 동감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가슴 찡한 우정이다. 한편으론 마리암이 살아온 인생이 더 행복해지지 못하고 끊어진 삶이 안타깝기도....마리암의 희생으로 라일라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옛 연인과 재혼하여 자신의 불쌍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그들은 행복하지만 나는 울어버렸다. 마리암의 희생이 생각났었다.) 줄곧 읽는 동안 주인공을 비롯해서 아프간 여인들의 비참하고 불공평한 생활에 분개하며 한숨을 몇 번이나 쉬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살더라도 결말엔 주인공들이 행복해져서 화선지에 물이 스멀스멀 스며들 듯, 내 가슴도 함께 그렇게 스르륵 스며드는 가슴 벅찬 감동이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평화롭게 책을 읽는 동안 아직도 지구촌 어디엔가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1세기가 왔건만 전쟁은 여전하다. 이 책에서 나온 것처럼 아프간을 비롯해서 아직도 전쟁 중인 이스라엘과 에스파냐, 미국과 이라크에선 책에서 나온 전쟁 장면이 실제로 나오겠지. 비로소 전쟁이 어떤 것인지 실감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쟁의 흉포함에 시달리는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어서 전쟁 없는 행복한 나라가 찾아왔으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대부분 이슬람 문화에 대해 해박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와는 먼 나라이고 교류가 활발한 나라가 아니므로 일본이나 미국만큼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저 이슬람 종교이고 여자들이 히잡을 쓰고 다닌다는 사실밖에...나 또한 <연을 쫓는 아이>를 읽을 땐 그랬으나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치 아프간이 친근한 나라같다. 다시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으니 이젠 아프간 문화에 대해 알고 있다 자부해도 좋을 정도로 소설 배경 속에 묻어나온 아프간 문화 지식을 많이 섭렵했다. 멀고 낯선 나라를 단번에 나와 가까운 나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책의 힘은 놀랍다. 그 나라에 대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좋은 인상을 받고 그 나라에 친근감을 비롯한 애정을 가질 수 있다니. 앞으로 아프간에 더욱 지대한 관심을 가질 것 같다.
호세이니의 전작과 후작을 비교하자면, 나는 연을 쫓는 아이가 더 괜찮았던 것 같다. 이 책처럼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고 비참해지는 슬픔 삶은 가슴이 미어지기 때문이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읽지 못하겠다. 그렇게 산전수전을 겪은 탓에 마지막에 주인공들이 행복해지는 장면은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이 감정이 생길 수 있는 과정을 읽고 있는 건 너무 힘들다.
책을 읽으며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인가,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해주며, 나는 상관없이 친구가 더욱 행복하길 바라고 선뜻 자신이 희생할 수 있는 우정....아,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 벅찬 우정이여. 주인공들의 자세에서 많은 걸 배웠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마음속으로 천 개의 찬란한 태양 같은 그녀들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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