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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오영수, 김동리, 나도향, 주요섭 저 외 3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평단문화사 | 2011년 04월 08일 리뷰 총점10.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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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4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153*224*30mm
ISBN13 9788973433421
ISBN10 897343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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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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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8명)

저 : 박태원 (朴泰遠, 호 : 몽보夢甫, 구보丘甫)
작품의 이데올로기보다는 문장 그 자체의 예술성을 중시하고, 새로운 소설적 기법을 시도하는 한편, 인물의 내면 의식 묘사를 중시하는 등 강한 실험정신을 보여준 작가이다. (1909년~1987년) 서울 출생으로 1930년 신생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에 나왔다. 구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반계몽, 반계급주의문학의 입장에서 세태풍속을 착실하게 묘사한 『소설가 구보씨의 1일』『천변풍경』등을 발표함으로... 작품의 이데올로기보다는 문장 그 자체의 예술성을 중시하고, 새로운 소설적 기법을 시도하는 한편, 인물의 내면 의식 묘사를 중시하는 등 강한 실험정신을 보여준 작가이다. (1909년~1987년) 서울 출생으로 1930년 신생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에 나왔다. 구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반계몽, 반계급주의문학의 입장에서 세태풍속을 착실하게 묘사한 『소설가 구보씨의 1일』『천변풍경』등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1930년 일본 호세이대학(法政大學)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도중에 중퇴하였지만 그 일본 유학 시절 현대 예술 전반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경성고보 3학년 때인 1926년 『조선문단』에 시 『누님』이 가작으로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하였다. 초기에는 주로 시를 썼으나, 이후 단편 『적멸(寂滅)』(1930), 『수염』(1930), 『꿈』(1930) 등을 발표하면서 소설 창작에 주력하게 된다. 그리고 1933년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하면서부터 예술파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정립하기 시작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가족을 남겨둔 채 월북하였고, 북한 쪽 종군기자로 활동했다고 한다. 1960년에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의 집필을 착수하나, 당뇨병과 고혈압으로 실명과 전신불수가 되는 시련을 겪으면서『갑오농민전쟁』 1, 2부를 출간한다. 1986년 7월 10일에 사망했으며, 사망 후에 박태원의 구술을 정리하여 『갑오농민전쟁』 3부가 출간되었다.
저 : 오영수 (吳永壽, 월주月洲, 난계蘭溪. )
경남 울주 출생. 8·15광복 후에 귀국, 경남여고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시와 소설을 <백민>과 <신천지>에 발표하기 시작했다. 1950년 서울신문에 단편 「머루」입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갯마을』『메아리』등 잇달아 창작집을 간행했다. 어린이의 순진무구한 세계를 그린 『남이와 엿장수』, 『머루』(1950), 『대장간 두칠이』 등의 작품과 인정세태를 따스하게 그리면서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 경남 울주 출생. 8·15광복 후에 귀국, 경남여고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시와 소설을 <백민>과 <신천지>에 발표하기 시작했다. 1950년 서울신문에 단편 「머루」입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갯마을』『메아리』등 잇달아 창작집을 간행했다.

어린이의 순진무구한 세계를 그린 『남이와 엿장수』, 『머루』(1950), 『대장간 두칠이』 등의 작품과 인정세태를 따스하게 그리면서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화산댁이』(1952), 『박학도』(1955), 『여우』(1957), 『후조(候鳥)』(1958)등이 있다. 이러한 소설에서 그는 도시의 혼탁한 세태를 추한 것으로 보고 그것을 헹구어낼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때묻지 않은 인간의 아름다운 정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또한 자연 혹은 고향에 대한 회귀의식을 나타내고 있는 『갯마을』(1953), 『메아리』(1959), 『은냇골 이야기』(1961), 『수련』(1961), 『추풍령』(1967), 『망향수(望鄕愁)』(1972) 등의 작품이 있다.

주로 서민들의 소박한 삶을 그린 단편소설을 발표한 그는 1954년 조연현과 현대문학을 창간하기도 하였고,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위원장을 역임했으며, 1979년 간염으로 작고하였다. 한국문학가협회상, 아세아자유문화상, 대한민국 예술원상과 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1993년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울산매일신문사에서 오영수 문학상을 제정하였다.
저 : 김동리 (金東里, 김시종)
김동리는 한국 근대 작가들 중에서 매우 오랫동안 창작 활동을 유지한 작가다. 1936년 《조선중앙일보》에 「화랑의 후예」로 등단해 1979년 「만자 동경」까지 43년에 걸쳐 창작 활동을 계속했다. 김동리 문학은 식민지 시대부터 전쟁을 거쳐 개발 경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한다. 오늘날 김동리의 소설이 한국 문학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넓고 깊다. 그런 만큼 작품들은 언제나 관심과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 김동리는 한국 근대 작가들 중에서 매우 오랫동안 창작 활동을 유지한 작가다. 1936년 《조선중앙일보》에 「화랑의 후예」로 등단해 1979년 「만자 동경」까지 43년에 걸쳐 창작 활동을 계속했다. 김동리 문학은 식민지 시대부터 전쟁을 거쳐 개발 경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한다. 오늘날 김동리의 소설이 한국 문학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넓고 깊다. 그런 만큼 작품들은 언제나 관심과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한국소설사에서 그의 문학이 차지하는 성격을 해명하고자 하는 많은 시도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사상적 측면, 기법적 측면, 미학적 측면, 신화 원형적 측면, 심리적 측면 등 다양한 시각에서 김동리 작품은 분석되고 평가된다.

본명은 김시종으로 1913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경주제일교회 부설학교를 거쳐 대구 계성중학에서 2년간 수학한 뒤, 1929년 서울 경신중학(儆新中學) 4년을 중퇴하고 문학수련에 전념하였다. 이 때부터 박목월(朴木月)·김달진(金達鎭)·서정주(徐廷柱) 등과 교류하기 시작하였다.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백로」가 입선하면서 등단하였고, 이후 몇 편의 시를 발표하다가 소설로 전향하면서 19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화랑의 후예』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화』당선되면서 소설가로서의 위치를 다졌다. 1937년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47년 청년문학가협회장, 1951년 동협회부회장, 1954년 예술원 회원, 1955년 서라벌예술대학 교수, 1969년 문협(文協) 이사장, 1972년 중앙대학 예술대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3년 중앙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1년 4월 예술원 회장에 선임되었다.

순수문학과 신인간주의(新人間主義)의 문학사상으로 일관해 온 그는 8·15광복 직후 민족주의문학 진영에 가담하여 김동석(金東錫)·김병규와의 순수문학논쟁을 벌이는 등 좌익문단에 맞서 우익측의 민족문학론을 옹호하기도 하였다. 이때 발표한 평론으로, 『순수문학의 진의』(1946), 『순수문학과 제3세계관』(1947),『민족문학론』(1948) 등을 들 수 있다.

작품활동 초기에는, 한국 고유의 토속성과 외래사상과의 대립 등을 신비적이고 허무하면서도 몽환적인 세계를 통하여 인간성의 문제를 그렸고, 그 이후에는 그의 문학적 논리를 작품에 반영하여 작품세계의 깊이를 더하였다. 6·25전쟁 이후에는 인간과 이념과의 갈등을 조명하는 데 주안을 두기도 하였다.

또한 김동리는 자신의 문학적 출발이 죽음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평생 죽음을 어떻게 초극할 것인지에 대한 인간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 집착했다. 그러나 김동리의 작품에 나타난 죽음의 의미는 단순히 죽음 자체의 추구로 끝나지 않고 여러 가지 원형적 이미지들을 통해 오히려 강렬한 생명 의식을 드러낸다.

저서로는 소설집으로 『무녀도(巫女圖)』(1947), 『역마(驛馬)』(1948), 『황토기(黃土記)』(1949), 『귀환장정(歸還壯丁)』(1951), 『실존무(實存舞)』(1955), 『사반의 십자가』(1958), 『등신불(等身佛)』(1963), 평론집으로 『문학과 인간』(1948), 시집으로 『바위』(1936), 수필집으로 『자연과 인생』 등이 있다. 예술원상 및 3·1문화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1995년 8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배우자 또한 소설가인 손소희였으며 아들 김평우씨가 있다.
저 : 나도향 (羅稻香, 본명:나경손, 필명:빈(彬))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은 물론 주관적인 애상과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여 주는 작품까지, 폭넓은 작가세계를 보여주는 완숙한 경지의 작가이다. 1902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본명 경손(慶孫), 호 도향(稻香), 필명 빈(彬)을 사용했다. 배재고보(培材高普)를 졸업하고 경성의전(京城醫專)에 다니다가 도일한 후 학비가 없어 귀국하였다. 1921년 단편 「추억」을 「시민공론」에 발표하여 ...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은 물론 주관적인 애상과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여 주는 작품까지, 폭넓은 작가세계를 보여주는 완숙한 경지의 작가이다.

1902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본명 경손(慶孫), 호 도향(稻香), 필명 빈(彬)을 사용했다. 배재고보(培材高普)를 졸업하고 경성의전(京城醫專)에 다니다가 도일한 후 학비가 없어 귀국하였다. 1921년 단편 「추억」을 「시민공론」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이상화, 현진건, 박종화 등과 함께 백조파라는 낭만파를 이루었다. 이듬해 동아일보에 장편 『환희』를 연재하여 19세의 소년 작가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홍사용, 박종화 등과 문예 동인지「백조」를 창간하고『젊은이의 시절』등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1923년에 『17원 50전』 『행랑자식』을 『개벽(開闢)』에, 『여이발사(女理髮師)』를 『백조』에 발표하면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보여 주었고, 1925년에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이』를 발표함으로써 비로소 주관적인 애상과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적 경향과 날카로운 필치를 바탕으로 하여 민중들의 슬프고 비참한 삶에 촛점을 맞춘 작품을 주로 선보이다가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그에 대하여 김동인(金東仁)은 다음과 같이 평하기도 하였다. "젊어서 죽은 도향은 가장 촉망되는 소설가였다. 그는 사상도 미성품(未成品), 필치도 미성품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는 열이 있었다. 예각적으로 파악된 인생이 지면 위에 약동하였다. 미숙한 기교 아래는 그래도 인생의 일면을 붙드는 긍지가 있었다. 아직 소년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도향이었으며 그의 작품에서 다분의 센티멘털리즘을 발견하는 것은 아까운 가운데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 센티멘털리즘에 지배되지 않을 만한 침착도 그에게는 있었다."
대표작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로 가장 잘 알려진 작가로 (1902년~1972년) 시인 주요한의 친동생이다. 190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숭실중학교 3학년 시절 도일하여 도쿄 아오야마학원 중학부에 편입했다. 3,1운동 후에 귀국하여 등사판 자하신문을 발간하다가 발각되어 약 십 개월간 옥고를 치르게된다. 그후 중국으로 망명한 그는 상하이 후장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대표작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로 가장 잘 알려진 작가로 (1902년~1972년) 시인 주요한의 친동생이다. 190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숭실중학교 3학년 시절 도일하여 도쿄 아오야마학원 중학부에 편입했다. 3,1운동 후에 귀국하여 등사판 자하신문을 발간하다가 발각되어 약 십 개월간 옥고를 치르게된다. 그후 중국으로 망명한 그는 상하이 후장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시 귀국하여 신동아 주간, 코리아 타임즈 주필, 경희대학교 교수,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위원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그의 작가로서의 경력은 다음과 같다. 1921년 단편 「깨어진 항아리」를 매일신보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아네모네의 마담」「인력거꾼」등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초기에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리얼리즘, 중기에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추구한 예술적 향취를 풍기는 자연주의적 경향, 다시 말기에는 사회고발적인 현실의식을 짙게 풍기는 작품들을 남겼다.

저로는『추운 밤』『인력거꾼』『구름을 잡으려고』『아네모네의 마담』『추물』『잡초』등이 있다. 8·15광복 후에는 다시 강렬한 현실의식을 반영하는 경향을 보이는 작품으로는 『눈은 눈으로』, 『대학교수와 모리배』, 『잡초』, 『망국노군상』, 『죽고싶어 하는 여인』등이 있다. 그 밖에 『김유신 Kim Yu―Shin』(1947)과 『The Frost of the WhiteRock』(1963) 등의 영문소설도 발표한 바 있다. 1972년 11월 14일 7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1920년 평남 안주군 신안주면 운학리에서 태어나 고향의 청강보통학교와 진남포 공립상공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만주, 풍천 등지에서 회사원으로 근무하였다. 해방 이후 월남하여 동국대학교 전문부 국문과를 졸업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거제도로 옮겨가서 거제고등학교 교사로 3년간 근무했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돌아와서 대광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했으며, 1955년에 『현대문학』에 단편 「암표」와 「... 1920년 평남 안주군 신안주면 운학리에서 태어나 고향의 청강보통학교와 진남포 공립상공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만주, 풍천 등지에서 회사원으로 근무하였다. 해방 이후 월남하여 동국대학교 전문부 국문과를 졸업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거제도로 옮겨가서 거제고등학교 교사로 3년간 근무했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돌아와서 대광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했으며, 1955년에 『현대문학』에 단편 「암표」와 「일요일」이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1957년에 「학마을 사람들」을 발표하여 서정성 짙은 작품 세계를 선보였으며, 1959년에는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오발탄」을 발표하여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오발탄」은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암울한 현실 속에서 존재 의의를 잃어버린 채 방황하는 주인공의 자의식을 사실주의적 필치로 그려낸 작품으로 유현목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1960년대 이후에는 한국외국어대학의 교수로 부임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고, 수많은 단편과 15편에 달하는 장편을 연재하는 등 정력적인 창작활동을 펼쳤다. 만년에는 한국문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에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대한민국 예술상을 수상하였다. 이듬해 1982년 2월 28일에 뇌일혈로 졸도하여 경희의료원에 입원한 뒤 3월 13일에 사망하였으며, 이후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용인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경기도 고삼(古三, 현 경기도 안성)에서 안직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들은 월북 작가 안회남(安懷南)이고, 친일정객이었던 안경수가 백부였다. 훗날 안국선은 안경수의 양자로 들어가서, 생부보다 그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안국선이 1895년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서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보통과에 입학한 것도 안경수의 절대적인 도움 덕분이었다고 한다. 안국선은 게이오의숙을 1년 만에 졸업한... 경기도 고삼(古三, 현 경기도 안성)에서 안직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들은 월북 작가 안회남(安懷南)이고, 친일정객이었던 안경수가 백부였다. 훗날 안국선은 안경수의 양자로 들어가서, 생부보다 그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안국선이 1895년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서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보통과에 입학한 것도 안경수의 절대적인 도움 덕분이었다고 한다.

안국선은 게이오의숙을 1년 만에 졸업한 뒤, 1896년 도쿄전문학교(지금의 와세다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1899년 7월에 졸업했다. 그는 사상적으로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개화론에 영향을 받았다. 그에게는 문명화가 최우선의 과제였고 일본은 그 모델로 비쳤다. 아울러 ‘조선 우민(愚民)’에 대한 ‘교화(敎化)’와 대한제국 타도를 개혁과 진보의 지름길이라고 파악했다. 대신에 의병 운동을 ‘어리석은 백성이 멋모르고 날뛰는 것’으로 인식했다.

안국선은 1899년 11월 귀국했지만, 안경수와 박영효 관련 정변 사건에 얽혀 1907년까지 유배를 당한다. 유배에서 풀린 뒤에는 돈명의숙(敦明義塾) 등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정치·경제 등을 강의했고, 여러 저서를 쓰는 등 활발한 사회 계몽 활동을 펼쳤다. 이후 1907년 11월 30일부터는 제실재산정리국 사무관-탁지부 이재국 감독과장, 국고과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911년 3월엔 청도군수에 임명되어 2년 3개월 동안 재임했다. 결과적으로 나라가 망하는 마당에 황실 재산을 일본에 넘긴 일을 한 셈이었고, 그 공으로 청도군수를 하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관직을 떠난 이후에는 박영효와 밀접한 관계를 말년까지 지속하면서 각종 사업에 손을 댔다(대부분 실패했다). 말년을 비교적 평온하게 보내다 1926년 서울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저 : 나혜석 (Na Hye-seok ,晶月 羅蕙錫)
정월 나혜석(晶月 羅蕙錫, 1896∼1948)은 1896년 경기도 수원에서 부 나기정과 모 최시의 사이에서 5남매 중 넷째, 딸로는 둘째로 태어난다. 부 나기정은 시흥군수와 용인군수를 지낸 개화 관료였다. 나혜석의 초명은 아지(兒只)였고, 진명여학교 입학 시 명순(明順)으로 불렸으나,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때는 혜석으로 개명한다. 1913년 3월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둘째 오빠 경석의 권... 정월 나혜석(晶月 羅蕙錫, 1896∼1948)은 1896년 경기도 수원에서 부 나기정과 모 최시의 사이에서 5남매 중 넷째, 딸로는 둘째로 태어난다. 부 나기정은 시흥군수와 용인군수를 지낸 개화 관료였다. 나혜석의 초명은 아지(兒只)였고, 진명여학교 입학 시 명순(明順)으로 불렸으나,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때는 혜석으로 개명한다. 1913년 3월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둘째 오빠 경석의 권유로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시립여자미술학교 서양화부 선과 보통과 1학년에 입학한다.

1914년 12월 도쿄 조선인 유학생 잡지 [학지광] 제3호에 최초의 글 「이상적 부인」을 발표하고, 오빠 경석의 친구인 최승구와 연애 관계를 맺는다. 1915년 아버지의 결혼 강요로 여주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1년간 근무하여 학비를 마련하고, 11월 복학하면서 고등사법과 1학년으로 전입했으나 제대로 다니지 못한다. 12월 아버지가 사망하고, 애인 최승구는 결핵에 걸려 귀국하여 요양을 한다. 1916년 최승구가 사망한 뒤 오빠 경석의 강력한 권유로 김우영과 교제를 시작한다. 1918년 3월 [여자계] 제2호에 나혜석의 대표작이자 문학사적 가치를 지닌 단편소설 「경희」를 발표하고, 'H.S.'라는 필명으로 시 「광(光)」을 발표한다. 사립여자미술학교를 졸업하고, 4월에 귀국하여 모교인 진명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건강이 안 좋아 그만두고, 집에서 그림 공부를 한다. 9월 [여자계] 제3호에 『회생한 손녀에게」를 발표한다.

1919년 3월 박인덕 한신준려 한황애 시덕한 김마리아 등과 3한1운동에 여학생 참가를 의논하고, 개성과 평양으로 가서 자금 모금과 만세 운동 확산을 위해 이정자 한박충애와 만나 의논한다. 이화학당 학생들이 만세를 부른 사건으로 체포되어 5개월간 옥고를 치른 후 풀려난다. 1920년 김우영과 결혼하고 그와 함께 전남 고흥군에 있는 최승구의 묘지에 찾아가 비석을 세우고 돌아온다. 1921년 임신 9개월의 몸으로 경성일보사 내청각에서 유화 개인전람회를 연다. 4월 첫딸을 낳고, 7월 [신가정] 창간호에 「규원」을 발표한다. 9월 만주 안동현 부영사로 부임하는 남편을 따라 만주로 이주하고, 1922년 3월 여자 야학 설립을 주도한다. 6월 조선총독부 주최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 유채수채화 분야에 출품한 「봄」, 「농가」가 입선한다.

1923년 1월 첫딸을 임신하여 낳고 돌이 될 때까지의 심리적·육체적 변화를 솔직히 기록한 「모(母) 된 감상기」를 발표한다. 6월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봉황성의 남문」이 4등, 「봉황산」이 입선한다. 이후 해마다 조선미술전람회에 유화를 출품하여 입선하며, 1926년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천후궁(天后宮)」이 특선, 「지나정(支那町)」이 입선한다. 1926년 4월 [조선문단]에 『원한』을 발표한다.

1927년 만주 안동현 살림을 정리하고 귀국하여 동래 시집에서 지내다가, 6월 남편과 함께 구미 여행길에 오른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거쳐 파리에 도착한다. 스위스한벨기에한네덜란드 등을 여행하고, 법률 공부를 위해 남편이 베를린으로 간 사이 파리에서 야수파 화가인 비시에르의 화실에 다니면서 그림 공부를 한다. 10월 천도교 도령(道令)으로 파리에 온 최린을 만나 예술을 논하고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연애 관계를 맺는다. 1929년 귀국하여 9월 수원에서 '구미 사생화 전람회'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연다. 1930년 김우영이 서울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파리 시절 최린과의 연애에 관한 소문이 나서 남편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결국은 이혼한다.

이후 나혜석은 실의를 딛고 그림 작업에 몰두하여 계속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해서 좋은 평가를 얻는다. 1932년 금강산 해금강에서 제13회 제국미술원전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다가 불의의 화재로 10여 점밖에 건지지 못해 충격을 크게 받는다. 1933년 생계와 그림 활동을 위해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여자미술학사'를 열고 운영한다. 1934년 김우영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이혼하기까지의 개인적인 생활과 심경을 솔직하게 서술한 『이혼 고백장』([삼천리], 1934. 8∼9)을 발표한다. 이 글에서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정조 관념을 비판함으로써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뒤 사회의 냉대로 점점 소외되었다. 1935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전시회를 열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수덕사·해인사 등을 전전하며 유랑생활에 들어가 정확한 행적을 알 수 없다. 1946년 서울 자혜병원에서 행려병자로 쓸쓸히 인생을 마감했다.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문인, 언론인으로 파격적인 작품과 사회 비판적 주장을 통해 봉건적 제도와 인습이라는 금기에 도전했다.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남기며 가부장제 타파와 여성 의식화에 주춧돌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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