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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발행일 | 2019년 05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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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656쪽 | 848g | 128*188*50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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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가진 생각의 시야란 어느새 한정되기 쉽다.
살면서 거치는 여러 번의 사회화를 통해 상식과 인습에 갇히고 편하다는 이유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보다는 익숙한 것만 섭취하는 타성에 곧잘 젖게 되는 탓이다. 사람은 언제 권태와 허무에 빠져들게 되는가? 그건 상식이 상상력을 압도할 때다. 세상의 중력에 너무나 압도된 나머지 현실에 납작 엎드려 그 한없이 낮은 눈높이로 보고 헤아리는 세상 외에는 그 어떤 다른 걸로도 담아내거나 꿈꾸지 못할 때인 것이다. 이제는 새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인지도가 높은 프랑스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소중한 것은 그래서다. 그는 전혀 다른 것을 준다. 스스로 고백했듯이, 그는 현실보다 꿈에서 이야기의 광맥을 발견한다. 주류가 한낱 몽상으로 치부하며 무시하거나 내친 것들마저 그 주류 못지 않게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면서 헤아림의 손전등을 기꺼이 들이미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그가 상상력의 건전지로 한껏 충만된 손전등으로 비춘 순간, 박제된 지식과 낡아빠진 상식 속에서 퇴락과 실망만 거듭하던 세계가 온전히 다른 모습으로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다. 그가 나눠 준, 다른 곳에선 얻을 수 없었던 시선과 생각 속에서 이전에 몰랐던 매력과 가능성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 식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우리의 시야를 넓힌다. 생각의 폭을 확장한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건, 기발한 상상력으로 우리의 쾌감을 유발해서만은 아니다. 관습과 타성에 절인 눈으로 보았을 땐 그저 척박하고 퇴색한 빛만 가지고 있었던 나를 둘러싼 일상 속 세계가 그와의 동행으로 어느덧 이루게 된 시선의 도약 속에서 얼마나 풍부하고 다채로운 색채를 가지고 있는지 또한 듬뿍 경험하게 되어 더 많이 열린 눈과 마음으로 나와 세상을 좀 더 긍정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베르베르의 매력은 최근에 나온 ‘죽음’에서도 여전하다.
‘죽음’은 제목 그대로 죽음을, 정확히는 그 이후를 다루고 있다.
죽음 이후를 다룬다고 하니 얼른 94년에 발표한 ‘타나토노트’와 그 후속작으로 2000년에 나온 ‘천사들의 제국’이 생각난다. ‘타나토노트’는 흔히 우리가 저승이라고 부르는, 은하 중심의 블랙홀로 존재하는 영계를 탐험하는 이야기였고 ‘천사들의 제국’은 ‘타나토노트’의 주인공 미카엘 팽송이 다시 등장하여 이번에는 영계에서 수호 천사가 되어가는 이야기였다. 이건 여담인데, 바로 여기서 우리는 베르베르의 소설 여기저기에 인용되어 낯익을, 심지어 ‘죽음’에서도 여전히 등장하는 에드몽 웰즈의 실물을 만날 수 있다. 갓 천사가 된 이들을 지도하는 천사로 일하고 있는 그를 말이다.
‘죽음’은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제국’과 설정을 공유하고 있기에 사실 후속작으로 보아도 크게 무리가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이런 일련의 시리즈에 대해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타나토노트 유니버스'라는 이름을 살짝 붙여보고픈 마음도 생긴다. 분명 베르베르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기에 겁은 좀 나지만서도.
그렇다고 해도 작품들이 다루는 영역은 같지 않다. 서로 다르다.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제국’은 저승의 중심 영역이라 할만한 영계를 다뤘지만 ‘죽음’은 아직 그 영계로 가지 않은 '떠돌이 영혼'들이 주로 부유하고 있는 연옥의 세계를 다루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연옥은 영계처럼 지구 저 편에 있지 않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 오롯이 겹쳐 있다. 다가 올 환생을 기다리거나 그걸 거부하는 떠돌이 영혼들이 바로 우리 주위에서 우릴 지켜보며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위치 상의 연접은 '죽음'이 구현하고자 하는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앞으로 말하겠지만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영매가 중요한 등장인물이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참고 삼아 타나토노트 2권에서 가져온 영계의 지도.>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기 전에 먼저 어떤 이야기인지 줄거리부터 간단하게 언급해 보려 한다.
프랑스의 문단 주류를 차지하는, 그래서 흔히 <공식>문학이라 불리는 이들에게 한없이 천대받는 장르 문학을 주로 쓰는 작가, 가브리엘 웰스는 늘 그랬듯이 꿈에서 건진 첫 문장인 <누가 날 죽였지?>를 어떻게 하면 한 편의 소설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며 일상을 시작한다. 그 때만 해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이었으나 갑자기 자신이 아무런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들른 주치의 대기실에서 우연히 만난 뤼시 필리피니란 이름의 여성이 자신에게 이런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한다.
그가 이미 죽어 유령이 되어 있다고.
웰즈 자신의 이상형인 실존했던 헐리우드 배우 헤디 라마를 빼다 박은 외모 때문에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던 뤼시는 알고보니 죽은 자와 소통할 수 있는 영매로 결국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게 증명된다. 갑자기 사망할 아무런 사건도, 이렇다할 병력도 없었던 그이기에 그의 죽음에는 오직 단 하나의 이유만 남게 되는 셈이어서 자신이 곱씹었던 첫 문장은 그대로 이제 무엇보다 풀어야 할 숙제와 같은 질문이 된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반드시 해답을 얻고 싶다. 그가 소설의 첫머리로 삼아 볼까 했던 문장, 이제 그의 머릿속을 점령한 바로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나는 왜 죽었지?’ (p. 69)
소설은 이 때부터 ‘아버지들의 아버지’처럼 추리 소설 형식을 따라간다.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가 주연했던 영화 ‘고스트’와는 다르게 현실 세계에 아무런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고 그저 관찰자만 되어야 하는 떠돌이 유령인 가브리엘 웰즈는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아무래도 살아 있는 존재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유일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뤼시에게 협력을 구하게 된다.
내가 대단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저 내 삶이라는 소설의 마지막 챕터를 알고 싶다는데, 내 입장에서는 정당한 요구 아닌가요? 누가 날 죽였는지 알고 싶은 거예요! 내가 나와 주변인들에 대한 정보를 주면 재능과 혈기를 가진 당신이 분명히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고 난 확신해요. 범죄 수사가 전공이었으니까 내가 저승에서 당신을 잘 안내해 줄게요.(p. 117 ~ 8)
사실 뤼시는 보여지는 모습과는 다르게 그리 평탄한 인생을 보내지 못했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남자인 사미 다우디가 맡긴 가방에서 마약이 나와 무려 8년을 교도소에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웰즈의 소설, ‘죽은자들’을 우연히 만나고 영안이 열려 지금의 영매가 된 인연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도와주면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그 때 뤼시에게 가방을 맡기고 그대로 사라져버린 사미를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범죄 수사 지식을 동원하여 찾아주겠다는 웰즈의 약속에 뤼시는 그를 대리하여 수사에 나서기로 한다. 그 결과, 웰즈가 24시간 안에 특별하게 제조된 독극물로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지고 이제 웰즈와 뤼시는 웰즈를 살해할만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네 명의 용의자들, 그러니까 늘 그가 이루고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해 강한 질투를 가지고 있었던 쌍둥이 형인 토마, 그를 작가로 데뷔시켜주고 현재도 그의 작품을 전담하여 편집하고 있는 출판인 알렉상드르 드 발랑브뢰르, 차갑게 거절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한 미련을 드러내고 있는 과거의 연인이자 여배우 사브리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의 작품들을 무시하며 맹렬한 비난만 해댔던 평론간 장 무아지를 개인적으로 만나 추려가면서 진범을 색출해 나간다.
그러나 여기엔 이 하나의 이야기만 있지 않다. 이와 병행하여 다른 이야기 하나가 더 겹쳐진다.
그건 바로 이제 떠돌이 영혼이 된 웰즈가 살아 있을 때와는 너무나 다른 그래서 한없이 낯설 수밖에 없는 죽은 자들의 세계에 이런저런 우연곡절 속에서 점차 적응해 나가는 이야기다. 연옥이 자리한 위치에 뒤이어 이야기 형식 또한 이렇게 '겹침'을 지향하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베르베르가 왜 겹침의 설정을 반복하는가에 대해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래서 거기에 대해 거듭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겹침이 그 어느 대상도 배제하지 않는, 서로 대등하게 공존하는 상태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서로 다르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차별하지 않는 온전한 평등의 상태가 바로 '겹침'이란 걸 말이다.
영매인 뤼시의 존재는 이것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건 무엇보다 뤼시가 하는 일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단순히 산 자와 죽은 자를 교통시키는 것만 하지 않는다. 그런 수동적인 전달자 역할에 더하여 산 자와 죽은 자가 갈등을 빚을 경우 되도록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 또한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는 경계에 서서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고루 보살피는 존재다. 그는 그 어떤 존재도 쉽게 내치지 않는다.
어느 날, 자신을 <상부의 일원>이라고 소개하며 한 존재가 접촉해 왔어요. 이름이 드라콘이라고 했어요. 그가 저승에 양립하는 두 조직에 대해 설명해 줬어요. 하나는 환생을 위해 올라가는 영혼들을 관리하는 조직이고, 다른 하나는 지상에 머무르길 원하는 영혼들을 보살피는 조직인데, 이 둘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천상의 관리들>에 의해 운영된다고 했어요. 인간들의 영혼을 관리하고 거르고 안내하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기본적으로 비슷하다고 말이죠. 그가 내게 지상에서 이 상부를 대표하는 일종의 대리인이 되어 보지 않겠냐고 하길래 주저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어요.(p. 104)
이러한 영매가 웰즈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로 등장한다는 것은 소설 '죽음'이 무엇보다 지향하고 있는 게 바로 공존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한다. 개체가 어떤 자리나 어떤 모습, 어떤 성향을 하고 있든지간에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봐주고 헤아려줄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여기엔 강하게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여러 면에서 드러난다.
먼저 수사 과정이 그러하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 소설은 용의자들을 개별적으로 한 사람씩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차례차례 추려나가는 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이 여정 속에서 독자는 용의자 자신의 고백을 통해 그들의 삶을 오롯이 경험한다. 그들이 어떻게 오늘에 이르게 되었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를 마치 그 몸에 빙의하듯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엔 함부로 타인을 판단하지 말라는 베르베르의 마음이 담겨 있다. 타인에 대한 섣부른 판단의 금지는 무엇보다 가브리엘의 이상형이기도 한, 실존했던 여배우인 헤디 라마에서 한껏 나타난다.
헤디 라마
소설에서도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지만 그녀에겐 야누스적인 면모가 있었다. 누구보다 아름답고 화려한 헐리우드의 여배우였지만 그녀에겐 그 모습만 있는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 때만 해도 사람들은 화려한 외모를 가진 여성은 지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고 여겼었는데, 헤디 라마는 뛰어난 외모만큼 지적인 것도 탁월했던 것이다. 그녀는 배우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과학자였다. 실제로 그녀는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어뢰가 독일이 쉽게 무선 통신 주파수를 알아내는 바람에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추지 못하자, 주파수 보안을 철저하게 하여 독일의 방해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기술까지 개발한 바 있다. 그것이 바로 '주파수 도약'이란 기술이다. 일정한 함수 처리로 주파수를 마음껏 변화시킬 수 있는 이 기술은 현재의 와이파이와 GPS 그리고 블루투스를 가능하게 하였다. 한 마디로 그녀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어디에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의사소통이 가능한 현실을 창출한 장본인인 것이다. 헤디 라마가 탄생한 지, 101년이 되는 2015년엔 구글이 '헤디 라마가 없었다면 구글도 없었다'라는 캐치 프레이즈까지 내걸었을 정도로 말이다.
이토록 굉장한 업적을 이뤘지만 그녀는 살아 생전에 단 한 번도 그것을 인정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예쁜 여배우는 지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과학자로서의 그녀를 깡그리 무시해 버렸고 이뤄놓은 업적도 아예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이러한 처사는 소설에서 장르 소설을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작품을 읽지도 않은 채 덮어놓고 비난부터 하는 평론가 장 무아지의 태도와 그대로 이어진다. 프랑스의 문단 주류인 <공식> 문학을 대표하며 그만한 권력도 가지고 있는 그는 늘 같은 소재와 주제로 지루하고 어려운 소설만 써대면서도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걸 오로지 대중이 그만큼 덜 계몽되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웰즈의 소설이 대중에게 인기 있는 것도 웰즈가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타협한 결과라며 폄하한다. 상대에게서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만 보면서 스스로 잘못된 것을 돌아보지 않는 이러한 모습은 그야말로 헤디 라마를 지적인 것이 결여된 예쁜 인형으로만 보고 다른 건 모조리 무시했던 모습 그대로다.
타자를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한 모습만 보고서 그것을 전부라고 판단하는 것.
이건 우리들도 일상에서 사람과 사건을 만나며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자기 중심적인 시각과 판단이야말로 실은 공존을 가장 많이 무너뜨리는 원인이다. 그러므로 베르베르는 온전한 공존을 위해 자기 중심주의를 허물고자 한다. 굳이 '<죽음>은 절대적 타자'라는 철학자 레비나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살아있는 자라면 누구나 타자의 영역이라 생각하게 마련인 죽은 자의 세계를 독자 앞에 끌고 온 것이다. 그 타자의 세계를 독자에게 온전히 경험시키기 위하여.
(내 멋대로 이름붙인) 타나토노트 유니버스를 이루는 세 작품들...
따라서 소설이 원하는 건 독자인 우리가 단순히 떠돌이 영혼의 세계를 주유하는 것만이 아니다. 보다 진정한 목적은 그것을 통해 현재 내 일상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한 그 세계를 흠뻑 체험토록 하여 나와 세계를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시야와 생각으로 보고 담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마도, 소설에서 비행 장면이 많이 나오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영혼이 된 웰즈는 무엇보다 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이전과 순전히 달라진 자신을 깨닫는다.
살아 있다는 건 중력의 법칙에 따라 땅에 붙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바닥에 붙어 움직이는 무거운 동물이지만 이제 그는 공중에 떠 있는 가벼운 존재가 되었다. 가브리엘 웰즈는 새로운 존재 조건을 활용해 곡예비행에 나선다.(p.132)
여기에서 보듯, 비행은 현실의 중력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중력은 한 마디로 어떤 존재가 다른 대상을 끌어당기는 힘. 그대로 세계가 개체가 가진 고유한 개성을 억누르고 세계가 허락한 틀에 자신을 길들이게 만드는 것에 대한 비유로 볼 수 있다. 그렇게 사회는 틀을 만들어 각자의 자리를 구획하고 거기서 쉽게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바로 이것을 들뢰즈는 '영토화'라 부른 바 있다. 영토화를 통해 틀에 갇힌 주체는 자기 자신의 시야를 가지지 못하고 사회가 허용한 시야로만 모든 걸 바라본다. 자신마저 그렇다. 우리가 고유한 우리의 모습을 인정하기 보다는 항상 타인의 모습과 비교해 우월감과 열등감에 젖는 것처럼. 시야가 좁으면 생각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고 폭이 협소해지면 질수록 자신에 대한 긍정 또한 줄어들게 된다. 오로지 타인의 인정을 통해서만 자기 안정을 얻을 수 있으니 내가 바라는 것 보다는 대다수가 바라는 것을 더 쫓게 되고 그렇게 다들 똑같은 것만 쫓게 되니 그것을 얼마나 이뤘느냐에 따라 절로 서열화가 이뤄져 늘 비교 우위나 열위를 통해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우리에게 타자는 공존의 대상이기 보다는 질투와 이용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내 뜻을 따르지 않는 대상에게 쉽게 증오를 표출하게 된다. 나와 같지 않고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거나 고집하는 타자는 언제든 내 것을 빼앗을 수 있는 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들뢰즈는 '탈영토화'할 것을 권한다. 사회가 구획하여 우리를 심어놓은 곳에서 탈주하라고 말이다. 어느 것에도 고정되지 않는, 본향이란 게 없는 유목민이 되어 머무르게 되는 모든 곳을 고향으로 삼고 만나는 모든 이를 가족처럼 여기도록. 그렇게 되면 나와 너를 나누는 경계란 오직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나온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며. 베르베르가 소설에서 섬세하게 묘사하는 비행이 바로 이러하다. 그 어떤 경계도 넘나들고 그 어떤 장벽도 막을 수 없으며 생각 아니 상상하는 만큼 빠르게 날 수 있는('타나토노트'에선 심지어 광속마저 초월할 수 있다고 한다.) 비행은 그만큼 사회가 형성한 나와 그것을 기반으로 굳건히 형성된 자기중심주의로부터의 이탈의 중요한 상징 행위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비행이 베르베르가 꿈꾸는 문학의 모습이기도 하다. 가브리엘 웰즈는 자신이 <이야기꾼>이 된 것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그 때부터 문학은 내게 한바탕의 마술로, 풀리는 난해한 수수께끼로 다가왔어요. 당신처럼 나도 부모님이 권유하는 세계가 싫었어요. 학교도 나와 맞지 않았죠. 그래서 가출을, 육체의 가출이 아니라 정신의 가출을 감행했어요.(p. 150)
그래서 나는 <이야기꾼>이라는 나만의 자리를 찾았어요.(p.151)
그런 웰즈는 오로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이 문학이며 다양성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장 무아지에게 이렇게 항변하기도 한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건 바로 문학의 다양성이에요. 그 자체로 나쁜 문학 장르가 있는 게 아니라, 장르마다 좋은 책과 나쁜 책이 따로 있을 뿐이에요.(p.40)
작가인 우리의 목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게 만다는 것, 이것뿐이에요. 책 읽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똑똑한 사람도 많아지겠죠.(p. 41)
창작을 하는 방법과 태도에 있어서 여러모로 실제의 베르베르와 유사한 점(심지어 책에 자주 소개되는 웰즈의 책 제목 역시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제국>을 살짝 비튼 것이다.)을 보여주는 웰즈는 사실 베르베르의 분신이라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므로 문학에 대한 웰즈의 소망은 베르베르 자신의 것이라 여겨도 무방하리라. 그런 의미에서 웰즈의 사후, 편집자 발랑브뢰르가 계획하는 A.I, <가브리엘 웰즈 버추얼>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문학이 마주하게 될 미래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고유하며 제한없는 상상력이 빚어내는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언제든 쉽게 A.I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고 말이다. 사실 A.I인 <버추얼>이 하는 일은 <공식> 문학 작가들이 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들은 마치 정해진 공식을 따르듯이 기존의 소재와 주제, 형식을 고집하며 변화를 거부한 채 쓰고 있을 뿐이니까. 이건 작가가 기존에 썼던 것을 데이터화 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최대한 그와 비슷하게 소설을 산출하는 A.I와 거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여기서 우리는 베르베르가 왜 그토록 <상상력>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상상력이 창출하는 다양성을 구현하는 사람의 능력을 A.I가 대체할 수 없다고 본다면 상상력, 그것은 다름아닌 인간의 증명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베르베르는 무엇보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아무런 제한 없는 상상력을 중시하니, 이건 그대로 아무런 영토와 경계에 좌우되지 않는 비행과 마찬가지고 동시에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언제든 다른 나가 될 수 있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베르베르가 상상력을 중시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물론 너무 단순하고 성급하며 오만에 찬 판단일 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용을 부려 말해 본다면, 바로 그 상상력이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변화를 만들거나 수용할 수 있게 하는 커다란 내부 동력이 되어주기에 베르베르는 중시하며 독자에게도 마음껏 향유해 보기를 권하는 것이다. 특히 2권 후반에 가서 펼쳐지는 장면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가득 자극하고 마음껏 뛰놀게 하는 마당이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꼭 말해둬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앞서 슬쩍 언급한 적도 있는 <경험>이란 단어다.
소설 '죽음'은 얼른 보면 한계 없는 상상력처럼 자유분방한 전개라고 느껴지지만 사실 이 <경험>이란 말을 중심에 두고 생각해보면 꽤 유기적으로 형성된 작품이란 게 느껴진다. 그도 그럴것이 이 소설이 하필이면 모든 용의자의 총체적인 삶을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확인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나 헤디 라마의 경우와 같이 타자의 한 면만 보고 전부를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것 그리고 소설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비행과 베르베르가 중시하는 상상력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주가 된다는 것이다. 소설은 대상을 단정하기 보다는 먼저 가서 그들의 말을 들으며 그들의 눈으로 그들을 보려고 노력한다. 이는 용의자에게만 그치지 않고 웰즈가 떠돌이 영혼의 세계에 적응할 때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전 면모를 가늠하게 되는 것도 그렇다. 오래도록 깊은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비행은 또 어떠한가? 소설은 누누이 날면서 느끼는 감각, 보여지는 풍경을 묘사하고 강조한다. 상상력 또한 그렇다. 그것은 과정 중에만 재현될 수 있는 능력이다. 이처럼 소설이 가지는 중요한 형식과 테마 모두 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경험>인 것이다.
그 <경험>에 대해 베르베르는 드라콘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의 자신의 어두운 면과 맞부닥뜨려 봐야 비로소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질러 봐야 고칠 수 있는 거예요. 단시간에 변혁을 이루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작은 변화와 성과를 소중히 여겨요. 진화는 덜컹거리고 요동치면서 서서히 이루어지는 거니까. (…)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은 해야겠지만 절대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세계가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데는 모종의 숨겨진 의도가 있으리라는 걸 기억하라는 말이에요. 실수 없이 앎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해요. 경험은 오랜 시간에 걸쳐 퇴적물처럼 쌓이는 거죠. 우리는 누구나 경험을 해봐야 해요. 그러고 나서 그 경험의 결과물을 확인해야 비로소 행동을 바꿔야겠다는 자각이 오죠. 그래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돼요.(p. 198)
여기서 잘 알 수 있듯, 그가 이처럼 경험을 중시하는 것은 그가 바라는, 자기중심주의에서 탈주하여 무한한 변화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오직 경험을 통해 성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절대 머리 속 지식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몸을 통해 실제 느끼고 실수와 잘못을 절감하며 그를 통해 스스로 바꿔야겠다는 의지로만 구현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베르베르가 2권 후반에서 가브리엘 웰즈로 하여금 뤼시에 빙의토록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웰즈는 뤼시의 몸에 빙의되어 여자 가브리엘 웰즈로 살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여성이 남성 중심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자신의 내면과 상관없이 오직 외모만으로 멋대로 규정 당하고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묻지도 않고 무턱대고 유혹부터 해오는 것 하며 그야말로 뤼시의 영혼이 아닌, 오직 뤼시의 육체만이 전부인 반응을 잇달아 만나는 것이다. 헤디 라마가 살아있을 당시 당했던 그대로 말이다. 그제서야 가브리엘 웰즈는 여성의 삶이 자신의 머리로 상상했던 것보다 많이 다르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여성이 되는 과정이 없었다면 결코 몰랐을 진실이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자신과 다른 견해를, 삶을, 타자를 더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결말에 이르러 웰즈가 놀라운 반전과 함께 밝혀진 진실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뤼시가 드라콘의 말에 따라 복수하려는 마음을 접고 보다 커다란 대의에 따라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던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과정의 경험이 가져다 준 힘 때문이었다.
네델란드의 철학자 반 퍼슨의 말마따나 현대는 '죽음 혐오의 시대'다. 우리가 그토록 죽음을 피하고자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것이 끝, 종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르베르는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고 권한다.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새로운 나로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물론 그렇게 여기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도 <파스칼의 내기>처럼 억지로라도 한 번 믿어보자고 말한다. 누가 아는가? 소설에서 소개한 <백 번째 원숭이 이론>처럼, 한 마리의 원숭이가 우연히 고구마를 물에 씻어서 먹었던 것이 나중에 백 마리의 원숭이가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도록 만들고 마침내 그 지역에 서식하는 모든 원숭이의 행동을 변화시켰듯이, 비록 나 혼자만이라 하여도 그렇게 믿고 나를 둘러싼 상황과 타자를 함부로 판단하려는 성급함을 접어두고 내가 아니라 타자를 중심으로 그와 이루는 관계의 과정에 충실하며 그 경험을 소중히 하면서 다가오는 변화에 온전히 나를 내맡긴다면 언젠가 나라는 작은 동심원에서 시작된 파문이 모두에게 영향을 미쳐 변화시킬지...
이것이 소설에서 웰즈가 말한 대로 '우주와 세상 사람들이 나의 행복을 위해 비밀리에 결탁하고 있다고 믿는' <프로노이아>일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베르베르의 모국 프랑스를 포함하여 세계 곳곳에서 번지고 있는 혐오와 적대의 불길이 어떤 비극을 자아내고 있는지 보노라면 그래도 베르베르가 내민 손을 잡고 가브리엘 웰즈가 헤디 라마와 그랬듯이 그를 따라가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부탁하고 싶어진다.
당신도 얼른 이 손을 잡고 변화를 위한 부름에 뛰어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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