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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8년 11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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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 /PC(Mac) |
파일/용량 | EPUB(DRM) | 17.52MB 파일/용량 안내 |
ISBN13 | 9788937493614 |
2024년 08월 21일 ~ 2024년 09월 30일
2023년 02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상시
218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해는 오랫만에 유독 많은 눈이 내리는 겨울을 보내고 있다. 제법 눈이 많이 내린다해도 사실 도시에서는 쌓인 눈을 구경하기가 쉽지않다. 모든 일상이 빠르게, 빠르게만 돌아가는 도시라는 곳은 풍성하게 내리는 눈이 땅에 내려앉을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수북히 쌓인 눈이 사람들의 일상과 시간을 멈추게 하는 곳은 이제, 사진이나 그림 또는영상으로만 만날 수 있게 된건가 싶다. 눈조차 잠시라도 이 땅에 쌓일 틈 없이 돌아 가는 도시사람들의 생활이란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싶어서 문득, 서글퍼진다.
그럼에도 이렇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잠시라도 우리를 어디 다른 세상으로 떠나게 하는 설명할 수 없는 마력을 갖고 있다.
첫 세 문장으로 순식간에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이끌었던 그 유명한 소설 "설국"이 올해는 유난히도생각나는 해였다. 너무 빠르고 힘들게 진행되는 나의 삶에서 잠시라도 시간이 멈춘듯, 고요한 다른 세상으로 떠나고 싶었다. 물리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게 힘들지만, 책의 힘이란 게 이런 데 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섰다. P7?
일본 근대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문장으로 꼽힌다는 이 첫 세문장!
폭설로 고립되다 시피한 일본의 한 시골 마을. 그곳에서 삶을 꾸려가는 두 여인과 도쿄에서 물려받은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는 주인공 시마무라. 이 세사람의 얽히고 설킨 인연이 이 책의 줄거리이다
? 시마무라는 도쿄에 살면서 이따금 니카타현에 사는 고마코를 보러 온다. 이번 방문길의 기차 안에서 시마무라는 우연히 요코라는 여인에게 눈길을 주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소설은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만남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얼마큼 진행되었는지를 독자에게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요코와 주인공과의 관계에 특별한 인연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특별한 플롯도, 스토리도 없다. 이 소설의 가치는 플롯이나 스토리, 또는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교훈 이런 것 보다는 소설 전체에 흐르는 허무한 분위기를 표현한 탁월한 문장들, 어리석은 인간의 덧없는 수고와 대비되는 아름운 풍경을 읽는 데에 있는 것 같다.그저 눈이 소리없이 세상에 내려앉듯 이 소설은 조용하고 잔잔하게 설국을 묘사하고, 그곳의 삶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실, 이곳의 삶은 결코 조용하고 잔잔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곳의 여성들은 여름에 입을 지지미를 지어내느라 그 겨울을 온통 베틀 앞에서 보내야 하고, 하루의 일상을 위해 손님을 대접하고 춤과 노래를 제공해야 한다. 그녀들은 한번 받은 친절함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고자 지나칠 정도로 열심이다.
반면, 화려한 도시 도쿄에 사는 시마무라는 무위도식, 하는 일 없이 일상을 지낸다. 가족이 있음에도 가족에 대한 책임도, 고마코에 대한 책임도 없다. 그럼에도 시마무라는 고마코나 요코에 비해 여유있고, 평화롭다.
이렇게 우리 인생은 아이러니 하다. 답이 없다. 열심히 책임감을 갖고 산다 해서 그 끝이 항상 해피엔드도 아니고, 별 노력 없이 시마무라처럼 유유자적, 무위도식하면서 살아도 인생에 큰 탈이 나는 것도 아니다.
우린 그 답을 알 수 없다. 설사 우리의 삶이 끝내 녹아내리는 눈처럼 사라져 버린다 해도, 별다른 능력도, 재산도 없는 평범한 우리는 그저 열심히 살아야 내는 수 밖에 다른 답을 알지 못한다.
??고마코의 애정은 그를 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다운 헛수고인 양 생각하는 그 자신이 지닌 허무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 수록, 고마코의 살아 가려는 생명력이 벌거벗은 맨살로 직접 와닿았다. 그는 고마코가 가여웠고 동시에 자신도 애처로워졌다. 이러한 모습을 무심히 꿰뚫어 보는, 빛을 닮은 눈이 요쿄에게 있을 것 같아, 시마무라는 이 여자에게도 마음이 끌렸다. p110?허무함에도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인생. 그것이 음양의 이치든, 어리석은 인간의 한계이든,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수고로 그래도 오늘의 우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힘들게 나아가야 하는 세상이지만, 때로, 가끔 고요히 쌓인 눈을 바라보기도하고, 우리 주위에 있는 작은 것들을 잊지 말고,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에... ?
??아무리 눈이 많이 내리고, 추운 날씨가 기승을 부렸던 겨울이라 해도 다가오는 봄에게는 그 자리를 내어주고, 쌓였던 눈은 녹아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리고 다시 다가온 겨울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해도, 이미 지나간 겨울과는 다른 계절이고, 우리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이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기를 바랄 뿐...!눈 내리는 계절을 재촉하는 화로에 기대어 있자니, 시마무라는 이번에 돌아가면 이제 결코 이 온천에 다시 올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관 주인이 특별히 꺼내 준 교토산 옛 쇠주전자에서 부드러운 솔바람 소리가 났다. 꽃이며 새가 은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솔바람 소리는 두가지가 겹쳐, 가깝고 먼 것을 구별해 낼 수 있었다. 또한 멀리서 들리는 솔바람 소리 저편에서는 작은 방울 소리가 아련히 울려 처지고 있는 것 같았다. p134
겨울이라고 하면 요즈음처럼 눈이 내리는 풍경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문득 돌아보면 눈오는 풍경이 어렸을 적 이외에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해마다 겨울이면 눈이 내렸을 터인데 어찌된 연유인지 나의 기억 속에서 눈오는 풍경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여유가 없어서 계절의 변화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이러한 나에게 있어서 겨울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바로 생각나는 책이 있었으니 바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다. 그동안 책장에 꽂아 놓은 채, 읽어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제목은 어느새 겨울하면 떠오르는 책이 되었다. 그리고, 2014년 겨울에 비로소 읽게 되었다. 일본 영화 <러브레터>에서 주인공이 눈으로 뒤덮인 곳에서 "오겡끼데스까~~~"라고 외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물론 <설국>과 <러브레터>는 전혀 연관될 만한 것은 없지만, <설국>의 배경이 되는 니가타 현의 겨울 풍경을 직접 본 적이 없기에 같은 일본의 눈으로 뒤덮인 풍경을 볼 수 있었던 <러브레터>의 그 장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면서 읽게 된 것이리라.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 p. 7 -
작품의 첫 문장인 이 문구는 주인공인 시마무라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나를 니가타 현의 겨울 풍경으로 초대를 하는 느낌이다. 마치 문장의 긴 터널이 이 책을 읽는 나로 하여금 책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한의 여정을 상징하듯이 말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시마무라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행적을 떠올린다면 시마무라는 곧 야스나리 자신을 의미하는 인물임을 알게 된다. 사실 <설국>은 야스나리의 중편 소설이지만, 원래 한 작품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여러 편의 글을 모아서 하나의 작품인 <설국>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시간과 장소의 일관성이 다소 뒤엉켜져 있는 느낌을 준다. 시작은 겨울 속의 니가타 현을 방문하는 것이지만, 시마무라의 회상하는 장면들이 등장하면서 다소 복잡한 시간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철저히 모든 것들을 시마무라 자신의 관조적인 시선으로 묘사를 하게 된다. 실제 야스나리는 에치고의 유자와 온천에 머물면서 이 작품을 집필하였다고 하니 어쩌면 시마무라의 시선은 곧 야스나리의 시선임을 느끼게 된다.
실제 야스나리는 타지역에 대한 여행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이즈의 무희>를 보더라도 실제 그가 고등학생 시절에 이즈 지방을 여행하면서 자연으로부터의 느낌을 배경으로 삼아 무희를 소재로 하여 자연과 함께 인간의 관능적인 부분을 묘사하였음을 떠올린다면 <설국>역시 그가 여행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유자와 온천에서 한달 간 체류하면서 생각한 것은 무엇일까? <설국>에서는 북국 니가타 현이라는 장소를 2~3년 정도의 시간적인 변화를 통하여 시마무라와 고마코, 요코의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삼각관계 보다는 이 책이 자연스럽게 겨울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계절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하고 그것을 섬세하게 다룬 야스나리의 표현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은하수는 밤의 대지를 알몸으로 감싸안으려는 양, 바로 지척에 내려와 있었다. 두렵도록 요염하다. 시마무라는 자신의 작은 그림자가 지상에서 거꾸로 은하수에 비춰지는 느낌이었다. 은하수에 가득한 별 하나하나가 또렷이 보일 뿐 아니라, 군데군데 광운의 은가루조차 알알이 눈에 띌 만큼 청명한 하늘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은하수의 깊이가 시선을 빨아들였다." - p. 142~143 -
시마무라의 시선으로 북국의 풍경이 묘사되면서 동시에 고마코와 요코의 관계가 서술된다. 관능적이면서도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삶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고마코에게 매력을 느낀 시마무라이지만, 열차에서 만난 요코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적극적이면서도 쉽사리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고마코와 조용하면서 누군가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요코. 분명 시마무라는 이 둘에게 끌리면서도 어느 한쪽으로 쉽사리 기울지 않는다. 그가 도쿄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주저하는 것일까? 사실 <설국>은 이야기의 흐름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국의 겨울과 함께 자연을 묘사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시마무라의 입장에 중점을 둔 것인지 쉽게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기존의 기승전결에 익숙한 사람이 다가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연 배경과 인간 관계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를 주는 이유는 시마무라는 인물의 설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시마무라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니가타 현을 방문한 여행객으로 설정되어 있다. 여행객은 언제고 다시 떠나야 하는 존재를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마무라는 해마다 고마코를 보기 위하여 방문을 하지만, 결코 그곳에 정착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고마코도 적극적으로 시마무라에 다가가기 어려운 것이고, 요코의 비극 역시 여행객인 시마무라의 처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자연의 풍경에 대해서는 세밀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을 하고 있는 시마무라이지만, 기차안에서 요코와의 첫 만남을 차창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 묘사를 하고 있는 부분이라든지 고마코의 모습 역시 겨울 풍경을 담은 거울을 통하여 바라보고 있는 장면은 남녀 관계에서 소극적인 그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풍경은 유심히 쳐다보지만, 정작 여자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시마무라. 그래서인지 <설국>은 하얀 겨울 풍경이 단번에 떠오르면서 등장인물의 관계는 절제되어 표현된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제목에서 다분히 보여주는 겨울의 느낌과 함께 뚜렷한 방향성은 없지만, 등장인물의 내면의 갈등은 아마도 <설국>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은은하면서도 조용한 한 겨울의 밤에 괜히 읽어보고 싶은 책 <설국>. 우연찮게 눈오는 밤에 이 책을 읽으니 괜히 운치있어 보이면서 어느덧 설국의 분위기에 흠뻑 빠지게 된다. 비록 마지막에 시마무라가 더이상 이곳을 방문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을 언급하지만, 오히려 나는 겨울이 되면 이 책을 다시 읽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을 갖게 된다. 시간이 멈추어버린 북국의 겨울의 모습과 아련한 그들의 절제된 사랑의 표현이 쉽사리 나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왠지 나에게 있어서 겨울은 <설국>이라는 책으로 각인이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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