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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2년 08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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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346g | 128*188*30mm |
ISBN13 | 9791160408331 |
ISBN10 | 1160408335 |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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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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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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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기괴하지만 한편으로는 코끝이 아릿해지고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사랑스러운 단편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잖아요.
괴담이라 불릴 만큼 말도 안 되는 일에도 사실은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 10p
이따금 상상한다. 나를 둘러싼 어떤 괴담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내 안에 어떤 악마 같은 것이 깃들어 좋은 것만 열심히 파먹고 파먹어서 남은 이 비루한 껍데기가 나인 건 아닐까. 달리고 달려 필사적으로 가 닿으려고 하면 또 다시 제자리로 와 있는 나는 끝없는 악몽의 굴레 속에 빠져버린 앨리스는 아닐까. 어쩌면 괴담이란 인간의 가장 연약한 틈을 비집고 들어와 가만가만 살점을 뜯어먹다 어느 새 커져 버린, 불안과 상처를 먹고 자라난 우리 안의 괴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때문에 나는 밤이 되면 나온다는 학교 귀신 따위보다, 고통과 불안에 오늘도 철저히 유린되고 마는 나의 지난한 삶이 더 무섭다.
그러고 보면 조예은의 『트로피컬 나이트』 역시 괴담의 실체를 우리 내부에서 엿보았던 게 분명하다. 존재감이 없고, 늘 놀림을 당하다 못해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고 싶어 스스로 유령이 되어버린 아이(「할로우 키즈」), 잡아먹힐지언정 홀로 외로이 죽지 않겠노라 필사적으로 괴물 같은 ‘그것’을 끌어안는 옥주(「고기와 석류」), 내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끔찍한 단절의 감각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연주(「릴리의 손」), 끊임없이 우등생인 사촌언니와 비교당하며 엄마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끌리듯 살아온 유리(「새해엔 쿠스쿠스」), 급성 먼지바람이라는 재해에 아니 사람 때문에 2년 째 집밖을 나서지 않는 수안(「가장 작은 신」)과 같은 인물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삶이야말로 실체를 알 수 없는 괴담에 가깝다고 느꼈으리라.
“은주는 일주일 내내 같은 옷 입는대요! 빨지도 않나봐, 더럽고 냄새나!”
그 순간, 제 몸에서 정말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습니다. 엄청난 악취였어요. 귀찮다는 이유로 같은 옷을 여러 벌 산 엄마도, 소리 지르는 짝꿍도, 이상한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는 반 아이들도, 어딘가 안쓰러운 빛을 띤 담임선생님의 눈빛도 전부 끔찍했어요.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 「할로우 키즈」 중에서 10p
재이의 부모님은 자주 늦었습니다. 9시, 심지어는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애를 맡겨놓고는 했어요. 주로 정장을 입은 어머님이, 가끔은 술 냄새를 풍기는 아버님이 오셨습니다. 재이는 얌전하게 기다리고만 있었죠. 칭얼거리지도 않았습니다. 기다리는 게 익숙한 애였어요. 그런데 제가 일하면서 느낀 건데요, 어른도 짜증 날 정도의 상황에서 애가 가만히 있는다는 건 그리 좋은 게 아니에요. 그 지루한 시간을 재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견뎠을까요. / 「할로우 키즈」 중에서 13p
세상에는 참 병든 사람들이 많고, 죽음의 순간 또한 다양했다. 장례식장도 마찬가지였다. 사흘 내내 식장이 미어터지도록 조문 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상주조차 제대로 자리를 지키지 않는 이도 있었다. 식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무연고자로 화장되는 이들 역시 적지 않았다. 옥주는 상처를 치료받으며 자신의 최후에 대해 생각했다. 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모르게 고요히 가겠지. / 「고기와 석류」 중에서 34p
그 중에서도 외로움이란 감정을 가장 기괴한 공포의 형태로 그려낸 「고기와 석류」란 작품이 단연 인상적이다. 남편과 정육점을 운영하던 옥주의 마을은 옆 동네에 백화점이 생기면서 쇠퇴하기 시작한다. 남편이 먼저 암으로 죽고 장례식장에서 일하며 종종 자신은 홀로 남아 외롭게 죽을 것을 상상하던 옥주는 어느 날, 퇴근길에 우연히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정체불명의 ‘그것’을 마주한다. 석류알처럼 붉은 눈을 한,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이 같은 모습의 ‘그것’을 옥주는 집으로 데려온다.
옥주는 사람인지 괴물인지 모를 ‘그것’을 먹히고 입히며 자신의 곁에 둔다. 설령 그것에게 자신이 잡아먹힌다 할지라도 개의치 않는다. 아니, 기왕이면 석류가 아주 깨끗이 자신을 발라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석류의 양분이 되어 이해 불가능한 죽음으로 남을지언정 외롭게 죽지는 않겠노라고. 그것만이 남은 삶의 마지막 목표이자, 지금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라 믿으면서. 이는 다단계 직원으로, 자신을 등쳐먹으리라는 빤한 속셈으로 찾아오는 미주를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수안(「가장 작은 신」) 역시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작가 조예은은 다수의 작품을 통해서 ‘홀로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을 매우 실감나게 보여준다.
옥주는 그것 앞으로 다가갔다. 문득 이 풍경이 아주 그립고 익숙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공간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늘 누군가 자신을 맞아주고, 라디오 음악 소리가 들리던, 생기 넘치던 시절이. 집에 돌아와 낯선 이와 눈을 마주치는 게 이리도 두렵지 않은 일이었다니. 죽어가는 눈을 보지 않는 게, 살아 있는 눈을 보는 게 이렇게 심장 뛰는 일이었다니. 그것이 비록 사람인지 괴물인지 모를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 「고기와 석류」 중에서 37p
대부분 자신이 누구인지, 나이나 이름, 가족을 포함하여 살아온 흔적들을 모두 잊었다. 어차피 한번 틈을 넘어온 이상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었기에 잊는 게 더 낫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모든 걸 온전히 기억하는데 돌아갈 수 없다면, 그것대로 견디기 힘든 비극이니까. 그런 이방인들을 구조하고 이후의 삶을 지원하는 게 릴리와 연주의 일이었다. 하지만 잊는 게 낫다는 건, 겪어보지 않은 이들이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되는 말이라고 릴리는 생각했다. 그건 정말,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 「릴리의 손」 중에서 69p
처음부터 밖에 나가지 말아야지 한 것은 아니었다. 경보음이 울리는 날에는 밖에 나가지 말아야지, 했을 뿐인데 경보음이 매일 울렸다. 일주일에 네 번 울리던 것이 하루에 네 번씩 울렸다.
공기 정화 특수 방독면이 개발되어 미세먼지 수치가 높은 날에도 야외 활동을 할 수 있게는 되었지만, 수안은 여전히 밖에 나가지 않았다. 혼자 지내는 날이 길어질수록 마음속에 벽이 생겨났다. 아주 작은 먼지들이, 온몸의 구멍을 파고들어 무수한 거절의 기억을 심어놓은 듯했다. 먼지보다 사람이 두려워졌다. / 「가장 작은 신」 중에서 156p
‘미주에게 수안이 수십, 수백 중의 1이라면 수안에게 미주는 그 자체로 꽉 찬 1이었다.’
우리는 늘 지독한 고통과 불안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변치 않고 반짝이는 내 안의 다정한 기억들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서 꽉 차오르는 누군가가 있기에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국의 땅에서 쿠스쿠스를 함께 먹자고 사진을 보내오는 언니가 있고(「새해엔 쿠스쿠스」), 실적의 압박에 시달리며 친구를 이용해야 하는 미주에겐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내미는 수안이 있다(「가장 작은 신」). 죽음이라는 운명으로부터 끊임없이 도피해야 하는 블루에게는 썸머와의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푸른 머리칼의 살인마」). ‘이건 확신이야. 내 애정이, 내 목소리가 너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닿을 거라고 믿어.’ 「릴리의 손」에서 연주가 릴리에게 남긴 편지의 글귀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닿을 거라는 믿음, 바로 그것이 그 어떤 확신조차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순간에도 우리를 지탱하게 하는 게 아닐까. 덕분에 『트로피컬 나이트』에 수록된 단편들은 대체로 기괴하지만 한편으로는 코끝이 아릿해지고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사랑스러운 작품이 된다.
“어렸을 때는 그 사실이 엄청 힘들었는데 나이가 들고 생각해보니까, 그건 사실 당연한 거야. 어떻게 타인이 타인을 완전히 이해해? 텔레파시가 통하지 않는 이상.”
릴리는 연주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그래도, 엄마가 말했었거든. 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이해 못 하면 뭐 어때. 내가 있는 것만으로도 이해 같은 거 없어도 힘이 된다는데. 결국 지금 누구랑 있느냐가 중요한 거 아니겠어?” / 「릴리의 손」 중에서 94p
도끼와 피와 질투와 후회와 괴로움에 잊고 살던 어떤 순간들이. 트리에 걸린 장식품처럼 반짝이며 존재하던 기억이. 맞아. 난 한 때 이런 기억들로 살았다. 나를 이루고 나를 움직이게 만들던 시간들이 있었지. 스스로를 되찾은 블루는 너무 오래 부르지 못해 입 안에 갇혀버린 이름을 비로소 떠올렸다. 블루는 마지막 남은 온 힘을 다해, 세월의 먼지를 털어낸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보았다.
“오랜만이야, 썸머.” /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 중에서 307p
『트로피컬 나이트』는 한국 문단의 떠오르는 작가로 조예은이라는 이름 석 자를 기억할 만한 인상적인 작품집이다. 다만 촘촘한 구성과 좀 더 독보적인 형식의 단편들을 기대한 점에 있어서는 얼마간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떨어지는 별똥별이 아니라 날아오르는 별똥별을 보는 듯한 감각’을 독자들에게 선물해줄 줄 아는 작가라는 점에서 계속 주목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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