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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0년 10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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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504쪽 | 1,056g | 180*245*35mm |
ISBN13 | 9788982641473 |
ISBN10 | 89826414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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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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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에 읽는 새로운 노자(老子)
- 김용옥, 『노자가 옳았다』
김용옥의 '노자'를 읽으려면
김용옥이 지은 『노자가 옳았다』(통나무, 2020)를 제대로 읽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서양문명과 동양문명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도덕경(道德經)』 제1장을 설명하는 항목에서 지은이는 “중동문명권의 사막에서 그 토대를 키운 서양문명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증오하고 불변, 즉 영원을 사랑한다.”(19쪽)라고 주장합니다. 불변(不變)이란 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과연 있을까요? 불변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불변하는 대상을 시간 밖에서 찾습니다. 잘 알려져 있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생각해 보세요. 완전한 원의 이데아를 우리는 현실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머릿속에서 관념으로만 그릴 수 있을 뿐입니다. 불변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감각 너머의 관념을 중시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노자는 『도덕경』 1장을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로 시작하는데, 지은이는 이 대목을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 말하여진 도는 상도常道가 아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도(道)는 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말하는 불변의 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상도(常道)의 ‘상(常)’을 불변이나 영원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지만, 지은이가 이런 의견에 찬동할 리 없습니다. ‘상(常)’은 ‘항상’이란 뜻으로, 변화의 항상스러운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지은이는 정확히 지적합니다. 시간 바깥에 있는 ‘상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사물의 모습을 노자는 ‘상도’라는 말로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영원불변의 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참된 존재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모든 존재는 변화 속에서 존재한다. 하나님도 존재하기 위해서는 변화 속에서 존재해야 한다. 우리가 불변이라고 부르는 것은 모두 변화의 다양한 양태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보통 “불변”이나 “영원”이라 말하는 것은 모두 시간 속의 지속태일 뿐이다. 시공간 내의 모든 것이 변화에 복속된다는 것은 지극한 상식이다. 파르메니데스도 플라톤도 사도 바울도 시공간 내에서 불변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발견한 불변의 장소가 수학(기하학)이었고, 수학의 자리가 관념이었다. 관념의 자리가 바로 이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능력일진대, 그것은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개념적 약속에 불과한 것이다. 과학의 법칙도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다. (29쪽)
‘도가도 비상도’는 ‘명가명 비상명(名可名 非常名)’으로 이어집니다. 상도(常道)가 상명(常名)으로 이어지는 셈인데, 지은이는 이 대목을 ‘이름을 이름지우면 그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라는 말로 풀이합니다. 상도가 됐든, 상명이 됐든, 이것은 “영원불변한 도”를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도를 도라고 말하는 순간, 그리고 이름을 이름지우는 순간, 서양의 인식론에 익숙한 우리는 상도와 상명을 불변의 존재로 인식하게 됩니다. 물론 도를 ‘도’라고 부를 수는 있습니다. ‘도’라는 언어는 어떤 상황을 표시하는 말일 따름이니까요. 다른 말로도 표시할 수 있는 이 상황을 노자는 ‘도’라는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도’는 그러니까 시간 속에서 그 의미가 달라지는 셈이지요. 시간 속에서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르메니데스는 현실에서 불변을 찾지 못했기에 수학의 관념에서 불변을 찾았습니다. 이데아에서 영원을 찾은 플라톤이나 ‘생각하는 나’에서 ‘존재하는 나’를 이끌어낸 데카르트나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은 변한다는 이 사실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서양문명이 무형(無形)과 유형(有形)을 나누는 사유에 익숙하다면, 노자는 무형=무명(無名)과 유형=유명(有名)을 이름만 달리할 뿐 같은 것으로 봅니다. 지은이의 말을 들어봅니다. “무명은 천지지시(天地之始)요, 유명은 만물지모(萬物之母)다. 모든 사물은 무명과 유명의 복차원複次元에서 동시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서양철학은 현상이 곧 본체라고 하는 겹차원을 이해하지 못했다. 현상 그 자체가 본체의 중층적 구조를 갖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67쪽)
무명이 곧 유명이 되는 겹차원을 서양문명은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 대목을,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무형/무명과 유형/유명의 대비는 ‘무욕(無欲)/유욕(有欲)’, ‘무위(無爲)/유위(有爲)’의 대비로 이어진다. 무형이 곧 유형이듯 무욕이 곧 유욕이고, 무위가 곧 유위입니다. 무욕은 욕망이 없다는 말이 아니고, 무위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닙니다. 그 두 말 속에는 무언가를 욕망하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 상황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점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김용옥의 노자 강의를 이해하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무욕함으로써 바라보는 묘한 세계, 유욕함으로써 바라보는 페리페리의 분별 세계가 결국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의 선포야말로 동방인의 웅혼한 사유의 원점이라 아니 말할 수 없을 것이다.”(71쪽)
천지불인(天地不仁)의 사상
천지불인=성인불인(聖人不仁)을 말 그대로 해석하면, 천지(성인)은 인자하지 않다는 말이 됩니다. 인(仁)이라는 말을 보고 공자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지은이는 노자가 공자보다 앞선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요컨대 여기서 말하는 ‘인(仁)’은 그저 인자스럽다는 평범한 의미로 해석하면 되는 겁니다. 천지, 그리고 천지를 인간세계에 대입한 성인은 왜 인자하지 않다고 노자는 말하는 걸까요? 코로나19를 생각해 보세요. 유명한 정치인이라고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모든 인간을 감염 대상으로 삼습니다. 인간의 감정이니 하는 것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홍수가 나면 수많은 생명들이 물살에 휩쓸립니다. 그것을 보며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지은이는 인(仁)을 자꾸만 무언가를 하려는 인위로 해석합니다. 불인(不仁)은 그럼 무위와 연결되겠지요. 노자 『도덕경』의 체제를 완성한 것으로 명성이 높은 왕필(王弼)은 천지불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천지는 항상 스스로 그러함에 자신을 맡긴다. 천지는 억지로 함이 없고 조작함이 없다. (……) 은혜가 있고 만들어줌이 있으면 사물은 자력에 의하여 온전하게 존속되지 못한다. 자력에 의하여 온전하게 존속되지 못하면 천지는 구비된 조화를 이룰 수 없게 된다.”(142쪽) ‘스스로 그러함(自然)’이라는 말과 ‘함이 없음(無爲)’이라는 말이 눈에 띕니다.
천지는 스스로 그러할 뿐, 작위적인 방법으로 생명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습니다. 생명들이 자라날 터전을 온몸으로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 존속하는 일은 오로지 생명 스스로 해야 합니다. 노자는 성인(聖人) 또한 이와 같이 행동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인은 치자(治者)에 해당됩니다. 천지가 사사로움이 없는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듯, 성인=치자 또한 사사로움이 없는 마음으로 백성을 대해야 합니다. 불인이라고 하면 무자비한 마음을 떠올리기 쉬운데, 불인에는 자비니, 무자비니 하는 의미가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자비나 무자비에는 무언가를 하려는 인위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7장에 나오듯, 천지는 자기를 위해 어떤 일도 벌이지 않습니다.
사사로움 없이 스스로 그러한 천지를 본받은 이가 성인(聖人)이라고 했습니다. 지은이는 ‘성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정치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무조건 성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성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무조건 대의를 위하여 소아적 생명을 버릴 줄 아는 희생물이 된다고 하는 각오를 의미하는 것이다.”(154쪽) ‘대의(大義)’는 ‘천지불인’을 가리킵니다. 이 시대 정치인들이 흔히 말하는 당리당략의 대의(?)가 아닙니다. “성인은 몸을 뒤로 하기에 그 몸이 앞서고, 몸을 밖으로 내던지기에 그 몸이 존한다. 是以聖人後己身而身先, 外己身而身存.”(7장)라는 구절을 차분히 음미해 보세요. 성인은 사사로움이 없기에 목숨을 걸고 능히 그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정치인들이 과연 이러한 성인을 본받고 있을까요
천지불인, 성인불인의 사상은 지금 이 시대의 정치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도록 합니다. ‘광주’에서 시민들을 학살한 전직 군인 대통령은 지금도 학살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권력욕을 앞세운 그는 결국 권력을 얻었지만,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수많은 사람들의 증오를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몸을 뒤로 해야 할 시기에 자기 몸을 앞세운 결과라고 할 것입니다. 천지불인을 실천하는 성인은 자기 몸을 뒤로 미룬 채 온몸으로 공익을 위한 삶을 삽니다. 지금 당장은 그를 알아주는 이들이 적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그는 뭇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을 것입니다. ‘신존(身存)’이라는 말에는 바로 이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바침으로써 후세에 이름을 남긴 성인들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부쟁(不爭)의 사상
『도덕경』 8장의 끝부분에는 “대저 오로지 다투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도다. 夫唯不爭, 故無尤.”라는 말이 나옵니다. ‘부쟁’이라는 말이 눈에 띄지요. 부쟁은 다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는 조그만 일에도 다투려고만 합니다. 손해 보는 일을 절대로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한 경쟁’이 중시되는 사회니까 당연하다고요? 무한 경쟁은 경쟁에서 살아남은 승자만을 인정합니다. 모든 사람이 승자가 될 수는 없을 테고, 패자가 된 사람들은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8장은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뜻입니다. 왜 그러냐고요?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도 가기를 좋아한다.”는 구절이 이내 따릅니다.
뭇 사람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기꺼이 흘러가는 이 물을 노자는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라는 말로 예찬합니다. 뭇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이에게 그 누가 시비를 걸까요?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기꺼이 가는 이는 또 어떻고요? 시비는 언제나 이익을 다툴 때 일어납니다.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무한 경쟁을 합니다. 당연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요.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로 사람들은 이 상황을 호도하지만, 개처럼 돈을 번 사람이 정승처럼 쓸 리는 없겠지요. 성인은 부쟁을 실천합니다. 남이 가지 않으려고 하는 곳을 스스로 찾아가고,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노자가 생각하는 ‘도’에 가까울 수밖에요.
싸우지 않는 것만이 궁극적으로 민중의 우환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노자의 부쟁철학은 물과도 같은 겸양과 평화를 말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홍수의 격랑과도 같이 모든 차별을 쓸어 내버리는 막강한 쟁爭의 힘을 가지고 있다. 유약이 강강을 이긴다 하는 것이 단순한 유약의 예찬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양면성 때문에 노자가 병가兵家의 조종으로 만들어지는 소이연이 있는 것이다. (165쪽)
지은이는 홍수를 이야기합니다. 거센 물결이 지상의 모든 것들을 휩쓸어버립니다. 부쟁의 상징인 물치고는 참으로 폭력적인 상황이네요. 지은이는 사물의 양면성으로 이것을 설명합니다. 부쟁의 힘은 막강한 쟁(爭)의 힘에서 뻗어 나온다고 지은이는 강조합니다. 노자는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이때 약한 것은 그 속에 이미 강한 것을 품고 있습니다. 노자는 단순히 ‘유약’을 예찬한 것이 아니라, ‘강강’으로 뜻을 펼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논의한 대로 한다면, 유약은 무위나 무욕과 통하겠지요. 요컨대 유약은 사사로움이 없는 성인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스스로 그러한(自然) 삶이라고 말해도 좋겠지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상책이라는 병가의 말이 달리 나온 게 아니겠지요.
부쟁의 사상은 여성성과 통하기도 합니다. 6장에는 ‘곡신불사 시위현빈 谷神不死, 是謂玄牝’이란 말이 나옵니다. ‘계곡의 하느님은 죽지 않는다. 이를 일컬어 가믈한 암컷이라 한다.’라고 지은이는 풀이하고 있습니다. ‘계곡의 하느님’은 움푹 들어간 곳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그러니까 ‘가믈한 암컷의 아랫문은 이를 천지의 뿌리라 한다.’는 구절이 곧바로 따르지요. 천지의 뿌리가 죽으면 천지가 죽어버립니다. 스스로 그러한 삶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지요. ‘곡신불사’에 나타나듯, 천지의 뿌리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곡신은 무언가를 채우려고 하기보다 자기를 자꾸 비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지은이는 10장에 나오는 ‘천문개합, 능무(위)자호! 天門開闔 能無(爲)雌乎!(하늘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데 능히 암컷의 덕성을 지킬 수 있겠는가?)’라는 문구에 주목합니다. “천문(=여자의 성기)은 개합의 주기를 갖는 것이다. 이것은 우주적 생명력의 상징이다. 이러한 생명력의 과정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남성적인 자만성, 파괴력, 지배력이다.”(171쪽)라는 풀이 내용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남성성이 파괴하고 지배하는 힘을 나타낸다면, 여성성은 이와 반대되는 힘을 생산합니다.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는 논리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성의 폭력성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그것을 포월(抱越, 끌어안고 넘어서는 힘)하는 힘을 지닌 여성성 밖에는 없습니다.
코로나19를 대하는 ‘노자’의 자세
『도덕경』 37장은 ‘도상무위, 이무불위. 道常無爲, 而無不爲.’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도는 늘상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아니함이 없다.’는 이 구절 뒤로 ‘제후와 왕이 만약 이를 잘 지킨다면 만물이 장차 스스로 교화될 것입니다.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라는 말이 따릅니다.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아니함이 없는 천지=성인을 만물=백성이 본받습니다. 천지가 스스로 그러한 삶을 살면 만물 또한 스스로 그러한 삶을 삽니다. 성인이 스스로 아랫자리로 내려가면 백성들 역시 스스로 아랫자리로 내려갑니다. 천지=성인이 부쟁을 실천하면 만물=백성도 부쟁을 실천합니다. 돌려 말하면, 쟁(爭)을 중시하는 사회에는 항상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기 힘든 문제가 발생합니다. 최근에 발생한 코로나19가 바로 그렇습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인류의 삶이 뒤바뀌었습니다. 과학기술의 힘을 통해 지구를 통제하려 한 인간의 오만한 꿈은 코로나19와 맞닥뜨리면서 쉬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인간의 문명은 자연을 파괴한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다른 생명이 죽은 자리에서 인간의 풍요로운 삶이 펼쳐졌다고나 할까요? 인간의 삶이 풍요로워질수록 다른 생명은 그만큼 더 힘든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천지와 성인은 사사로움을 취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자연을 무지막지하게 파괴했습니다. 남는 것을 덜어 부족한 것에 보태기는커녕 부족한 것을 빼내어 남는 것에 보태는 한심한 짓을 했습니다(77장 참조). 코로나19는 그러니까 이러한 이기적인 인간을 향한 자연의 징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에 한 짓은 부메랑이 되어 인간에게 돌아옵니다.
40장에는 ‘반대로 되돌아 가는 것이 도의 늘 그러한 움직임이다. 反者, 道之動.’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물은 극에 달하면 변하기 마련입니다. 생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인간은 이런 이치를 망각한 채 자연을 제 소유물인 듯 대했습니다. 무욕과 무위로 움직이는 천지와 성인의 길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짓을 일삼은 셈입니다. 이제 인간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1차, 2차 유행을 지나 3차 유행의 시점이 도래했습니다. 지난 시절의 타성에 젖은 사람들은 아직도 소비문화의 행태를 버리지 못한 채 제 욕망을 채우는 데 급급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소비하는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코로나19는 종식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지금 지난 200년 동안 살아온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산업혁명 이래, 과학과 산업체제가 상보적으로 결합한 이래, 서구권 이외의 모든 자연세계가 자본주의라는 미네르바의 멋잇감이 된 이래, 대량사회의 대중교육과 과학이 결합하고, 그것이 또다시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모든 20세기 개화의 정언명령적인 명분이 된 이래, 우리는 “소비의 경제”를, “낭비의 미덕”을 배워오고 예찬해왔다. 아니 예찬의 대상도 아니었고 오장육부 속으로 그냥 들어와 버린, 체화된 가치의 일부가 되었다. 서구의 계량화된 과학에 대한 우리의 맹신도 같이 체화되어 왔다. (397~398쪽)
위 인용문은 59장에 나오는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데 아끼는 것처럼 좋은 것은 없다. 治人事天, 莫若嗇.’에 대해 지은이가 주석을 단 글입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소비사회라고 불릴 정도로 소비를 중시합니다. 소비가 곧 미덕이 되는 사회가 되면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욕망을 방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소비를 하려면 돈을 벌어야 합니다. 돈에 묶인 현대인의 삶은 무엇보다 소비사회를 가름하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품이 풍족하게 생산되므로 사람들은 물건을 아끼지 않습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물품이 얼마나 많은가요. 일회용 물품은 땅 속으로 들어가도 잘 썩지 않습니다. 소비사회가 심화될수록 모든 생명들이 사는 터전인 땅=자연은 파괴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왜 소비를 미덕으로 선전하는 것일까요? 끊임없이 생산을 해야 자본이 증식되기 때문입니다. 대량 소비는 대량 생산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습니다. 대량생산을 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자본 증식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과잉 소비를 하는 사회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색(嗇), 아낌’의 사상은 80장에 이르면 ‘小國寡民’의 사상으로 뻗어 나갑니다. 지은이는 이 말을 ‘될 수 있는 대로 나라의 크기를 작게 하고 나라의 인구를 적게 하라!’는 의미로 풀고 있습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사회는 큰 나라, 아니 지구 전체를 한 단위로 삼고 있습니다. 부자 나라에서는 물품이 남아나고, 가난한 나라에서는 물품이 모자랍니다. 패권을 쥔 대국(大國)은 강한 군사력으로 작은 나라를 핍박하기 바쁩니다.
노자가 제창한 무위, 무욕, 부쟁, 유약(여성), 아낌, 소국과민의 사상은 사사로운 이익을 탐한 끝에 코로나19라는 극악의 상황에 발 묶인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는 근원적인 틀이 될 수 있습니다. 81장에서 노자는 ‘신험한 말은 아름답지 아니하고, 아름다운 말은 신험하지 아니하다. 信言不美, 美言不信.’라고 말합니다. 코로나19가 인류가 저지른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을 그 누가 좋아할까요? 하지만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인간은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이 장은 ‘하늘의 도는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해치지 아니하고, 성인의 도는 사람을 위해 잘 하면서도 사람과 다투는 법이 없다. 天之道, 利而不害; 聖人之道, 爲而不爭’라는 구절로 끝난다. 코로나19를 깊이깊이 성찰하는 이들이라면 두고두고 곱씹어 봐야 할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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