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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 작별하지 않는다 + 소년이 온다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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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 작별하지 않는다 + 소년이 온다 세트

[ 3권 ]
한강 | 창비 | 2022년 03월 28일 리뷰 총점9.5 정보 더 보기/감추기
  •  종이책 리뷰 (72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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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 작별하지 않는다 + 소년이 온다 세트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3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824쪽 | 1,053g | 153*224*60mm

이 상품의 구성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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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저 | 창비 | 2014년 05월 19일

    13,500(10% 할인)

  •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 2023 메디치상 외국문학상 수상작

    한강 저 | 문학동네 | 2021년 09월 09일

    15,120(10% 할인)

  •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양장, 개정판

    한강 저 | 창비 | 2022년 03월 28일

    13,500(10% 할인)

책소개

목차

저자 소개 (1명)

1970년 늦은 11월에 태어났다.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 1970년 늦은 11월에 태어났다.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한편 2007년 출간한 『채식주의자』는 올해 영미판 출간에 대한 호평 기사가 뉴욕타임스 등 여러 언론에 소개되고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며 인간의 폭력성과 존엄에 질문을 던지는 한강 작품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만해문학상 수상작 『소년이 온다』의 해외 번역 판권도 20개국에 팔리며 한국문학에 활기를 더해주고 있다. 2023년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2024년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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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채식주의자 (한강)
평점9점 | b******5 | 2024-01-30 | 신고

 

 고통 3부작으로 불리는 책을 읽었다. 꿈을 꾼 이후 채식을 하게 된 '영혜'를 중심으로 이뤄진 세 장편은 그의 남편과 동서와 언니의 시선으로 서술된다. 내가 읽기에 화자 셋의 고통이라기 보단 영혜, 영혜의 주변, 언니의 고통이라고 생각된다. 직접적인 고통과 간접적으로 겪게 되는 고통의 느낌을 표현한 것만 같다. 실제로 없을 법한 것도 아닌지라 이해가 가는 것과 동시에 불쾌하다. 개중 두 번째 소설인 몽고반점은 한 번 읽고서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작가가 무엇을 적고자 했는지 전달은 되지만 그렇기에 다신 보고 싶지 않다. 

 

채식주의자

아직 내 옷에 피가 묻어 있었어. 아무도 날 보지 못한 사이 나무 뒤에 웅크려 숨었어. 내 손에 피가 묻어 있었어. 내 입에 피가 묻어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나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먹었거든. 내 잇몸과 입천장에 물컹한 날고기를 문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헛간 바닥, 피웅덩이에 비친 내눈이 번쩍였어.

20p

그렇게 생생할 수 없어,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감촉이. 내 얼굴이, 눈빛이,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분명 내 얼굴이었어. 아니야, 거꾸로, 수없이봤던 얼굴 같은데, 내 얼굴이 아니었어. 설명할 수 없어.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생생하고 이상한, 끔찍하게 이상한 느낌을.

21p

 

 문장 하나하나, 글자 하나하나 읽고 또 읽었다. 마치 내가 꾼 꿈 같아서, 내가 겪은 실제 일만 같아서. 그 감각과 두려움이 너무나 생경해서 구토를 할 것만 같았다. 영혜는 이러한 꿈을 겪기 시작하면서부터 달라졌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온전히 자신만 느끼고 두렵기 시작한 꿈을 어떤 사람이 멀쩡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삼분의 일 가량은 영혜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렵지 않을까. 극단적이지 않았더라면 영혜가 정상의 범주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피웅덩이에 비친 내 눈이 번쩍였어.

 

 영혜의 변화는 이 문장에서부터 시작되고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날고기를 씹던 것은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짐승이었을까. 내가 그랬나. 나는 그럼 사람인가 짐승인가. '채식주의자' 속에서만 바라본다면 영혜가 변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독자인 나조차도 저순간만큼은 내가 역겨웠다. 그리고 알고 싶었다. 나는 결국 무엇인지.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쉬게 할 수 없어.

72p

 

  영혜는 숨쉴 수 있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영혜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을까? 적어도 영혜 자신만으로 본다면 결코 영혜는 미치지 않은 것이다. 숨쉬고자 하는 마지막 변화였다고 생각한다.

 

 

몽고반점

십여년 동안 자신이 해온 모든 작업이 조용히 그에게 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것은 더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98p

 

 외골수인 형부가 무엇을 찍고 싶었는지, 무수한 꽃과 잎들 속에서 어떠한 장면을 담고 싶었는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것을 벗어난 형부의 욕망은 더욱 더럽고 추악하다. 어쩌면 전부 내던질만큼 모든 것을 얻고 동시에 모든 것을 잃은 형부는 어떤 마음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아내에게 들키지 않았더라면, 예술을 앞세워 채운 성적 욕망은 계속 되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무 불꽃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그런 순간에, 이따금 그녀는 자신에게 묻는다.

언제부터 이 모든 일이 시작되었을까. 아니, 무너지기 시작했을까.

198p

 

 영혜를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잘 표현되었다. 미친 사람이 영혜였기에 더욱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런 영혜로부터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겪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인 지아가 방어기재가 되지 않았더라면 언니도 영혜처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미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 사실을 언니 또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었을지도 모르는 영혜의 모습이.

 

그녀는 이미 깨달았었다. 자신이 오래전부터 죽어있었다는 것을. 그녀의 고단한 삶은 연극이나 유령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의 곁에 나란히 선 죽음의 얼굴은 마치 오래전에 잃었다가 돌아온 혈육처럼 낯익었다.

242p

 

  주변으로부터 온갖 멸시와 환멸, 더러운 것을 보는 듯한 시선과 극단의 조치를 받으면서도 영혜는 자신의 원하던 것의 답을 찾았다. 해방의 길을 얻었다. 그와 반대로 언니는 혼돈 속으로 집어던져졌다고 생각한다.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읽고 나면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누가 가장 '고통'인가. 그건 아무런 해답을 얻지도 표면적인 방어기재로 인해 찾지도 못하는 영혜의 언니이지 않을까.

 

 고통에 찬 확신이 마치 오래 준비된 것처럼,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녀의 앞에 놓여있었다.

241p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242p

 

  영혜의 언니가 '정상'이라는 범주 속에서 답을 찾았으면 좋겠다. 고통이라는 숲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길 바란다. 

40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40 댓글 16 접어보기
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당신의 고통은 내게도 고통스럽다.
평점10점 | k********n | 2022-10-01 | 신고

그를 잘 알지 못하지만, 작가 한강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해 주는 최선의 말은 아마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는 불판 위에서 구워지는 고기를 보는 일도 힘겨울 때가 있어요.” 소설 『소년이 온다』를 발표한 후 어느 인터뷰에서 그녀가 한 말이다. 저 말이 단지 그녀가 채식주의자라는 사실만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극도로 민감한 감수성과 폭력에 대한 극한의 예민함이 작동하고 있어서, 나는 사람이 과연 저렇게까지 예민하고 섬세해질 수도 있구나를 생각하며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자면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고기가 구워지는 모습에서조차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런 소설을 쓸 수 있었겠나. 『작별하지 않는다』도 마찬가지다. 제주도에서 벌어진 그 비극을 직접 겪은 게 아니라 해도, 그는 마치 제 일처럼 힘겨워하고 있다.

우리의 주인공 ‘경하’는 친구 ‘인선’의 새를 구하러 제주도로 떠난다. 인선의 제주도 집에 홀로 남겨진 새 ‘아마’는 누군가 물을 주지 않으면 곧 죽을 것이다. 경하는 극심한 눈 폭풍을 뚫고 아마에게 가는 와중에 여러 번 죽을 위기에 처한다. 정말 그 새가 목숨을 걸면서까지 지켜야 할 존재인지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이해할 수 없다. 아마는 나의 새가 아니다. 이런 고통을 느낄 만큼 사랑한 적도 없다.”(152면) 그러나 우리는 경하에게 왜 아마를 구하러 가느냐고 묻지 않아도 이미 안다. 경하를 대신해 한강이 직접 대답한 바 있기 때문이다. “저는 불판 위에서 구워지는 고기를 보는 일도 힘겨울 때가 있어요.” 그렇다면 며칠째 물을 마시지 못해 조금씩 죽어가는 새를 상상하는 일이란, 그에게 또한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세상의 고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을 것이다. 나의 고통과 너의 고통. 이러한 이분법은 손쉽고 명확하다. 어떤 고통 앞에서 그것이 내 것이냐 타인의 것이냐를 따질 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냉철한 판사가 된다. 만일 내 것이라면 그 고통은 과장되기 쉽겠고, 남의 것이라면 축소되거나 많은 경우 무시될 것이다. 요컨대 나의 고통은 타인의 고통을 간단히 압도한다. “바람이 몰아쳐 들어온다. 두통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내 마음은 차츰 마비되어, (…) 불안도, 구해야 할 새에 대한 생각도, 인선에 대한 마음까지도 통증이 예리하게 그어놓은 금 바깥으로 빠져나간다.”(122면) 새의 고통과 인선의 고통은 내가 직접 겪고 있는 맹렬한 추위와 두통 앞에 무력하다. 경하가 병원 로비에서 손/발가락이 절단된 사진을 바라보는 장면도 그렇다. 그 끔찍한 광경에서 “눈을 피하고 싶”(32면)었다거나 “정확히 보지 않는 편이 좋”(256면)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가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을 넘어설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것만 해도, 고통은 언제나 충분하다. 타인의 고통까지 받아들일 공간이 우리 안에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한강의 소설은, 바로 이 질문에 대답하거나 혹은 반문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스스로의 고통만큼이나 타인의 고통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아는 인물들이 여기 있다. 눈 폭풍 속으로 새를 구하러 가는 경하만 그런 것이 아니고 학살 증언 자료집과 관련 기록물을 수년간 모았던 인선의 어머니도, 그 기록물 속에 파묻혀 하루를 보내던 인선도, 그리고 학살당한 이들을 생각하며 가끔 멍하게 환상에 빠져 지냈던 그녀의 아버지도, 다들 절망적이고 뭔가에 실패한 삶을 살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그들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만드는 데에는 성공한 이들이다. 마치 그들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의 고통은 내게도 고통스러워요. 그러니까 ‘제주 4 3’과 ‘보도 연맹 학살’ 사건은 그들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이 되어야 한다고, 저 인물들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또한 대륙의 한 부분이라/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간다면/유럽 땅은 또 그만큼 작아질 것이며” 영국 성공회 신부 존 던이 썼다고 알려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한 대목이다. 사람이 죽으면 종을 울리던 관습에서 저 제목이 탄생했다. 이 시에서 존 던은 누가 죽었기에 종을 울리는가 궁금해하지 말라고 전한다.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키나니”라는 대목이 설명하듯, 누군가의 죽음은 곧 내 일부의 죽음이므로, 종은 바로 우리를 위해 울린다는 것. 이 유명한 시와 한강의 소설은 썩 닮아 있다. 나의 고통과 너의 고통이라는 순진한 분류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결국 살리지 못한 새를 보며 “새는 새였고, 나는 인간이었을 뿐일까?”(196면)라고 비정하게 묻는 일은 너와 나의 고통이 철저히 각자의 것에 불과하냐는 물음과 같다. 과연 그런가. 70년 전 그 섬에서,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겪었던 고통은 나의 것이 아닌가. 정말 그렇게 말해도 괜찮은 걸까.

작중 경하와 인선이 하려는 작업(아흔아홉 그루의 나무를 들에 심어 먹을 입히고 그 위에 눈이 쌓이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는 일)이 대답을 대신한다. 그들은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상업적 목적이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아니다. 그들은 고통받으려고 그 작업을 한다. 둘은 나무를 한 그루씩 심어 나갈 때마다, 거기에 먹을 칠해 나갈 때마다, 그리고 그 위에 눈이 한 송이씩 쌓일 때마다 고통받을 것이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억울하게 고문당했고 아무 이유 없이 총살당했는데, 도저히 그것과 무관한 삶을 살 수는 없다는 듯이, 마치 고통받는 것이 그들의 마땅한 의무인 듯이. 작품 2부에는 인물들의 입을 빌려 어떤 산속 바위에 대한 전설이 언급된다. 착한 일을 해서 혼자만 살아남게 된 여자가 있고 나머지 마을 사람들은 해일에 휩쓸려 죽는데, 이때 그녀에게는 산중턱에서 뒤를 돌아보지 않아야만 살 수 있다는 조건이 붙는다. 하지만 여자는 어김없이 뒤를 돌아봤고, 결국 그 자세 그대로 돌이 되어 버렸다는, 그런 전설.

이 전설은 타인의 고통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되어 살아가거나 뒤돌아본 채로 돌이 되거나. 그러고 보면 폭설이 내리는 밤의 숲속에서 눈 속에 둘이 함께 눕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이 소설의 결말은 뒤돌아본 대가로 돌이 되고 만 저 전설 속의 여자와 흡사하지 않은가. 경하와 인선은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작중 경하가 말한다. “돌이 됐다고 했지, 죽었다는 건 아니잖아요?”(241면)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그런 상황이 오면 언제나 뒤를 돌아보겠다는 것이지, 돌이 되어 죽고 싶다는 게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척하고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지 자신의 삶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그 아픔들을 영원히 안고 살아가겠다는 것이지 그 아픔 때문에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게 아닌 것이다.

신형철 평론가가 시인들의 책무란, “가장 먼저 울지는 못하더라도 가장 마지막까지 우는 일” (「천안함, J 선생님께」)이라 쓴 문장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가장 마지막까지 우는 자란 비극을 잊지 않거나 잊지 못하는 자다. 나의 고통 앞에 너의 고통이 잊혀지는 게 아니라, 너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만들어서 절대로 잊을 수 없게 하는 것. 그렇다면 뛰어난 작가란 오래 슬퍼하고 영원히 아파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들이 약해서 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오랫동안 울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무력하게 고통받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차라리 사력을 다해 고통받는다고 말해야 한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이 그렇고, 작가 한강이 그렇다. 그들은 얼마든지 더 울고 더 고통스러워할 준비가 되어 있다. 뒤돌아보다 돌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래야만 그 아픔들과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겠다는 것은 망각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망각하지 않겠다는 것은 끊임없이 고통받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영원히 고통받으며 서 있겠다는 것은 처연한 체념이 아니라 결연한 의지다. 절단된 손가락의 봉합 수술을 받은 인선은 삼 분에 한 번씩 봉합된 자리에 바늘을 찔러 넣어야 한다. “중요한 건 피가 멈추지 않게 하는 거야. (…) 계속 피가 흐르고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40면) 삼 분마다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인선의 처지가 왜 안쓰럽기보다는 감동적일까. 아마도 작가 한강의 모습이기도 할 그의 모습에서,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고통의 의무를 짊어진 자의 결연함을 본다. 무려 칠십 년이나 지난 일인가. 아니, 칠십 년 밖에 지나지 않은 일이다. 계속해서 통증을 느끼지 않으면 신경이 죽어 버린다는 저 말처럼, 우리가 제주도의 비극을 기억하며 계속 고통받지 않는다면 역사의 한 부분이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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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응어리가 채 풀리기도 전에 떠나보내는 것은 비겁하다
평점8점 | k*********2 | 2022-07-06 | 신고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중간중간 역겨운 장면도 있었으나, 기득권의 향취에 무뎌진 목소리를 화자로 둔 것은 날것의 역함을 직접 느끼고 그것이 얼마나 현실과 맞닿아 있는지를 확인하라는 작가의 의도로 여겨 견딜 만했다. 그러나 그의 문체와 글의 짜임은 어딘가 무겁고 우울한 느낌을 내뿜었고, 책을 읽는 동안 삭아버린 분노로 인한 깊이 없는 무력함에 빠져들어 힘들었다. 그럼에도 그의 다른 책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어 든 것은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깨어지기 쉬운 것들이 나의 호기심을 미약하게나마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나는 작가가 쓰는 이야기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약자의 편에 서서 권력자들이 지워간 역사를 다시 써 내려가는 일보다 글을 쓰는 사람이 온 힘을 다해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기나 할까. 그렇게 잊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한 명의 자취가 여러 명의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감화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힌 역사가 다시 조각조각 맞추어진다면, 그것보다 의미 있는 일이 어디 있을까. 약자들은 언제나 목소리가 잊히는 것을 두려워하니, 제목에서부터 외치고 들어가는 망각의 거부는 얼마나 큰 힘이 될까.

 

  부끄럽지만,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아는 것이 단어 한 톨만큼도 없었기에, 처음에는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강 작가가 이끌어내는 서사의 힘이 너무나 강해서 평소 책을 보다가 휴대폰을 들어 사건의 전말이나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는 일이 드문 나조차도 관성을 거스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읽은 간단한 사건의 기록은 제주 4·3 평화 재단인데, 당시 혼란스러웠던 시대상을 잘 압축해놓았으므로 사건의 면모를 간단히 확인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어쨌든, 이렇게 일방적으로 잔인한 학살이 같은 피와 살의 총과 칼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끝없는 죽음을 반복하는 기억이 살아남은 사람들을 옥죄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비참했다.

 

  그래도 분노란 것이 마냥 삶을 갉아먹는 것은 아니다. 분노가 식어 넘쳐흐르던 용암이 검은색 딱지로 덮인 대지가 되면, 그 땅을 딛고 우뚝 서 훨씬 단단해진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 속에는 여전히 붉고 노란빛을 머금은 용암이 주룩주룩 열을 토해내겠지만, 차갑게 식은 땅은 생명이 살아갈 터지가 되리라.

 

  한강 작가는 고통을 견디는 사람들의 고통을 과하리만치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재주가 있다. 그리고 그런 고통은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보통은 경험하지 못하는 부류의 것들이기에, 적나라하게 파헤쳐 진 아픔과 핏물은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놓고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게 한다. 내게는 그러한 첫 고비가 1부의 인선의 봉합 수술 부분이었다. 동시에 감탄하게 되고 마는 첫 부분도 동일했다.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40p)." 이야기의 심부를 꿰뚫는 문장이어서, 주제를 감싸는 핵심을 표현하는 방식이 우아해서, 그리고 앞으로 책을 읽으며 다가올 고통의 힘겨움을 미리 맛볼 수 있어서.

 

  결국,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제주 4·3 사건과 작별할 수 없게 된다. 작별이란 얼마나 편리한 회피인가. 맞서 싸울 용기가 없어서 상대를 위한답시고 돌아서서 잊는다면 정말 편안할까. 살아가는 이유마저 잊어버리고 죽은 자와 다를 바 없게 되진 않을까. 그래서 산송장이 되기 전에, 기억하리라 외침으로써 악몽의 숲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님을 알린다. 작별하지 않는다고 선언함으로써 우리는 감히 공감할 수 없는 고통이 조금이나마 식을 수 있도록 돕는다. 떠나보내는 것을 포기하고 두 눈을 부릅뜨는 순간, 우리가 느끼는 것은 차갑지만 온기를 머금은, 사람을 얼려 죽이는 눈과는 다른 종류의 눈송이 결정들이 이루어낸 함박눈일 것이다. 그 눈은 땅 아래 묻힌 억울한 혼들을 어루만지고, 검게 칠해진, 사람 키를 훌쩍 넘은 나무들을 뒤덮고 이 땅에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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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채식주의자. 한강 장편소설. 개정판. 창비. 죽음
평점10점 | g*****0 | 2022-04-23 | 신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만났기에 개정판인 이 도서를 만났다. 작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에 다소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작품을 읽었던 시간이었다. 가족이라는 집단을 구성하는 우리들은 얼마나 서로를 알고 있을까? 부부, 부모와 자식, 형제들은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는 집단일까? 이 작품의 친정아버지가 결혼한 딸에게 빰을 때리는 장면은 영혜라는 딸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베트남 참전용사인 친정아버지. 그의 자랑하는 모습과 딸들에게 보여준 폭력성과도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뺨을 맞고,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었던 두 자매를 계속 부여잡으면서 작품을 다시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한 소설이다.

 

영혜의 긴 시간들을 차분히 떠올려보게 한다. 성장기와 결혼생활, 그녀의 표정과 말까지도 우리는 떠올려보게 한다. 그녀가 채식주의자가 된 이유, 남편이 아내인 영혜를 타인처럼 거리를 두기 시작한 병원에서의 모습까지도 기억하게 한다. 사건이 일어나서 병원으로 실려간 그날 영혜는 철저하게 혼자였음을 작품은 짚어준다. 부모도, 남편도, 형제들도 영혜의 식습관에 이해보다는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강요하며 억압하는 모습이 폭력적으로 일어나는 날이었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것에, 이유에 대해서도 사회가 보는 시선은 부드럽지 않았다는 것을 자주 만나게 된다.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도 자기중심적인 모습이었다. 사랑하니까, 함께 여생을 보내고자 하는 결혼이 아닌 결혼생활이 얼마나 건조한 것인지 이 작품의 부부을 보면서 느끼게 한 작품이기도 했다. 언니 부부의 모습에서도 놀라움과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남편의 무책임한 행동들은 아내와 자식에게도 서슴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감정을 끝없이 숨기면서 인내하는 아내의 모습도 위태롭기까지 했다. 아들이 꿈을 꾸고 나서 엄마품에서 우는 날 그녀가 아침에 보여준 모습들. 두 자매의 외줄타기 곡예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한 작품이었다. 영혜의 모습이 곧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지한 언니의 삶도 아프게 그려지는 소설이었다. 아이가 아빠가 집에 있냐는 질문에 그녀가 아이에게 대답하는 대화도 결코 가볍지가 않았던 장면이었다.

 

우리집에 아빠 있어? 아이가 아침마다 던졌던 질문.

없어. 아무도 없어. 너랑 엄마만 있는 거야. 언제까지나 그럴 거야. 196

 

자신의 삶을,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과 견뎌왔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짐작해 보게 된다. 두 자매의 인생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생각하게 한다. 썩어서 문드러진 시체 같은 꿈속의 얼굴이 곧 자신이었다는 영혜의 말은 큰 웅덩이가 된다. 육체만 있을 뿐 영혜는 이곳에 있지 않다. 그녀가 꾼 꿈들의 얼굴들과 언니가 꾸는 꿈속의 자신의 얼굴도 상징적으로 전달된다.

 

썩어서 문드러진 시체 같은, 피투성이일 때도 있고, 아주 낯익은 얼굴, 낯선 얼굴... 달랐던 꿈속의 얼굴 171

 

유독 꿈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들과 인물들의 눈이 자주 등장한다. 작품은 사회가 강직하게 보여주는 문화와 규율, 규범, 당위성, 타인의 시선과 시기와 의심, 혐오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촘촘하게 등장시켜준다. 무책임하고 방관하는 가족들의 모습들도 놓치지 않는다. 이해하는 모습은 찾을 수 없고, 정신병원에 넣은 사람이 가족이었다는 점도 놓치지 않는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으로 치료하는 모습이 최선이었는지도 질문하게 된다. 육식을 강요하는 가족의 모습들, 채식을 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시선은 호의적이지는 않는 모습이 작품에 흐른다. 나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배타적인지 사회인지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텅 빈 두 눈 129

사막같은 얼굴 127

정신병원 가지요? 버스 승객들 시선. 의심과 경계, 혐오와 호기심이 얽힌 그들의 시선 181

오랫동안 혼자여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시선 181

눈에서 빛이 꺼진 것 228

그녀의 눈길은 어둡고 끈질기다. 268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시선. 어린아이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이 담긴, 그러나 동시에 모든 것이 비워진 눈... 아무것도 눈동자에 담아본 적 없는 것 같은 시선. 177

주변의 시기와 험구 160

 

꽃, 나무, 숲, 비. 물구나무를 서는 영혜의 세상은 동물의 세계가 아닌 식물의 세상이었다. 뿌리가 되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비를 맞고 땅으로 흡수된 것이 나무에 흡수되는 순환의 세상이었던 영혜가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프게 그려지는 고통이었다. 누구도 영혜를 헤아려주지 않았고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그녀의 아픔은 긴 시간 속에 새겨진 가족이 그려낸 것들이었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자두, 복숭아, 수박까지도 거부한 그녀의 고통과 분노, 아픔은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정신병원에서도.

 

'새로 쓴 작가의 말'을 연거푸 되새기면서 읽었던 작품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만큼이나 이 작품을 기억할 것 같다. 믿고 읽었던 작가의 소설이었다. 수위가 높아서 다소 놀라웠지만 한글이 그려내는 문장의 전달력에 또 한 번 감동하면서 마지막까지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시간들과 작품성에 놀라워하면서 읽은 소설이었다.

 

잔인한 무책임의 죄. (아이꿈. 엄마새. 그날의 새벽.남편의 무책임 ) 266

(남편) 전부를 걸고, 전부를 잃었다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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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군인들의 총칼에 으스러진 소년이 한 줄기 빛이 되어 우리에게 온다
평점9점 | YES마니아 : 골드 g********k | 2021-10-02 | 신고

군인들의 총칼에 으스러진 소년이

한 줄기 빛이 되어 우리에게 온다

한강, 소년이 온다(창비, 2014.)를 읽고

 

 

 

한강은 소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작가로, 일찌감치 한국 현대문학의 기수로 손꼽히던 인물이다. 이렇게 촉망받는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었던지라, 이번 기회에 그녀의 작품이 왜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하게 했는지 알고 싶었다. 이렇게 잘 나가는 소설가가 왜 굳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새롭고도 위태한 도전을 하는지도 궁금했다. 1970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난 그녀에게 805월 광주는 쉬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소설가이자 광주 태생으로서의 한강은, 이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책을 쓰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그녀의 생동감 있는 묘사와 섬세한 표현력에 담아내려 한,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는 목적을 지니고 책을 읽으니 더욱 가슴에 와닿았다. 이 책은 장마다 시점과 주인공을 달리 하여 805월의 광주를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했다. , 평상시 우리가 5.18 민주화 운동을 바라보는 관점과는 완전히 다른 미시적 관점에서 이를 재조명한다. 무엇보다도, 현장감 있는 묘사와 살아있는 듯한 표현은 책을 뚫고 나올 것만 같이 뚜렷하면서도 가슴이 아린 것들로 가득하다. 감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41년전 광주의 봄을, 작가는 충분히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소설적인 요소를 가미해, 독자에게 박진감과 감동, 그리고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명저를 남겼다. 나라를 위해 두렵고도 장엄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하나둘씩 쓰러지던 시민들의 존재만 잊지 않는다면, 이 책은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어줄 귀중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17.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이 문단을 읽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쫘악 끼쳤다. 그 이유는, 첫째로 한번도 열사들의 시신을 태극기로 감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둘째로 이것은 열사들이 목숨바쳐 지켜내려한 나라가 결국 그들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바로 이어져 나오는 은숙 누나의 명쾌한 대답이다.

17.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이 지점에서 나는 다시 한번 탄복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런 명징한 표현에는 작가가 진정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는 듯했다. ‘은숙 누나가 말했듯이, 당시 군인들은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나라의 일부가 아니라, 권력욕에 눈이 먼 장교의 졸개들이었을 뿐이다. 이 장면에서 군인들이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역설함으로써 나라를 위해 투쟁하는 애국열사들의 존엄성과 위대함을 더욱 부각하는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76. 바닥에 떨어진 유인물을 주웠다. 굵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학살자 전두환을 타도하라. 그 순간 억센 손이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유인물을 뺏고 그녀를 의자에서 끌어냈다.

학생들의 강한 민주화 요구에도 사복경찰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잔인하게 진압하고 탄압하였다. 이 장면을 찬찬히 읽어내려 가며, 문득 KBS 대화의 희열 2이라는 토크쇼 8화에서 80서울의 봄에 관한 자신의 경험과 소회를 밝히던 유시민 작가가 생각났다.

근데 11시 반쯤인가 됐는데 라디오에서 비상계엄 확대 조치가 딱 발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왔구나. 이제는 덮치겠구나. 이제는 도망가야 해.’ 그래서 우리가 한 대엿 명 정도 있었는데, 남자들, ‘, 도망가자. 이제 여기도 들어올 거야.’ 그러고 문을 타 여니까 밖에서 쇠사슬을 뜯고 있는 거야. (중략) 근데 나오는데 전화벨이 울리는 거야. (중략) ‘여기도 왔어요, 빨리 도망가세요.’ 그러고 끊고 나오는데 딱 잡혔지. (중략) 그냥 이단 옆차기 바로 날아오고, 권총 딱 대고. ‘너 누구야. 이름 뭐야.’ 그냥 유시민이라 그랬지, 뭐라 그래.”

이 소설과 유시민 작가의 이야기는 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 있었던 일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똑같은 일이 전라남도 광주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벌어졌던 것이 805월이었다.

제가 스무살 때 학생운동 이런 걸 하고, 유인물을 뿌리러 다니고, 데모를 하고, 이렇게 시작했을 때, 저는 될 거라고 생각 안 했어요. (중략) 그때 이길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하고 하면 못 해. 해야 되니까 하는 거지. 근데 왜 해야 된다고 생각하냐면, 너무 못나 보이잖아, 그냥 있으면. (중략) 못 이길 거 같은데, ‘에이 못 이겨.’ 그러고 그냥 가면, 너무 비참한 거야. (중략) 세상을 이렇게 해서 못 바꾼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걸 한다고요. 나를 지키려고요. 내 스스로,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비천하다, 비겁하다 이런 느낌을 안 가지고 살고 싶은 거지. 아니, 내 책임이 아니에요, 유신 체제 이런 거. 나는 그냥 그런 세상에 왔을 뿐인데.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근데, 그냥 가면 그런 감정을 계속 느낄 거 같애, 자기 비하의 감정을.”

군부독재국이었던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에 쓰여진 대로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변모하는 데에 있어서, 그 공을 민주화 운동에 몸소 뛰어드셨던 분들께 돌린다.

 

 

종이도 네 귀를 들어야 바른 이유

 

114.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 양심. / 그래요, 양심. /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 (중략) /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지난 9년간 학교에서 배운 ‘5.18 민주화 운동, ‘박정희 정권이 10.26 사태로 허무하게 막을 내린 이듬해 1980518일 광주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난 민주화 운동으로, 197912.12 군사 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 세력의 주도로, 광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참극이다. 이 말만 들으면 805월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잘 요약해 놓은 듯하지만, 사실 저 문장에는 광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학교에서 흔히 배우는 거시적 관점이 아니라, 이 소설에서 제공하는 미시적 관점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재해석한다면, ‘1980518일을 전후하여 광주 시민들이 독재 타도를 외치며 일제히 봉기한 민주화 운동으로, 이때 시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거대한 민중의 한 지체로서 참여했으며, 이는 양심과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에서 비롯된 시민 불복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앞서 언급한 소설의 본문을 통해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한 개인의 심경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 개인은 어찌 보면 나약하고 불안한 인간일지라도, 그들이 모여 하나가 되었을 때 창조해내는 시너지 효과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정의를 례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사회의 변혁이나 개혁을 통해 바꾸고자 하는 것은 어렵고 힘들다. , 그렇기에 용감하고 대담하다. 그렇기에 위대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답을 찾지 못한 질문도 더러 있다. 가령, 한강이 왜 이 책을 집필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감히 추측컨대, 작가는 독자가 이 책을 읽고 본인의 삶에 대한 태도나 생활 속 행동에 변화가 있기를 바라고 이 책을 집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 자신이, 한강이라는 사람이 805월 고향에서 어떤 비극이 일어났는지, 또 그 비극의 주인공들은 얼마나 미약하면서도 강인했는지를 알리고 싶었기에 이 책을 저술했다고 생각한다.

자칫 잘못하면 무거운 시대극으로만 치부되어 고리타분하고 읽기 힘든 책이 될 수도 있었으나, 작가의 탁월한 표현력과 묘사력은 이 책을 논픽션 보고서가 아니라 소설 그 자체로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었다. 일례로, 2검은 숨에서 는 자신이 죽어가는 과정을 혼이 되어 묘사한다.

57.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이 장면에서 한강의 거침없는 표현력을 엿볼 수 있었고, 또 그녀의 상상력에 감동받았다. 죽은 육의 살아있는 령이 자신의 주검을 빠져나와 그것을 보면서 본인의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보통 소설의 전개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 앞서 2문단과 3문단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은 독자에게 근현대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을 대하는 새로운 관점을 소개하였고, 개인이 섣불리 하기 어려운 행동을 민중 속에서는 그들 각자가 어떻게 실현하는지를 생생히 표현하였다. 뿐만 아니라, 각 장마다 시점과 주인공이 다르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고, 그러면서도 인물 간의 관계가 복잡하지 않아서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당시 광주의 모습과 개인의 감정에 대한 묘사가 퍽 사실적이어서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켠이 아플 정도였다.

평소에 당신이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와 관계없이, 이 소설은 당신을 푹 빠지게 만들만한 매력이 흘러넘친다. 시대극으로서도, 소설 자체로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기에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표현이 다소 거칠고 끔찍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소설의 사실성을 더욱 드러내기 때문에 오히려 소설에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어린 새에서 라고 불리는 주인공 동호는 군인의 총에 맞아 중학교 3학년 16살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말 그대로 군인들의 총칼에 으스러진 소년임에 틀림없다. 2검은 숨에서 서술자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정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요절한 청년으로 불쌍히 여겨야만 하는 대상은 아니다. 그들은 광주의 민주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누구보다도 강한 양심과 행동력을 갖추었던, 우리나라 민주화의 주역들이다. 그런 그들이 2021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성큼성큼 걸어온다. ‘한 줄기의 빛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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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삶이라는 폭력, 삶이라는 희망 [소년이 온다 / 한강]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j****y | 2016-08-09 | 신고

한강의 소설을 읽기로 결심했을 때 <소년이 온다>는 되도록 나중에 읽고 싶었다. 주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해 온 작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사회 문제를 다루기로 마음먹기까지 일련의 과정의 있을 것 같았고 그 과정이 무엇인지 알고 나서 <소년이 온다>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채식주의자>로 시작해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을 부지런히 읽었고 이제 드디어 <소년이 온다>를 펼쳐들 시간이 되었다. 


1980년 5월 광주, 열다섯 살 동호는 친구 정대를 찾아 합동분향소가 세워진 도청 상무관에 갔다가 그곳에 먼저 와있던 수피아여고 3학년 김은숙, 미싱사 임선주의 부탁을 받고 시신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얼마 후 도청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계엄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지고, 이들은 시신을 두고 밖으로 나갈지 아니면 안에서 계엄군을 맞을지 고민한다. 계엄군의 총소리가 도청을 중심으로 온 도시에 울려퍼진 그 날이 지난 후, 은숙은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게 되지만 검열에 걸려 경찰에게 피멍이 들도록 뺨을 맞는 폭행을 당한다. 선주와 진수는 체포 당시 총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극렬분자', '빨갱이'로 분류되어 성기 고문, ‘모나미 볼펜’ 고문 등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렀던 살상들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 (p.206) 


젊은이들을 죽인 것은 다름 아닌 동족의 군인들이었다. 작가는 집필에 앞서 5.18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읽으려 했지만 두달 여가 지나자 주저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른 아무 것도 읽지 않고 5.18 관련 자료만 읽다 보니 밤마다 군인들에게 쫓기거나 그들이 들이민 총검에 찔리는 악몽에 시달렸다. 꿈이라도 이렇게 공포스러운데 현실에서 같은 일을 당한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들을 유린한 군인들은 과연 어떤 낯짝을 하고 있을까. 작가는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던 군인들이 한 해 전 부마항쟁을 잔혹한 방식으로 진압했던 이들, 베트남전에서 몇백만 명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이들이 아닐까 암시한다. 그리고 이들의 핏줄이 2009년 1월 용산에서, 2014년 세월호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라고 적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p.212) 작가는 인간의 잔인성을 의심하지 않지만, 잔인성을 강요하는 권위 앞에 굴하지 않고 양심을 지키는 인간도 있다는 믿음 또한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점에 1980년 5월의 광주를 작가가 재조명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p.134)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에 이어 <소년이 온다>를 읽으니 작가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누구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은 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작가는 이토록 잔혹하고 폭력적인 사회를 다름 아닌 인간이 만들었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끼고 그런데도 인간을 사랑해야 하는지 갈등했던 것 같다. 이로 인해 <채식주의자>에선 육식을 거부하다 못해 스스로 식물이 되기를 택한 영혜를 통해, <바람이 분다, 가라>에선 짐승마냥 자기 욕망에만 충실한 사람들 속에서 바로 살 수 없었던 두 친구 정희와 인주를 통해, <희랍어 시간>에선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빛을 일어가는 남자를 통해 잔인한 세상에 순응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그렸다. 


그렇다면 <소년이 온다>에선 어떨까. 이 소설은 작가의 소설 중 가장 이질적인 느낌이 들지만 외려 작가의 문제 의식이 가장 극대화된 듯하다. 사회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시민들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 만큼 폭력적이다. 사람들은 집문을 걸어 잠그고 두 귀를 틀어막고 점점 그 사건을 외면하고 잊어버린다. 그런데도 사회의 폭력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다. 차마 저항하지 못했어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는 저항했던 사람이나 저항하지 않은 사람이나 이 사회에 거대한 악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한 죽어도 죽지 못하고 살아도 살지 못함을 그림으로써 간접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인간이 존엄하다는 믿음은 스스로 증명하지 않는 한 미신(myth)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러니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을 증명하라는 것을. 벼른 끝에 이 책을 읽은 마음이 가볍지 않고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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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이제 5월이면 기억나는 책, 소년이 온다
평점10점 | l*****5 | 2016-05-24 | 신고

한강 작가님의 책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으로 인해 서점과 출판계가 들썩인다.

포털 기사에서 소식을 접한 순간 뭉클했다.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 한 사람으로서 그 기쁨이 오롯이 전해진 것 같다.

한국 문학계가 사실 불미스런 일들로 인해 침체기였는데, 한강 작가님의 수상 소식은 그래서 의미 깊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콩쿠르상과 더불어 3대 문학상의 하나인데 문학상을 수상한 전례가 없는 우리

나라이기에 더욱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하고 생각든다.

다른 문학상과는 다른 맨부커상은 작가와 번역가가 공동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게되어 더 가치있는 상이며, 최대한 원문의 의미를 되살려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우리 문학의 해외 수상이 흔해질 것 같은 기대감이 드는 이유다.

 

그러고보니 한강 작가님 책은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구나.

이런 기쁨 처음 맛보기에 한강 작가님의 책들을 지금에서야 읽게 된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시선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먼저 구매했다.

그리고 카트에 넣어둔 <희랍어 시간>, <바람이 분다, 가라>도 꼭 읽을 예정이다.

냄비 근성의 민족이라 하지만 어떤가? 이런 계기로 책에 관심 없었고, 잘 읽지 않았던 사람들도 책 읽는

기쁨을 알게 되고, 책 잘 안 읽는 나라 사람들이라고 낙인 찍힌 것 조금이나마 희석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한강 작가님 하면 생각나는 책이 <소년이 온다>이다.

이 책을 먼저 읽고나면 한강 작가님이 어떤 문체와 어조로 이야기를 끌어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구매한 3권의 책 중 <소녀이 온다>를 먼저 읽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항쟁이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다.

내 나이 5살...... 기억하는 순간들이 있기에는 너무 어렸다. 신문을 읽기에도,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이해하기엔 또 얼마나 어려운 나이일까? 부산과 광주. 거리감이 느껴진다.

같은 나라에 같은 하늘과 땅인데 이런 거리감은 지금도 계속 진행중이다.

 

이야기는 시, 공간적 배경만큼이나 잿빛, 우울, 먹먹함으로 다가왔다.

겪어보지 못했지만 생생함으로 그 시간 속에 있었던 너, 그, 그녀, 그들의 이야기가 무자비한 폭력으로

얼룩진 그 곳을 상기시켰다. 앳되고 순수한 젊은 청년과 무고한 시민들이 이유도 없이 잡혀가고 죽어갔다. 더 이상 그들을 구할 대한민국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권력자라 불리는 자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공고하게 지키기위해 그들의 백성들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단지 민주주의와 자유를 갈망했을 뿐인데........

그 댓가치고는 너무 가혹했다.

 

사진을 보는것보다 더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읽기가 힘들었다.

새삼 1970년대, 민주화의 불꽃이 피어올랐던 그 곳 광주에서 태어난 작가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참 많이도

자료를 모으고 배경이 된 현장을 갔다왔을 터 그 마음이 칼로 베인 듯 얼마나 아리고 아팠을까?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이며 후세에도 길이 전해져야되는 역사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그 때 피지도 못한 채 희생당한 젊은이들의 목숨과 맞바꾼

것이기에 진정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다. 참 고맙고 감사하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 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많이 아프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인간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인간의 역사는 그동안 전쟁와 살륙으로 점철된 피의 역사였기에 그럼 그것으로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

정당성이 부여되는가? 어떤 대답을 받기 위한 질문은 더욱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난 잔인함 이면의 인간의 존엄과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것

같다. 계속 고민해야 될 부분이 아닌가싶다.

 

80년 5월의 광주는 과거의 시간 속에 묻혀져 서서히 잊혀져갔지만..... 그럼, 그 때 이후 남은 사람은?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 참혹함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5월은 어쩌면 가장

잔인한 달일런지 모른다. 육신이 죽어야만 진짜 끝나는 전쟁임을 알기에 지금 이 땅에서 숨 쉬고 있는

자신들을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 세월이 한참 지나 이 좋은 날들이 펼쳐졌건만 죽지 않고 살아남았기에 더욱 몸서리치도록 아프고 힘겨운 나날들. 그들의 상처와 고통은 언제 즈음 아물어질 수 있을까?

 

새삼 지금 맞이하고 있는 5월의 빛이 참 역설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 때의 어둠과 그늘, 폭력과 광기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니깐....... 먹먹함이 가슴팍 깊이 박혔다.

자꾸 생각이 날 것 같다. 한강 작가님의 문체가 이렇다면 다음번에 읽을 <채식주의자>도 부담감으로

다가올 것 같은데..... 얼마남지않은 5월이란 시간이 후딱 지나가야 될 것 같다.

아직 내 시계는 5월 그 <소년이 온다>에 멈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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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파문 10기] 소년이 온다
평점10점 | y******3 | 2016-05-23 | 신고

안흥도서관에서 빌린 『소년이 온다』 

 

완독한 뒤에 도착한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는 안흥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5.18민주화운동이 있었던 5월을 맞아 어떤 매체에서 권장도서로 이 책을 추천했기에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입을 신청했다. 그러나 한강 작가의 맨부커 상 수상과 함께 저자의 작품 대부분이 품절이 되면서 닷새가 지나도록 발송이 되지 않고 있었다. 마침 안흥도서관에 이 책이 있기에 빌린 것이다. 나로서는 책을 만나려고 적극적으로 애쓴 드문 경우이다. 그런 인연으로 만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2인칭 시점 소설의 매력을 느꼈다. 대부분의 작품은 1인칭이나 3인칭으로 창작된다. 나의 기억에 떠오르는 2인칭시점소설은 연용흠의 코뿔소 지나가다였다. 그 작품은 단편집인데 그중에 몇몇 편이 2인칭시점으로 되어 있었다.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생소한 서술에서 개성을 느꼈으나 익숙하지 않으니 불편했다. 그러면서 굳이 2인칭시점으로 쓸 필요가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의 첫 대목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은 읽기에 피곤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기우였다. 2인칭시점 소설의 진수를 맛보았다고 할까? 이 작품을 1인칭이나 3인칭시점으로 서술했다면 느낌이나 감동이 전혀 달랐을 것이다.

 

둘째, 5.18민주화운동의 주인공은 광주 시민임을 느꼈다. 이 책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전체적으로 보면 중3 학생으로 시민군에 참가했다가 12.12 반란으로 권력을 잡았던 신군부에게 무참하게 살해 된 동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또는 서술자에는 동호 외에도 동호의 친구 정대, 정대의 누나 정미, 동호가 시민군에서 만난 여고생 은숙, 여성 노동자로 시민군에 참가했던 선주, 대학생 진수, 진수와 함께 시민군에 참가했다 살아남은 동료 등이 나온다. 가장 가슴이 뭉클했던 대목은 동호 어머니의 독백인 6장이었다. 동호 어머니가 서술하는 부분은 동호에게 전하는 넋두리 형식이었다. 계엄군에 의해 자식을 잃고, 그 충격으로 남편마저 세상을 떠난 뒤에 남은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피를 토하듯 절절하게 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가슴 아프게 읽은 부분이기도 하다.

 

동호는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저자는 동호네와 작은 인연이 있기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하고……. 광주의 희생자가 어찌 희생자와 그 가족뿐이겠는가? 그 당시 광주에 살았던 시민들, 아니 그 시대를 살았던 국민 모두가 함께 겪었던 무서운 전염병인 것을…….

 

셋째, 수양대군의 삶이 떠올랐다. 뜬금없이 수양대군을 생각한 이유는 동호 또래였던 어린 조카 단종과 친아우인 안평대군과 금성대군 및 사육신 등 많은 사람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던 수양대군과 5.18의 주범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수양대군은 행복했을까? 소원대로 권력을 잡았고, 그 후손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도 했으니 뜻을 이루었고 당연히 행복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양대군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 겨우 재위 14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남인 의경세자는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20세에 죽었으며, 차남인 예종 역시 재위 2년 만에 20세에 세상을 떠났다. 수양대군은 자신의 손으로 장남을 묻었으며, 죽자마다 자신을 따라온 차남을 맞아야 했다. 뿐인가? 자신의 며느리인 예종비 장순왕후는 17세에, 손주며느리인 성종비 공혜왕후도 19세에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예종비와 성종비는 수양대군의 일등공신인 한명회의 딸들이기도 하다. 당대 사람들은 수양대군과 추종자를 심판하지 못했어도 역사는 잊지 않고 업보를 내려준 것이다. 수양대군을 잊지 않은 역사의 신이 5.18의 책임자도 잊지 않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권하기가 망설여진다. 이 작품을 통해 과거를 떠올릴 광주시민은 얼마나 아플 것인가? 당시 시민군이 좌익이었다고 믿고 있는 이들은 얼마나 당혹스러울 것인가? 그러나 전두환 씨와 박근혜 씨에게는 일독을 권하고 싶다. 아직도 광주학살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국민 화합을 위한 것인지 책장을 넘기면서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 맨부커 상 수상으로 인해 한강 작가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그의 작품들이 세계적으로 읽힐 것이라고 한다. 수상작인 채식주의자와 함께 이 책도 널리 읽히기를 소망한다. 5.18이 어떤 것인지 한국을 넘어서 세계에 알려지는 것……, 한강 작가가 영광을 차지한 배경에는 주인공들의 그런 염원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소년이 온다'라는 표제는 세계인의 가슴을 향해 소년이 오고 있다는 예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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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소년이 온다
평점10점 | p*****s | 2015-02-02 | 신고

삶을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 있고, 잊어도 되는 기억도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기억에는 추억하고 싶은 것도 있고,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아마도 그 기억이 다시 현실로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아닐까

 

지난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는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이 딱딱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교과서가 아니라 나와 같이 함께 숨 쉬고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는 펄펄 살아서 생생하게 와 닿는다. 이 책은 ‘805월 광주에 있었던 이웃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들이 느꼈던 양심과 고문에 대한 공포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과 깊고 깊은 상처가 내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114p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왔던 것일까? 양심이란 무엇일까? 그 양심이 무엇이기에 수많은 사람을 광장으로 불러 모은 걸까? 자신의 목숨을 버려도 좋을 만큼 소중한 것이었을까? 아니 목숨을 버려도 좋은 것이 아닌 더 이상의 목숨이 버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어섰는지도 모른다.

 

양심은 인간의 행위에 대한 규범입니다. 어떤 행위를 명령하든지 혹은 금하든지, 양심을 거스르는 행위는 결코 허용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심을 따라야만 합니다.’ 라고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양심이 규범이라면 따르고 지켜야만 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도망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도망갈 수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양심은 모여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고, 군인들의 총구 앞에서도 두렵지 않았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135p

 

그 날의 기억을 안고 살아남은 이들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그 기억은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상처가 너무 깊어서 끊임없이 자신의 목숨을 끊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 했다. 매일 악몽에 시달리면서 삶을 겨우 살아갈 수 있을 뿐이었다.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군인들의 총구 앞에 쓰러진 이들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행복한 삶은 전혀 꿈꿀 수 없었다.

 

무슨 대답을 해 줄 수 있을까? 어떤 말을 해 주면 좋을까? 나에게 던져지는 질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그때의 장소와 시간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어떤 말을 해도 무의미할 것 같았다. 그저 입안에서 그래도 살아가야 되지 않느냐?’란 형식적인 말이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20131월의 서울 거리는 며칠 전의 꿈속처럼 황량하고 차가웠다. 예식장의 샹들리에는 화려했다. 사람들은 화사하고 태연하고 낯설어 보였다.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205p

 

지나간 일이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고 잊어버리자고 할 수도 있다.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죽어간 사람들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질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나의 가족이었고 친구였고 동료였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 날의 기억이 다시 현실에서 살아나 그대로 반복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처럼 양심에 따라서 분연히 일어나서 무력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닌듯한 이야기는 단숨에 책을 읽어버릴 만큼 강렬했다. 그 강렬함에 충격을 받았고 살아남은 자들의 고문 장면에서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멀게만 느껴지던 그 날의 이야기가 직접 경험한 듯 내 기억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슬픔에 사로잡혔다. 그 이야기의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면 지나온 한 해를 잘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잘 맞이하기 위하여 어김없이 송년 감사미사에 꼭 참례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생겨서 참석하지 못했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였다. 순간 새로운 한 해가 정말 온 것인가 하는 의심이 자꾸 들었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기념하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날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의미 없는 날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지난 한해를 잘 보내고 새해를 잘 맞이하기 위하여 기념하고 기억하는 의식에 참여한다. 제야의 타종소리를 들으며 그 종소리에 지난 한 해를 실어 보내고,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새로운 다짐과 함께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가보다. 새해 첫날뿐 아니라 생일과 각종 기념일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날을 기념하고 기억해야만 그 날은 계속 나에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지훈 감독의 영화 화려한 휴가의 마지막 대사가 떠오른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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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이 여름, 소년이 내게로 왔다.
평점10점 | g******1 | 2014-07-14 | 신고

썼다가 지운다. 다시 썼다가 다시 지운다. 그렇게 일주일이 열흘이 지났다. 격앙된 목소리로 그날의 기록에서 받은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쏟아내었다.. 지운다. 슬픈 얼굴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글자들을 화면위에 늘어뜨렸다.. 지운다. 눈물로 울음을 울지 못한다. 그동안 흘렀던 눈물과 똑같은 눈물을 흘릴 수는 없다. 그동안 쌓았던 을분과 똑같은 을분을 터뜨릴 수는 없다. 이것은 소소한 감정의 소비로 마무리할 수 있는 종류의 진실이 아니다. 울면 안된다. 가족과 싸웠다고, 몸이 아프다고, 저녁 어스름이 감성을 건드린다고 흘렸던 것과 똑같은 물리적 성분으로 구성된 액체를 흘려 내림으로 해서 잠시 머물렀다가 떠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고통이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실은.

 

1980년 광주, 5.18은 '고립'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은폐'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닸다. 죽은 사람들의 영혼은 아직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해 아른아른 우리들 삶의 틈새로 흘러다니고 죽지 않은 사람들은 방사능 피폭처럼과 유전자들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잔인하게 세포들을 태운다. 죽었거나 살았거나 그 총검 앞에 학살.고문.폭력.살인.능욕과 같은 가장 잔인한 언어들은 무기력하다. 그 어떤 언어도 참담했던 기억 앞에서는 무능하게 스크린과 지면을 채울 뿐 희생자를 가둔 가장 깊은 곳의 진실은 여전히 희생자들의 몫이다. 이 책에서 다시 깨닫는 그 날 광주의 실상은, 25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아픔, 이들의 고립, 저들의 은폐, 저들의 폭력이 희생자들에게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방가능 피폭처럼 몸속의 유전자와 시간이 함께 파멸해가는 것이어서, 영원히 치유되지 않고, 계속되는 고통이고, 순간순간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시간과 함께 켜켜히 산처럼 쌓여 점점 더 무겁게 짓눌리는 것이 곧 삶이 되어 버리는, 우리가 한 때 외면하고, 오해하고, 은폐했던 가장 잔인한 역사의 한 장이다.

 

그 열흘간의 고립이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날의 폭력과, 그 날의 학살과 도륙의 잔인성이 아니다. 그 날의 피와 멍, 찢기고 찔리고 총에 맞아 헤집어진 내장과 머리통과 썩어가는 시체 냄새와 함께 있었던 16세 한 소년의, 16세 나이의 순진하고 맑은 영혼이 삶과 죽음이 공유하는 두렵고 냄새 역겨운 현장 속에서 맞설 수 있었던 고결함의 원천이 어디에서 나왔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소년은 알지 못했다. 단지 소년의 친구, 그 시간 죽어 원혼이 되었을 정대가 먼저 죽었다. 함께 대열에 있던 정대가 총소리와 함께 무너졌을 때 함깨 잡고 있았던 손을 놓쳤고, 공포의 순간이 스쳐간 후 친구의 죽음을 외면했다는 자책감이 소년을 그렇게 했다. 소년은 마르크스의 혁명 전사도 정의의 수호 천사도 아니었다. 왜 태극기로 주검을 덮는지가 궁금했던 한 소년이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지 궁금했던 소년이 은숙 누나에게 들은 대답,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고, 그들은 나라가 아니라는 궁색한 대답을 듣고 혼란스러운만큼 딱 그만큼밖에 역사도, 민족도, 자유도, 민주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소년이었다. 엄마가 찾아와 회유해도 끝까지 도청을 떠나지 않게 했던 소년의, 가슴에 총탄이 박힌 채 다른 소년들과 함께 가지런히 한꺼번에 주검이 되어 도청바닥에 누워있던 사진 한 장 속에 남겨져야 했던 그 소년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맞설 만한 고결함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아마도 지극히 인간적이고 상식적인,  그들이 소년인 나를, 죄없는 나를, 죽이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죽음의 공포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16세 아이였다.  소의 눈망울처럼 순진한 16세 아이의 눈에 비친 도륙과 학살의 현장에서 그토록 순수하고 단순하게 맞서게 했던 것의 실체가 '불의에 맞서는'이라는 말로 설명되어 질 수 있는 단순한 것이었을까.

 

책을 읽고 꽤 시간이 흘렀다. 책을 덮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한 글자도 적지 못했다. 다른 책도 또 다른 책을 읽었어도 아무 것도 적지 못했다. 적는다는 것의 의미, 생각한다는 것의 한계, 공감하고, 간접경험을 하고, 깨닫고, 알게 되고 책 속의 글자를 통해 하는 정신적 행위가 차고 단단한 벽에 부딪치는 느낌이었다. 모르는 사실을 알았던 것도 아니고, 예상 외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던 것도 아니고, 어쩌면 사진으로 다큐로 다른 종류의 문자로 자주 접했던 내용이었지만, 그 때마다 엄숙하고 숭고한 무엇이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조용히 반추하게 했지만, 공포에 맞선 양심적 선택이 역사적 순간을 외면하고자 하는 내적 이기적 자아를 이길 수 있을까. 소용없다.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그럼 지금 무얼 할 수 있느냐는 것은 또다른 선택이다.

 

광주가 고립되어 있는 동안, 내가 살던 도시와 대부분의 다른 도시에서는 폭도들이 총을 탈취해 도시를 불태우고 체계를 전복하려 해서 진압되었다는 소식이 뉴스로 나왔다고 했고, 나는 그것을 알지도 못했거나 혹은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해와 달이 엄청나게 많이 바뀌어 광주와 인연이 닿아 살게 되어 처음 찾은 5.18 묘역에서 17세, 18세의 비석을 보았을 때의 먹먹함은 대학 시절 이후 시청각 자료로 접했던 무참했던 사진과 동영상과 글들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이 곳 사람들에게 그 날의 기억에 대해 조심스레 물어보았을 때, 사람들은 그 깜깜했던 5월의 밤을 기억했다. 여학생의 목소리를 기억해 냈다. 2007년 여름 흥행돌풍을 몰고 왔던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이요원이 맡았던 여학생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까만 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르던 광주 시민에게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되는 목소리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극중 이요원이, 영화 속 결혼식장 모두 웃고 있는 단체 사진 속 유일하게 어둡고 무표정한 모습의 이요원이 그 모든 사람들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는 사실 외에, 그 다음 일에 대해 영화는 말할 기회를 잃었다. <소년이 온다>에는 그 다음 이야기가 있다. 차라리 죽음이 더 편했을 그 다음 이야기, 인간으로서 어느 처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고문과 맞닥뜨렸는지에 대해 여자로서 더는 치욕적일 수 없을 가학행위를 받고, 그 기억과 공포와 함께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의 구체적이고 상세한 디테일이 여기에 있다.

 

가해자들. 그들을 총으로 쏘고, 그들의 시체를 트럭에 퍼 나르고, 개머리판으로 머리통을 빠개고, 잡혀온 사람들을 온갖 이름의 고문으로 세포의 구석구석 상흔을 남긴 그 가해자들은 그럼 누구일까. 가학적이기로 가장 유명한 실험으로 밀그램의 전기고문 실험과 짐바도르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떠올렸다. 인간의 권위에 대응하는 본능을 보여준다는 이 실험은 파시즘과 홀로코스트의 가해자들의 심리를 변호하는 데 쓰였고, 많은 비판을 받았다. 총을 쏜 사람들 중에는 일부러 총구를 하늘로 치켜올려 맞추지 않게 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게 인간의 잔학한 본성을 이해하는 데 무슨 위안이 될까.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 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117

잔혹함. 부당함. 아니아니 그 말은 너무 남용되어왔다. 나는 울지 않기로 했다. 눈물을 흘리지 않기로 했다 나의 값싼 눈물을 내가 사소한 삶의 불평 불만 때문에 눈 밖으로 짜내었던 똑같은 눈물을.  내가 삶의 무게에 짓눌렸다고 징징거릴때 빼내던 똑같은 눈물을.  내가 지는 석양의 고독함에 홀려 충만한 감성이 불러내는 삶의 원초적 슬픔을 느꼈을때 흘렸던 똑같은 성분의 눈물을.  내가 인간 관계에서 상처 받아 이 세상 나만 혼자라고 느꼈을 때 흐느끼던 똑같은 성분의 눈물을. 그 값싼 눈물을 너 16세 소년의 원혼을 향해 흘리지는 않기로 했다. 너는, 혼이 되어 육체가 없이 내게로 온 너는 그렇게 소비될 수 있는 감정으로 닦아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나는 소소한 일을 가지고 너무 그동안 많이 울었다. 쉽게 소비되고 또 다시 채워지고 했던 나의 눈물이 광주 민주화 운동의 학살 앞에 스러져가 혼이 된 너를 향한 마음과 같은 가치가 될 수 없다. 너의 혼은, 너는 죽어서, 왜 죽었어야 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너는 그래서 이 여름, 나에게로 왔다.  작가를 한강을 통해

 

서정적 예술성을 지향하는 작가가  목적의식을 가진 계몽적 글쓰기를 선택해야만 하는 암울한 시대를 만났을 때  예술성을 버리고 진실을 알리는 일에 경우가 있다. 한강은 예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역사가 결코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될 진실을 전한다. 김형수는 문학적, 창작적, 작가적 가치관을 확립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묶은 그의 글에서 '피할 수도 없고 극복할 수도 없는 것을 감당하는 유일한 길은 그것을 삶으로 송두리째 안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서럽고 몽환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시작에서 우리는 16세 소년의 영혼을 맞는다. 대의가 무엇인지나 알았을까. 자신이 무엇을 위해 거기 서 있는지에 대해, 역사의 무엇이었는지, 그가 그 자리에 서고 달리고 앞으로 진전하고 끝내는 친구의 손을 놓치고 총을 맞고 리어커에 십자 모양으로 실리고, 서러운 혼이 되어 더럽혀진 썩어가는 몸들 사이에 붙잡혀 아른아른 거리고 있었던 것의 의미가, 그것이 어떻게 역사를 바꾸어놓았으며, 그 역사의 수혜자들이 자신의 희생을 어떻게 망각해가고 있게 될지 전혀 눈꼽만큼의 아이디어도 없을 그 순박하기 짝이 없는 정대를, 그의 혼을 묘사할 때, 작가는 시인이다. 값싸게 슬퍼하지 않으면서 진정으로 그 소년의 혼, 갑작스레 죽어 다시는 몸이 될 수 없는 혼이 가까스로 썩어가는 자신의 몸으로부터 멀어져, 우리에게로 다가오는 혼을 향해 눈을 감고 바라보고 안고 공유한다. 깊이 공유한다. 

 

경험이다. 짧막한 어린 시절의 기억과, 기록과 역사를 허구라는 형식으로 엮었지만, <화려한 휴가>를 소비하는 형식으로 혹은 다른 역사 소설을 소비하는 형식으로 이 책을 통해 감정을 자극받거나 카타르시스적 슬픔을 배출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소년을, 자꾸 멀어져가는 소년의 원혼을 붙잡아 멀리 보내지 말고, 기억하고, 다짐하고, 계속해서 경험해야 할 것이다.

 

 

*  EBS의 지식채널 e에서 실려보내준 영상 속에 이 책의 주인공 동호의 실제 이야기가 약간 있어서 퍼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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