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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9년 06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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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94쪽 | 444g | 153*224*20mm |
ISBN13 | 9788936433703 |
ISBN10 | 89364337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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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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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광란의 도가니.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발정 난 나라'에서 벌어진 광란의 도가니다.
진실.
불편한 진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상식이 통하고 정의는 살아있는 사회라고 믿었던 믿음을 흔드는 불편한 진실이다.
먹먹하고 답답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청각 장애우가 되어버린 듯 읽는 내내 가슴 속 답답함을 지울 수가 없다. 두터운 안개가 짙게 드리운 무진이라는 도시처럼 마음에도 어두운 검은 안개가 드리워 사라지지 않았다. 소설이지만 실제 2005년 한 청각장애 학원에서 벌어진 사건을 세상에 알리고자 공지영 작가가 쓴 실화를 모티브로 하다 보니 이런 일이 실제 있었다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이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간 정의를 믿을 수가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과연 우리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었던 걸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존중 받으며, 힘없는 이들의 인권이 인정받는 그런 곳에서 살고 있기는 한 것인가라는 답이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쏟아 낼 뿐이다. 비겁한 방관자처럼, 진실을 모른 채 눈감은 동조자가 된 것처럼 부끄러움과 알 수 없는 분노에 몸을 치 떨게 만든 그날의 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남겼고 공지영 작가는 어떤 말을 하려고 한 걸까...
그날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작가는 강인호라는 한 교사를 등장시킨다.약간은 무능력한 남자. 아내의 힘으로 어렵사리 얻은 교사로 등교하는 첫날부터 무진의 자애학원에서 그는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다. 짙게 드리운 안개가 시야를 흐리듯 학원은 비밀스런 사실을 숨기고 다들 모른체하는 그런 곳이었다. 동료 교사들도 진실을 구태여 알려 하지 말라는 듯 그를 무시했다. 마치 넌 너의 능력이 아닌 아내의 힘으로 온 걸 다 안다는 듯 그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런 그곳에 대학 선배인 서유진이 등장한다. 남편 없이 혼자 어렵게 살아가지만 아이들에게 사는 곳에 대한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여자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접한 사건에 그들은 진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려 다짐한다. 작은 힘이지만 가려진 해서는 안될 난잡한 성폭행을 세상에 알려 잘못된 정의를 바로 잡으려 일어선다. 그러나 힘과 권력은 그들을 비웃듯 사건을 은폐시키고 거짓으로 포장시킨다. 힘없는 이들에게 난 상처는 모두를 위한 희생이라는 듯 아무일 아닌 듯 그렇게 덮어 버리려 한다. 정상인들도 아닌 장애아이들을 무참히 짓밟은 교장 이하 몇몇 선생들의 만행은 사랑이라는 위선으로 자신들의 죄를 포장했고 그들 주변에서 함께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에 급급한 기득권층은 진실을 알면서도 덮어버리자 회유한다.
분노가 끓는다. 발정 난 나라에서 그런 동물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같은 동성이란 것이 부끄럽고 그런 진실을 모르고 지금껏 지냈던 자신에게 화가 난다. 이제 초등학교에 다니는 소설 속의 장애우와 같은 나이에 어린 딸을 키우는 아비로서 이런 세상이 무섭고 두렵다. 힘이 없기에 힘이 있는 그들이 저지른 죄는 내게 일어났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란 사실에 치가 떨린다. 지난 과거의 오점이라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 지나간 부끄러운 한때의 사건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공지영 작가는 힘을 앞세운 권력 집단이 저지른 만행을 낱낱이 알렸다. 그리고 그 진실 어떻게 묻혀 갔고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를 들려줬다. 진실은 분명히 있지만 보려 하지 않기에 보이지 않고, 자신의 것을 지키고 세상의 변화를 피하게 하도록 모두들 침묵하는 참상을 글로 전했다. 아무리 소설이지만 미화하여 영웅을 만들지 않았다. 김인호가 보여주는 행동은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에 난 그의 행동을 비난하지 못한다. 그것이 <도가니>가 전하는 진짜 무섭고 두려운 불편한 진실로 다가왔다.
그래도 분명 우리 사회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라고 믿는다. 죄 값을 치르도록 법은 단죄를 내려지지 않았음에도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는 공지영 작가의 노력처럼, 그들의 노력을 모른 척 외면하지 않고 글을 읽고 주위를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는 것 만으로 세상은 분명 살기 좋은 곳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믿는다. 공지영 작가에게 감사한다. <도가니>에서 최대한 자신의 글 솜씨를 자제하고 사실을 표현해 줘 읽는 것에 몰두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어떻게 되가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인 내게 공지영 작가의 선처(?)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웠다. 책장을 열고 쉴 세 없이 책장을 넘기며 진실이 드러나고 정의가 이기기를 바란 내 소망은 비록 이뤄지지 않았고 그렇게 되도록 더 이상 넘길 페이지는 없었지만 희망의 바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실은 보려 하는 이가 있는 한 언젠가는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자신들이 돌보던 장애인 자매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해온 인면수심의 장애인시설 원장과 사무국장이 경찰에 붙잡혔다. (...) 이 장애인 시설에선 20명 가량의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있으며, '우수 장애인시설'로 TV에도 자주 소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작가 공지영으로 하여금, 『도가니』를 쓰게 했던 그 신문기사가 아니다. 오늘로부터 불과 6일 전인 8월 14일, 연합뉴스 기사다. 소설이 소설이 아닌 현실, 심지어 되풀이되고 있는 우리의 현주소.
사실 처음엔 이 리뷰를 쓰지 않으려고 했다.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소설을 읽으면서 아팠다. 하고 싶은 말들이 꾸역꾸역 올라왔지만 내 짧은 필력이 못 미더웠고, 무엇보다, 난 이 소설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게 『도가니』을 읽은지 한 달이 흘렀을까, 나는 윗 기사를 무방비의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맞닥뜨렸다. ‘눌러두면 안되겠구나. 한 번 더 읽고, 리뷰를 써야겠다’ 이렇게 마음 먹은지 6일, 이제야 글을 마무리 짓는다.
그렇다, 현실이 아무리 ‘개’같다 해도 외면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냥 묵인해 버리는 것이 이런 거지같은 현실을 더욱 공고화 시킨다는 것, 『도가니』를 읽고 난 후 가장 많이 생각한 점이다.
소설은 주인공 강인호의 무진(霧津) 입성과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한 소년이 철길을 위태롭게 걷고 있는 모습이 서로 교차되며 시작한다. 사건의 구체적 배경이 되는 무진(霧津)은 이미 패색을 감지한 병사들처럼 음습해보여 기괴한 느낌마저 준다. 다리를 저는 작은 소년은 기차에 치어 미소인지 가벼운 찡그림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안개 속에서 붉은 피를 흘리며 목숨을 잃는다. 작가 공지영의 큰 장점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흡인력’이 이 소설에서도 십분 발휘된다. 독자의 단순한 ‘호기심’과 근원적 ‘두려움’을 동시에 자극하며 책장은 훅훅, 넘어간다.
사업실패 이후 아내의 연줄을 타고 특수학교의 기간제 교사로 일하게 된 강인호. 그가 무진에 진입하였을 때 느낀 공포에 가까운 불길함은 사건의 전조에 불과했으며, 안개 속의 자리 잡은 자애학원의 거대함은 그가 곧 부딪힐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처럼 견고했다. 강인호가 무진 도착 첫날 만난 아이(유리)의 두려움에 찬 비명소리는 약자 중의 약자로 대표되는 장애인들의 울부짖음처럼 느껴졌다. 누가, 무엇이 그 작은 여자아이를 비현실적으로 공포스럽게 하는 걸까.
작품 안에서 직접적 피의자로서 절대악으로 등장하는 교장 이강석, 행정실장 이강복, 교사 박보현. 그리고 나는 작품 초반부터 등장하는 ‘장경사’와 ‘박경철교사’에게도 특별히 주목한다. 상식을 뛰어넘는 ‘악행’을 직접적으로 저지르지는 않지만, 용인하거나 방조함으로써 ‘진실을 개들에게 던져’준다. 진실이 거짓이 되고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현실에 ‘기여’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루되어 있는 그 카르텔.
장경사는 한마디로 지긋지긋한 안개를 요긴하게 사용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세상이 늘 투명하고 맑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행동에 제약이 없다. 자신의 이속만을 위해 살면 그만이다. 어디가 이기는 쪽인지 직감적으로 간파하고 거기에 영합한다. 소설의 중반 이후, 교장 등을 체포 할 때 그의 영악함은 더욱 돋보인다. 대세의 흐름에 맞게 그들을 체포하나 장경사는 ‘곧 다시 돌아올’ 그들을 위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그는 조만간 다시 이런 처지가 역전되리라는 것을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장경사는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아 평생을 소왕국의 왕자처럼 살아온 이런 교장 형제와 같은 부류들을 ‘내심 경멸’하고, 한편으로는 서유진에 대해 알 수 없는 연민마저 느낀다. 십일년째 자애학원에 근무하고 있던 박경철 교사는 어떠한가. 부임 첫날 “학교가 너무 조용하다”라고 말하는 강인호에게 노골적인 경멸과 함께 연민을 보냈던 박선생은 과거에도 지금도 자애학원이 아니면 특별히 갈 곳이 없다.
이처럼 먹고 사는 것에 있어서 일종의 약점을 가진 박교사와 더 공부하고 싶었으나 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매만 맞던 장경사, 그래서 그들은 ‘보통의 우리들’마저 (어떻게 보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영역에 있다. 이처럼 이강석, 이강복, 박보현을 제외하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이해하려 맘만 먹으면 이해가 되는 ‘입체적’ 캐릭터이며,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다. 그들의 생각의 흐름과 거기서 파생되어 나오는 행동들은 우리가 흔히 봐 온(혹은 해 온) 것이기에 더욱 잔인하고 무섭다. 자본을 쥔 권력자들, 경찰, 검찰, 교육청, 시청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침묵해 왔던 우리 모두가 만든 카르텔, 이것이 바로 이 사건의 피할 수 없는 진실이자 요체인 것이다.
하여, 소년의 죽음과 여자아이의 공포는 ‘이제까지 그래 왔듯이’ 골치 아프지 않게 ‘잘’ 처리되는 듯 싶었다. 강인호가 아이들의 노기를 감지하기 전까진, 그들이 서로 ‘소통’하려 하기 전까진. 그들의 진심이 통해, 강인호가 알기 원했지만, 그만큼 알기 두려웠던 ‘진실’이 드러난다.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고문, 성추행, 성폭력, 지속적인 성폭력.... 이 미친…… 광란의 도가니는 무엇인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21세기 한국에서 ‘자행’되고, 경찰, 검찰, 학원 등으로 대표되는 권력자들의 카르텔 안에서 ‘합법적’으로 ‘보호’받는다. 그리고 연두를 최초로 도와줬던 장애인 생활지도교사는 ‘합법적’으로 ‘해고’된다. 교육청과 시청은 자신들에게 아무 이득이 되지 않는 않는 이 골치 아픈 사안을 서로의 소관으로 미룰 뿐이고, 더군다나 최수희 장학관은 교장 형제가 장로로 있는 교회의 ‘식구’ 다. 이러한 무진이 악몽보다 섬뜩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의 자화상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과 강인호, 서유진 등으로 대표되는 약자들에게 마지막 희망은 미디어였다. (때문에, 미디어법은 더욱 더 철회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처한 무자비한 폭력의 상황을 폭로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 그들의 입장을 담은 프로그램이 외압을 이기고 방영된 이후, 세상은 들썩거렸다. 정의가 실현되어 세상은 그래도 살만 하다는 것을 확신시켜주는 듯 했다. 방송의 파장은 컸고, 증언들이 쏟아져 나와 피의자들의 처벌은 당연한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렇게 끝을 맺었다면, 이 소설은 이토록 독자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극적 소재를 담은 영웅 소설 정도로 멈추었을 것이다.
이강석, 이강복이 장로로 있는 무진 영광제일교회를 중심으로 그들을 옹호하는 논리 역시 퍼져나갔다. 왜냐하면 그 논리는 상식적이었고, 보통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강인호의 비합법 전교조 전력, 서유진과의 관계와 과거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이의 자살에 대한 의혹까지 겹치면서 사건의 본질과는 달리 여론은 더욱 이상한 방향으로 호도된다. 또한 유리 할머니와 글도 모르는 민수 부모님은 평생을 괴롭혀온 가난과 병 때문에 찢어 버리고 싶은 그 천하의 나쁜 놈들에게 합의를 해 주며, 사건을 ‘묵과’하는데 본의 아니게 ‘일조’한다.
누가 봐도 거짓임이 느껴지는 피의자들의 말들, 허점을 드러낸 피의자 편의 증인들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의 진심어린 증언들에도 불구하고 교장 형제는 집행유예로 석방된다. 소설은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현실적’이다. 돈과 빽이 있는 교장 형제는 좋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실형을 벗어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할 수 없는 박보현은 징역 6개월을(물론 그것도 죄질에 비해 터무니없이 짧지만) 선고 받는다.
이렇듯,『도가니』의 미덕의 커다란 뿌리는 현실성에서 기인한다. 외면하고 싶지만, 그것이 현실이기에 직면해야 하고 응시해야 하는 부조리에 대한 투철한 해부. 작품 안의 절대악에 대항하는 주인공들 역시 현실 안의 인물이다.
이혼한 후 애 둘을 혼자 키우며 사는 인권운동센터 상근 간사 서유진. 항상 옳아보이고 강해보이지만, 그녀 역시 갈등하며 눈물을 흘리는 한 영혼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을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운다는 그녀 역시 가끔은 뻔히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그것과 타협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싸우기로 결심한다. 악에 맞서기(Anti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이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
반면, 늘 옳은 것은 자신이 없었던 강인호는 처음부터 영웅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보통의 인물이었다. 전형적인 영웅의 모습이 아닌 주인공은 오히려 독자의 마음에 깊게 닿아 함께 공명한다. 결코 배신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을 결국은 배신한 (형국을 취한) 것이다. 그가 처절한 고민 끝에 다시 아내의 품으로 돌아오는 결정은 위와 같은 맥락에서 읽는 이들의 고개를 끄떡이게 하고, 그래서 더 아프게 가슴을 흔든다.
서유진 역시 무진을 말없이 떠난 강인호를 전혀 탓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작가가, 나에게, 우리들에게, 또 작가 스스로에게, 그러니깐 영웅이 아닌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도가니』는 여기서 멈추지 말자고 말한다.
설사 닥친 현실의 문제로 강인호와 같은 선택을 했을지라도, 당장은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지 못할지라도, 진실을 결코 잊지 말자고 말한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흔들리며 살아가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 기억하고 되새기는 행위, 타인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마음과 행동인 것이다. 여전히 타인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놓고 시야를 흐리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희망은 존재하는 것이다.
지구가 멸망해도 바퀴벌레와 함께 끝까지 살아남을 것만 같은 타락한 기득권층, 그들을 교묘하고 당당하게 ‘서포트’해주고 있는 사회 시스템,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 속수무책으로 최소한의 방어조차 할 수 없는 이들에게 그들이 가하는 폭력의 잔악함, 태어날 때부터 약자였던 수많은 이들. 이 모든 게 불편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다. 소설의 후반부, 교장실에 찾아가 이강석과 윤자애에게 분노했던 삼십여명의 학생들 역시. 그 결과 비록 그 아이들은 폭행죄로 고소되고 여론은 순간 등을 돌려(나는 왜 노조의 파업 쟁의가 떠올랐을까) 싸움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아무리 연약한 아이들일지라도 힘을 합쳐 '연대'하고 전진하니, 부조리한 권력자로 대표되는 교장의 얼굴이 일순 해쓱해지고 두려움에 책상 밑으로 피신한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스스로 그리고 함께, 홀로 서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
작가와 글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들이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해 볼 때, 그것은 곧 ‘권력’이다. 사르트르가 작가는 소통 불가능한 것의 소통을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고 말했듯이, 소설가는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이 세계를 전달해야 하는 책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미친 듯이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그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독자를 불편하게 하면서, 동시에 독자의 마음을 공명시켜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감추어있던, 혹은 간과하고 있던 현실을 직시하거나, 문제의식을 제기하거나, 공감하게 하여, 더 많은 이들이 주목하게 하는 것. 무엇이 진정 옳은 것인가, 자연스레 생각하게 하고 기억하게 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도가니』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공지영 소설의 진보를, 한국 문학의 발전을 감히 말하고 싶다. 그간 공지영 작품에 대해 상대적으로 옹호적이지 않았던 이들이라도 읽어보길 권한다.
공지영 작가가 자신의 인터뷰집 『괜찮다, 다 괜찮다』에서 공선옥의 『명랑한 밤길』을 읽곤 ‘졌다’ 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책을 덮으며 생각 했다.
'『도가니』를 읽은 꽤 많은 작가들이 내가 졌다, 라고 느끼지 않을까.' 하고.
시간은 강산만 변화시키는 게 아니었다. 작가
처음 <도가니>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난 책 제목치고는 너무 우스꽝스럽지 않나 생각을 했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아직도 이런 제목을 붙임으로써 작가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허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못지 않은 문제의식을 우리 사회에 일으킬 수 있는 글이라는 확신만은 분명히 갖게 되었다. 최근에는 많이 나아진 듯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를 가진 이들을 만나는 경험에 우리는 익숙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장애인들이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소설을 읽고 무기력감을 느끼는 건 좋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 주인공의 선택에, 허무하다 할 수도 있는 결말에 나는 기운이 빠졌다. 이 책에는 너무도 많은 악이 등장했다. 강자는 장애라는 약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마침내 한 인간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수년 동안 그러한 부당함이 반복되었음에도 가해자는 오히려 장애인을 위한 성스러운 자선사업을 하고 있는 것마냥 세상에 비추어진다. 무진의 세력가들은 학연, 지연 등 온갖 연줄의 힘을 빌어 제 편 보호하기에 급급하다. 국선 변호사는 만사를 귀찮아하고 같은 죄를 지었음에도 돈이 없는
그렇지만 이내 촉촉히 젖어든 눈가로 인해 나의 시야는 마치 무진에 가득 찬 안개마냥 뿌옇게 돌변했다. 패배가 서러워서는 물론 아니었다. 지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포기치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 걸음 하나하나가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죗값을 충분히 치르지 않은 채 학교를 다시금 장악한 이들을 향해 그들은 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희생을 감내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는 부당함을 알아도 으레 침묵해야만 한다고 배워온 이들이 자신들도 남들과 똑같이 소중한 존재임에 눈을 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투쟁은 이기기 위함보다 우리 자신을 단련시키기 위함이 더 크다고, 내가 아는 누군가는 누차 강조했었다. 때론 그 단련이 자신을 해칠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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