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감성과 사진작가의 찰나적 진심이 융합된 사진 시집 『Dam Dahm Ⅰ』
시는 문학의 장르로서 정서에 의존한다. 개인 정서의 표현이기도 하고 인간의 보편적 삶의 진실을 은유하기도 한다. 시가 우주의 모방이든 주관적 상상의 표현이든 인간 체험의 특징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의 깊은 내면, 즉 인간의 본질을 더듬는 시적 행위는 그러므로 형식이 아닌 내용으로 응답한다. 시는 소설이나 산문과는 다른 운문이다. 운문은 리듬이고 그것은 마음을 전하는 교감의 원리를 추구한다. 시인 심진숙은 시의 정서로 만물의 교감으로 이르는 길목을 부유하는 감성의 흐름을 포착하는 시인이다. 만물의 교감이란 인간의 삶이 신과 인간, 우주와 만물의 공존이라는 지극히 근원적인 형태로 존재했고 앞으로도 이러한 세계정신은 무변하리라는 믿음에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진숙은 세상을 향하여 이에 대한 답을 조심스럽게 찾는다, 심진숙이 이번에 내놓은 시집 『Dam Dahm Ⅰ』은 나와 우리의 삶이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의 공존과 교감이라는 정서의 형체를 시인만의 정교하고 독특한 시어로 녹여낸다. 시는 난해하지 않고 친근하면서 의미는 명확하고, 시어는 어렵지 않으면서 서정적이며, 리듬은 가벼운 듯하면서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Dam Dahm Ⅰ』은 부제에서 말했듯이 '나무 이야기(The Story of Trees)'다. 시인은 인간의 이야기를 나무로 이야기로 현현 시킨다. 나무는 상징이지만 시적 은유를 고집하지 않는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지기로서 나무는 인간의 영혼으로 담지 되어 부끄러운 인간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담백한 언어에 담아 날 것으로 토해낸다. 그러므로 시인의 시선은 나무에 머물지만, 영혼으로 교감하면서 우리의 삶을 들려준다. 사연 깊은 지실 마을은 인간이 살고 살아갈 마을이지만 ‘시인도 소리꾼도 매화마저 떠나버린 마을’이다. 사람이 사는 마을에 정서와 노래와 향기가 사라진 것은 내 영혼의 황폐함을 의미한다. 시인은 아픈 상처를 보듬는다. 내가, 네가 외면했던 고향 같은 곳, 인간의 영혼을 피워 올리는 소중한 터에 오롯이 서 있는 나무의 기억으로 그 순한 감성을 찾아간다. ‘상처로 아름다워지는 나무, 아직 검은 울음이 숨어 있기는 하지만 기억하는 상처로 희망의 조각들을 만들어내는’ 나무에게 시인은 어깨를 기댄다. 그리하여 『Dam Dahm Ⅰ』의 모티프는 ‘나무는 마을의 기억을 품는다’는 키워드를 제시한다.
인간과 나무의 관계는 신의 상징을 통하여 인간과의 교감을 이끌어내는 화두가 된다. 많은 시인들이 나무를 체화시켜 믿음과 진리의 재현을 시도했고, 존재와 윤리의 보편적 근원을 추구했다. 시인들은 나무는 근원적으로 수용의 의미를 포괄하면서 만물의 생성과 소멸의 순환 회귀적인 무한 생명의 상징으로 보았다. 나무의 결을 따라 흐르는 시간의 언어를 여성성으로 보는 김혜순 시인의 경우 이와 같은 남성 중심의 억압을 외세에 대한 항거로 읽을 수도 하고, 시인 나희덕은 생태적인 자연 친화적 성질과 자기 내면 속에 있는 타자로 비유하는데 이는 오랜 마을 당산을 지키며 인간의 영욕과 교류하는 나무로부터 인간의 질긴 생명력과 삶의 숭고함을 의미화할 수 있으며, 나무와 바람의 욕망을 생명의 근원으로 승화시켜 구속을 초탈하는 자유인의 상징으로 묘파한 황인숙의 시 세계로부터는 삶의 향기를 끌어내는 나무의 깊고 진한 속내를 반추할 수 있다.
『Dam Dahm Ⅰ』에서 심진숙 시인은 ‘시를 읽는 나무들’을 어루만지며 ‘다하지 못한 시인의 노래’를 이어간다. 전남 담양은 옛 마한의 땅이다. ‘천 년의 바람이 될 모든 것들을 위하여’ 원시의 땅으로부터 옛사람들의 마음을 찾는다. 그곳은 물이 시작되는 곳으로 세상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다. 시인은 ‘물이 시작되는 숲은 신화로 무성하다’고 노래하면서, 물의 역사를 따라 나무는 흐르고 그 ‘나무의 그늘은 물의 기억’이라고 읊조린다. 『Dam Dahm Ⅰ』은 나무의 기억을 소환하여 나와 이웃의 삶을 객관적 시각으로 조형하고 그 실루엣을 시인의 주관적 정서로 채색한다. 무채색의 기억의 그림자, 나무의 그늘이 시인의 영혼을 통하여 세상의 파노라마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심진숙의 시는 청각적이고 회화적이다. 시인의 미묘한 감성의 흐름을 포착되는 시점마다 윤색되지 않은 우리의 삶의 행태는 슬프고 또 아름답게 펼쳐진다. 마을과 사람들의 고난사, 외세 침략의 항전사, 고향 지킴의 신화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우리의 이야기로 전해지는 과정들이 시인의 담백한 시어로 재현된다.
마을의 당산에는 나무가 있다. 한국 샤머니즘에서 당산나무는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으로 우주목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당산나무는 신성하고 신과 인간의 교감을 이루는 매개를 상징한다. 『Dam Dahm Ⅰ』의 당산나무는 시인의 손길로 안내되어 우리의 분신이 되고 영혼이 된다. ‘속이 다 타서 거죽만 남은 몸통에서도 잎새들을 피워낼 수 있는’ 느티나무는 ‘나무들의 향기를 찾아서 오래 헤매던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신목이 되었다. 기억의 새는 ‘눈부시게 떨리는 정자나무 한오백년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면서 비구니의 슬픈 노래를 전해준다. ‘내가 몰래 우는 것이 바람에 떨어진 꽃잎 탓인 줄 알았는데’, ‘오백년을 살아도 뿌리내린 자리 떠나지 못하는 나무’의 그늘과 침묵으로부터 신화는 탄생한다. 저 유럽 나라 그리스의 월계수는 아폴론의 손길을 벗어나고픈 사랑을 모르던 다포네의 변신이었다. 나무는 인간을 품고 인간의 기억을 후세에 전한다. 인심을 낳고 노래하며, 꿈을 사랑했던 꽃과 바람의 이야기, 한 생애 설움으로 굳어버린 몸의 언어를 토해낸다. 시인은 그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또 다른 생명을 예감하면서 나무 이야기를 끝맺는다.
심진숙 시인은 『Dam Dahm Ⅰ』에서 그저 머물고 있다. 무엇이 삶인지 무엇이 진실인지 질문하지 않는다. 나무의 정령을 만나고 바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 할 뿐이다. 시인은 세상의 소리에 오염된 자신의 귀를 원망하며 나 아닌 누군가의 노래로 나무 이야기가 퍼져나가길 염원한다. 시는 이런 것이다. 모든 사람의 모든 감성으로 하나 된 우리의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Dam Dahm Ⅰ』의 모든 시는 어렵지 않고 담담하게 익히지만 타고 남은 재에서 불씨를 지피게 한다. 영혼의 정화까지는 욕심부리지 않더라도 적어도 시를 읽은 시간만큼은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된다. 『Dam Dahm Ⅰ』은 차별화된 사진 시집이다. 심진숙 시인의 감성과 김정한 사진작가의 찰나적 진심이 융합된 보기 드문 수작으로 보인다. 더 많은 분에게 꼭 권하고 싶은 마음으로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추천사는 잠시 숨을 골라야 한다.
- 신용성 (소설가,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