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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4년 05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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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16쪽 | 301g | 153*224*20mm |
ISBN13 | 9788936434120 |
ISBN10 | 8936434128 |
2024년 10월 31일 ~ 2024년 11월 30일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2024 노벨문학상]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문학의 성취
2024년 10월 14일 ~ 2024년 11월 29일
문학 PD가 보내는 백 번째 편지 : 100호 기념 기획전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뉴욕타임즈 21세기 최고의 책 100대 도서 『파친코』, 『채식주의자』 선정
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1월 08일
소진시
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30일
상시
소년이 온다 + 흰 + 작별하지 않는다 + 채식주의자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5권
한강 저 | 문학동네+문학과지성사+창비 | 2022년 03월 28일
65,970원 (10% 할인)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대표작 세트 소년이 온다 + 작별하지 않는다 + 채식주의자 + 흰 + 희랍어 시간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6권
한강 저 | 문학동네+문학과지성사+창비 | 2022년 03월 28일
77,670원 (10%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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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의 총칼에 으스러진 소년이
한 줄기 빛이 되어 우리에게 온다
한강, 《소년이 온다》(창비, 2014.)를 읽고
한강은 소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작가로, 일찌감치 ‘한국 현대문학의 기수’로 손꼽히던 인물이다. 이렇게 촉망받는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었던지라, 이번 기회에 그녀의 작품이 왜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하게 했는지 알고 싶었다. 이렇게 잘 나가는 소설가가 왜 굳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새롭고도 위태한 도전을 하는지도 궁금했다. 1970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난 그녀에게 80년 5월 광주는 쉬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소설가이자 광주 태생으로서의 한강은, 이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책을 쓰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그녀의 생동감 있는 묘사와 섬세한 표현력에 담아내려 한,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는 목적을 지니고 책을 읽으니 더욱 가슴에 와닿았다. 이 책은 장마다 시점과 주인공을 달리 하여 80년 5월의 광주를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했다. 또, 평상시 우리가 5.18 민주화 운동을 바라보는 관점과는 완전히 다른 미시적 관점에서 이를 재조명한다. 무엇보다도, 현장감 있는 묘사와 살아있는 듯한 표현은 책을 뚫고 나올 것만 같이 뚜렷하면서도 가슴이 아린 것들로 가득하다. 감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41년전 광주의 봄을, 작가는 충분히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소설적인 요소를 가미해, 독자에게 박진감과 감동, 그리고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명저를 남겼다. 나라를 위해 두렵고도 장엄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하나둘씩 쓰러지던 시민들의 존재만 잊지 않는다면, 이 책은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어줄 귀중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17쪽.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이 문단을 읽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쫘악 끼쳤다. 그 이유는, 첫째로 한번도 열사들의 시신을 태극기로 감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둘째로 이것은 열사들이 목숨바쳐 지켜내려한 나라가 결국 그들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바로 이어져 나오는 ‘은숙 누나’의 명쾌한 대답이다.
17쪽.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이 지점에서 나는 다시 한번 탄복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런 명징한 표현에는 작가가 진정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는 듯했다. ‘은숙 누나’가 말했듯이, 당시 군인들은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나라의 일부가 아니라, 권력욕에 눈이 먼 장교의 졸개들이었을 뿐이다. 이 장면에서 군인들이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역설함으로써 나라를 위해 투쟁하는 애국열사들의 존엄성과 위대함을 더욱 부각하는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76쪽. 바닥에 떨어진 유인물을 주웠다. 굵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학살자 전두환을 타도하라. 그 순간 억센 손이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유인물을 뺏고 그녀를 의자에서 끌어냈다.
학생들의 강한 민주화 요구에도 사복경찰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잔인하게 진압하고 탄압하였다. 이 장면을 찬찬히 읽어내려 가며, 문득 KBS 〈대화의 희열 2〉이라는 토크쇼 8화에서 80년 ‘서울의 봄’에 관한 자신의 경험과 소회를 밝히던 유시민 작가가 생각났다.
“근데 11시 반쯤인가 됐는데 라디오에서 비상계엄 확대 조치가 딱 발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왔구나. 이제는 덮치겠구나. 이제는 도망가야 해.’ 그래서 우리가 한 대엿 명 정도 있었는데, 남자들, ‘야, 도망가자. 이제 여기도 들어올 거야.’ 그러고 문을 타 여니까 밖에서 쇠사슬을 뜯고 있는 거야. (중략) 근데 나오는데 전화벨이 울리는 거야. (중략) ‘여기도 왔어요, 빨리 도망가세요.’ 그러고 끊고 나오는데 딱 잡혔지. (중략) 그냥 이단 옆차기 바로 날아오고, 권총 딱 대고. ‘너 누구야. 이름 뭐야.’ 그냥 유시민이라 그랬지, 뭐라 그래.”
이 소설과 유시민 작가의 이야기는 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 있었던 일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똑같은 일이 전라남도 광주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벌어졌던 것이 80년 5월이었다.
“제가 스무살 때 학생운동 이런 걸 하고, 유인물을 뿌리러 다니고, 데모를 하고, 이렇게 시작했을 때, 저는 될 거라고 생각 안 했어요. (중략) 그때 ‘이길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하고 하면 못 해. 해야 되니까 하는 거지. 근데 왜 해야 된다고 생각하냐면, 너무 못나 보이잖아, 그냥 있으면. (중략) 못 이길 거 같은데, ‘에이 못 이겨.’ 그러고 그냥 가면, 너무 비참한 거야. (중략) 세상을 이렇게 해서 못 바꾼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걸 한다고요. 나를 지키려고요. 내 스스로,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비천하다, 비겁하다 이런 느낌을 안 가지고 살고 싶은 거지. 아니, 내 책임이 아니에요, 유신 체제 이런 거. 나는 그냥 그런 세상에 왔을 뿐인데.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근데, 그냥 가면 그런 감정을 계속 느낄 거 같애, 자기 비하의 감정을.”
군부독재국이었던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에 쓰여진 대로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변모하는 데에 있어서, 그 공을 민주화 운동에 몸소 뛰어드셨던 분들께 돌린다.
종이도 네 귀를 들어야 바른 이유
114쪽.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 양심. / 그래요, 양심. /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 (중략) /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지난 9년간 학교에서 배운 ‘5.18 민주화 운동’은, ‘박정희 정권이 10.26 사태로 허무하게 막을 내린 이듬해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난 민주화 운동으로, 1979년 12.12 군사 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 세력의 주도로, 광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참극’이다. 이 말만 들으면 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잘 요약해 놓은 듯하지만, 사실 저 문장에는 광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학교에서 흔히 배우는 거시적 관점이 아니라, 이 소설에서 제공하는 미시적 관점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재해석한다면, 곧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광주 시민들이 ‘독재 타도’를 외치며 일제히 봉기한 민주화 운동으로, 이때 시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거대한 민중의 한 지체로서 참여했으며, 이는 양심과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에서 비롯된 시민 불복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앞서 언급한 소설의 본문을 통해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한 개인의 심경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 개인은 어찌 보면 나약하고 불안한 인간일지라도, 그들이 모여 하나가 되었을 때 창조해내는 시너지 효과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정의를 례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사회의 변혁이나 개혁을 통해 바꾸고자 하는 것은 어렵고 힘들다. 또, 그렇기에 용감하고 대담하다. 그렇기에 위대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답을 찾지 못한 질문도 더러 있다. 가령, 한강이 왜 이 책을 집필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감히 추측컨대, 작가는 독자가 이 책을 읽고 본인의 삶에 대한 태도나 생활 속 행동에 변화가 있기를 바라고 이 책을 집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 자신이, 한강이라는 사람이 80년 5월 고향에서 어떤 비극이 일어났는지, 또 그 비극의 주인공들은 얼마나 미약하면서도 강인했는지를 알리고 싶었기에 이 책을 저술했다고 생각한다.
자칫 잘못하면 무거운 시대극으로만 치부되어 고리타분하고 읽기 힘든 책이 될 수도 있었으나, 작가의 탁월한 표현력과 묘사력은 이 책을 논픽션 보고서가 아니라 소설 그 자체로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었다. 일례로, 제2장 〈검은 숨〉에서 ‘나’는 자신이 죽어가는 과정을 혼이 되어 묘사한다.
57쪽.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이 장면에서 한강의 거침없는 표현력을 엿볼 수 있었고, 또 그녀의 상상력에 감동받았다. 죽은 육의 살아있는 령이 자신의 주검을 빠져나와 그것을 보면서 본인의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보통 소설의 전개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또, 앞서 2문단과 3문단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은 독자에게 근현대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을 대하는 새로운 관점을 소개하였고, 개인이 섣불리 하기 어려운 행동을 민중 속에서는 그들 각자가 어떻게 실현하는지를 생생히 표현하였다. 뿐만 아니라, 각 장마다 시점과 주인공이 다르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고, 그러면서도 인물 간의 관계가 복잡하지 않아서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당시 광주의 모습과 개인의 감정에 대한 묘사가 퍽 사실적이어서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켠이 아플 정도였다.
평소에 당신이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와 관계없이, 이 소설은 당신을 푹 빠지게 만들만한 매력이 흘러넘친다. 시대극으로서도, 소설 자체로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기에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표현이 다소 거칠고 끔찍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소설의 사실성을 더욱 드러내기 때문에 오히려 소설에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제1장 〈어린 새〉에서 ‘너’라고 불리는 주인공 ‘동호’는 군인의 총에 맞아 중학교 3학년 16살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말 그대로 ‘군인들의 총칼에 으스러진 소년’임에 틀림없다. 제2장 〈검은 숨〉에서 서술자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정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요절한 청년으로 불쌍히 여겨야만 하는 대상은 아니다. 그들은 광주의 민주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누구보다도 강한 양심과 행동력을 갖추었던, 우리나라 민주화의 주역들이다. 그런 그들이 2021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성큼성큼 걸어온다. ‘한 줄기의 빛이 되어’.
한강의 소설을 읽기로 결심했을 때 <소년이 온다>는 되도록 나중에 읽고 싶었다. 주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해 온 작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사회 문제를 다루기로 마음먹기까지 일련의 과정의 있을 것 같았고 그 과정이 무엇인지 알고 나서 <소년이 온다>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채식주의자>로 시작해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을 부지런히 읽었고 이제 드디어 <소년이 온다>를 펼쳐들 시간이 되었다.
1980년 5월 광주, 열다섯 살 동호는 친구 정대를 찾아 합동분향소가 세워진 도청 상무관에 갔다가 그곳에 먼저 와있던 수피아여고 3학년 김은숙, 미싱사 임선주의 부탁을 받고 시신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얼마 후 도청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계엄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지고, 이들은 시신을 두고 밖으로 나갈지 아니면 안에서 계엄군을 맞을지 고민한다. 계엄군의 총소리가 도청을 중심으로 온 도시에 울려퍼진 그 날이 지난 후, 은숙은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게 되지만 검열에 걸려 경찰에게 피멍이 들도록 뺨을 맞는 폭행을 당한다. 선주와 진수는 체포 당시 총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극렬분자', '빨갱이'로 분류되어 성기 고문, ‘모나미 볼펜’ 고문 등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렀던 살상들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 (p.206)
젊은이들을 죽인 것은 다름 아닌 동족의 군인들이었다. 작가는 집필에 앞서 5.18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읽으려 했지만 두달 여가 지나자 주저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른 아무 것도 읽지 않고 5.18 관련 자료만 읽다 보니 밤마다 군인들에게 쫓기거나 그들이 들이민 총검에 찔리는 악몽에 시달렸다. 꿈이라도 이렇게 공포스러운데 현실에서 같은 일을 당한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들을 유린한 군인들은 과연 어떤 낯짝을 하고 있을까. 작가는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던 군인들이 한 해 전 부마항쟁을 잔혹한 방식으로 진압했던 이들, 베트남전에서 몇백만 명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이들이 아닐까 암시한다. 그리고 이들의 핏줄이 2009년 1월 용산에서, 2014년 세월호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라고 적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p.212) 작가는 인간의 잔인성을 의심하지 않지만, 잔인성을 강요하는 권위 앞에 굴하지 않고 양심을 지키는 인간도 있다는 믿음 또한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점에 1980년 5월의 광주를 작가가 재조명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p.134)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에 이어 <소년이 온다>를 읽으니 작가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누구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은 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작가는 이토록 잔혹하고 폭력적인 사회를 다름 아닌 인간이 만들었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끼고 그런데도 인간을 사랑해야 하는지 갈등했던 것 같다. 이로 인해 <채식주의자>에선 육식을 거부하다 못해 스스로 식물이 되기를 택한 영혜를 통해, <바람이 분다, 가라>에선 짐승마냥 자기 욕망에만 충실한 사람들 속에서 바로 살 수 없었던 두 친구 정희와 인주를 통해, <희랍어 시간>에선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빛을 일어가는 남자를 통해 잔인한 세상에 순응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그렸다.
그렇다면 <소년이 온다>에선 어떨까. 이 소설은 작가의 소설 중 가장 이질적인 느낌이 들지만 외려 작가의 문제 의식이 가장 극대화된 듯하다. 사회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시민들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 만큼 폭력적이다. 사람들은 집문을 걸어 잠그고 두 귀를 틀어막고 점점 그 사건을 외면하고 잊어버린다. 그런데도 사회의 폭력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다. 차마 저항하지 못했어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는 저항했던 사람이나 저항하지 않은 사람이나 이 사회에 거대한 악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한 죽어도 죽지 못하고 살아도 살지 못함을 그림으로써 간접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인간이 존엄하다는 믿음은 스스로 증명하지 않는 한 미신(myth)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러니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을 증명하라는 것을. 벼른 끝에 이 책을 읽은 마음이 가볍지 않고 무겁다.
한강 작가님의 책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으로 인해 서점과 출판계가 들썩인다.
포털 기사에서 소식을 접한 순간 뭉클했다.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 한 사람으로서 그 기쁨이 오롯이 전해진 것 같다.
한국 문학계가 사실 불미스런 일들로 인해 침체기였는데, 한강 작가님의 수상 소식은 그래서 의미 깊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콩쿠르상과 더불어 3대 문학상의 하나인데 문학상을 수상한 전례가 없는 우리
나라이기에 더욱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하고 생각든다.
다른 문학상과는 다른 맨부커상은 작가와 번역가가 공동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게되어 더 가치있는 상이며, 최대한 원문의 의미를 되살려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우리 문학의 해외 수상이 흔해질 것 같은 기대감이 드는 이유다.
그러고보니 한강 작가님 책은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구나.
이런 기쁨 처음 맛보기에 한강 작가님의 책들을 지금에서야 읽게 된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시선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먼저 구매했다.
그리고 카트에 넣어둔 <희랍어 시간>, <바람이 분다, 가라>도 꼭 읽을 예정이다.
냄비 근성의 민족이라 하지만 어떤가? 이런 계기로 책에 관심 없었고, 잘 읽지 않았던 사람들도 책 읽는
기쁨을 알게 되고, 책 잘 안 읽는 나라 사람들이라고 낙인 찍힌 것 조금이나마 희석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한강 작가님 하면 생각나는 책이 <소년이 온다>이다.
이 책을 먼저 읽고나면 한강 작가님이 어떤 문체와 어조로 이야기를 끌어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구매한 3권의 책 중 <소녀이 온다>를 먼저 읽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항쟁이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다.
내 나이 5살...... 기억하는 순간들이 있기에는 너무 어렸다. 신문을 읽기에도,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이해하기엔 또 얼마나 어려운 나이일까? 부산과 광주. 거리감이 느껴진다.
같은 나라에 같은 하늘과 땅인데 이런 거리감은 지금도 계속 진행중이다.
이야기는 시, 공간적 배경만큼이나 잿빛, 우울, 먹먹함으로 다가왔다.
겪어보지 못했지만 생생함으로 그 시간 속에 있었던 너, 그, 그녀, 그들의 이야기가 무자비한 폭력으로
얼룩진 그 곳을 상기시켰다. 앳되고 순수한 젊은 청년과 무고한 시민들이 이유도 없이 잡혀가고 죽어갔다. 더 이상 그들을 구할 대한민국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권력자라 불리는 자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공고하게 지키기위해 그들의 백성들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단지 민주주의와 자유를 갈망했을 뿐인데........
그 댓가치고는 너무 가혹했다.
사진을 보는것보다 더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읽기가 힘들었다.
새삼 1970년대, 민주화의 불꽃이 피어올랐던 그 곳 광주에서 태어난 작가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참 많이도
자료를 모으고 배경이 된 현장을 갔다왔을 터 그 마음이 칼로 베인 듯 얼마나 아리고 아팠을까?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이며 후세에도 길이 전해져야되는 역사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그 때 피지도 못한 채 희생당한 젊은이들의 목숨과 맞바꾼
것이기에 진정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다. 참 고맙고 감사하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 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많이 아프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인간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인간의 역사는 그동안 전쟁와 살륙으로 점철된 피의 역사였기에 그럼 그것으로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
정당성이 부여되는가? 어떤 대답을 받기 위한 질문은 더욱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난 잔인함 이면의 인간의 존엄과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것
같다. 계속 고민해야 될 부분이 아닌가싶다.
80년 5월의 광주는 과거의 시간 속에 묻혀져 서서히 잊혀져갔지만..... 그럼, 그 때 이후 남은 사람은?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 참혹함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5월은 어쩌면 가장
잔인한 달일런지 모른다. 육신이 죽어야만 진짜 끝나는 전쟁임을 알기에 지금 이 땅에서 숨 쉬고 있는
자신들을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 세월이 한참 지나 이 좋은 날들이 펼쳐졌건만 죽지 않고 살아남았기에 더욱 몸서리치도록 아프고 힘겨운 나날들. 그들의 상처와 고통은 언제 즈음 아물어질 수 있을까?
새삼 지금 맞이하고 있는 5월의 빛이 참 역설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 때의 어둠과 그늘, 폭력과 광기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니깐....... 먹먹함이 가슴팍 깊이 박혔다.
자꾸 생각이 날 것 같다. 한강 작가님의 문체가 이렇다면 다음번에 읽을 <채식주의자>도 부담감으로
다가올 것 같은데..... 얼마남지않은 5월이란 시간이 후딱 지나가야 될 것 같다.
아직 내 시계는 5월 그 <소년이 온다>에 멈춰 있다.
안흥도서관에서 빌린 『소년이 온다』
완독한 뒤에 도착한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는 안흥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5.18민주화운동이 있었던 5월을 맞아 어떤 매체에서 권장도서로 이 책을 추천했기에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입을 신청했다. 그러나 한강 작가의 맨부커 상 수상과 함께 저자의 작품 대부분이 품절이 되면서 닷새가 지나도록 발송이 되지 않고 있었다. 마침 안흥도서관에 이 책이 있기에 빌린 것이다. 나로서는 책을 만나려고 적극적으로 애쓴 드문 경우이다. 그런 인연으로 만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2인칭 시점 소설의 매력을 느꼈다. 대부분의 작품은 1인칭이나 3인칭으로 창작된다. 나의 기억에 떠오르는 2인칭시점소설은 연용흠의 『코뿔소 지나가다』였다. 그 작품은 단편집인데 그중에 몇몇 편이 2인칭시점으로 되어 있었다.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생소한 서술에서 개성을 느꼈으나 익숙하지 않으니 불편했다. 그러면서 굳이 2인칭시점으로 쓸 필요가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의 첫 대목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은 ‘읽기에 피곤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기우였다. 2인칭시점 소설의 진수를 맛보았다고 할까? 이 작품을 1인칭이나 3인칭시점으로 서술했다면 느낌이나 감동이 전혀 달랐을 것이다.
둘째, 5.18민주화운동의 주인공은 광주 시민임을 느꼈다. 이 책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전체적으로 보면 중3 학생으로 시민군에 참가했다가 12.12 반란으로 권력을 잡았던 신군부에게 무참하게 살해 된 동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너’또는 서술자에는 동호 외에도 동호의 친구 정대, 정대의 누나 정미, 동호가 시민군에서 만난 여고생 은숙, 여성 노동자로 시민군에 참가했던 선주, 대학생 진수, 진수와 함께 시민군에 참가했다 살아남은 동료 등이 나온다. 가장 가슴이 뭉클했던 대목은 동호 어머니의 독백인 6장이었다. 동호 어머니가 서술하는 부분은 동호에게 전하는 넋두리 형식이었다. 계엄군에 의해 자식을 잃고, 그 충격으로 남편마저 세상을 떠난 뒤에 남은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피를 토하듯 절절하게 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가슴 아프게 읽은 부분이기도 하다.
동호는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저자는 동호네와 작은 인연이 있기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하고……. 광주의 희생자가 어찌 희생자와 그 가족뿐이겠는가? 그 당시 광주에 살았던 시민들, 아니 그 시대를 살았던 국민 모두가 함께 겪었던 무서운 전염병인 것을…….
셋째, 수양대군의 삶이 떠올랐다. 뜬금없이 수양대군을 생각한 이유는 동호 또래였던 어린 조카 단종과 친아우인 안평대군과 금성대군 및 사육신 등 많은 사람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던 수양대군과 5.18의 주범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수양대군은 행복했을까? 소원대로 권력을 잡았고, 그 후손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도 했으니 뜻을 이루었고 당연히 행복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양대군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 겨우 재위 14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남인 의경세자는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20세에 죽었으며, 차남인 예종 역시 재위 2년 만에 20세에 세상을 떠났다. 수양대군은 자신의 손으로 장남을 묻었으며, 죽자마다 자신을 따라온 차남을 맞아야 했다. 뿐인가? 자신의 며느리인 예종비 장순왕후는 17세에, 손주며느리인 성종비 공혜왕후도 19세에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예종비와 성종비는 수양대군의 일등공신인 한명회의 딸들이기도 하다. 당대 사람들은 수양대군과 추종자를 심판하지 못했어도 역사는 잊지 않고 업보를 내려준 것이다. 수양대군을 잊지 않은 역사의 신이 5.18의 책임자도 잊지 않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권하기가 망설여진다. 이 작품을 통해 과거를 떠올릴 광주시민은 얼마나 아플 것인가? 당시 시민군이 좌익이었다고 믿고 있는 이들은 얼마나 당혹스러울 것인가? 그러나 전두환 씨와 박근혜 씨에게는 일독을 권하고 싶다. 아직도 광주학살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국민 화합을 위한 것인지 책장을 넘기면서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아, 맨부커 상 수상으로 인해 한강 작가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그의 작품들이 세계적으로 읽힐 것이라고 한다. 수상작인 『채식주의자』와 함께 이 책도 널리 읽히기를 소망한다. 5.18이 어떤 것인지 한국을 넘어서 세계에 알려지는 것……, 한강 작가가 영광을 차지한 배경에는 주인공들의 그런 염원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소년이 온다'라는 표제는 세계인의 가슴을 향해 소년이 오고 있다는 예언이 아닌가 싶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 있고, 잊어도 되는 기억도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기억에는 추억하고 싶은 것도 있고,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아마도 그 기억이 다시 현실로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아닐까
지난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는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이 딱딱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교과서가 아니라 나와 같이 함께 숨 쉬고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는 펄펄 살아서 생생하게 와 닿는다. 이 책은 ‘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이웃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들이 느꼈던 양심과 고문에 대한 공포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과 깊고 깊은 상처가 내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114p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왔던 것일까? 양심이란 무엇일까? 그 양심이 무엇이기에 수많은 사람을 광장으로 불러 모은 걸까? 자신의 목숨을 버려도 좋을 만큼 소중한 것이었을까? 아니 목숨을 버려도 좋은 것이 아닌 더 이상의 목숨이 버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어섰는지도 모른다.
‘양심은 인간의 행위에 대한 규범입니다. 어떤 행위를 명령하든지 혹은 금하든지, 양심을 거스르는 행위는 결코 허용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심을 따라야만 합니다.’ 라고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양심이 규범이라면 따르고 지켜야만 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도망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도망갈 수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양심은 모여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고, 군인들의 총구 앞에서도 두렵지 않았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135p
그 날의 기억을 안고 살아남은 이들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그 기억은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상처가 너무 깊어서 끊임없이 자신의 목숨을 끊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 했다. 매일 악몽에 시달리면서 삶을 겨우 살아갈 수 있을 뿐이었다.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군인들의 총구 앞에 쓰러진 이들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행복한 삶은 전혀 꿈꿀 수 없었다.
무슨 대답을 해 줄 수 있을까? 어떤 말을 해 주면 좋을까? 나에게 던져지는 질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그때의 장소와 시간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어떤 말을 해도 무의미할 것 같았다. 그저 입안에서 ‘그래도 살아가야 되지 않느냐?’란 형식적인 말이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2013년 1월의 서울 거리는 며칠 전의 꿈속처럼 황량하고 차가웠다. 예식장의 샹들리에는 화려했다. 사람들은 화사하고 태연하고 낯설어 보였다.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205p
지나간 일이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고 잊어버리자고 할 수도 있다.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죽어간 사람들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질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나의 가족이었고 친구였고 동료였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 날의 기억이 다시 현실에서 살아나 그대로 반복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처럼 양심에 따라서 분연히 일어나서 무력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닌듯한 이야기는 단숨에 책을 읽어버릴 만큼 강렬했다. 그 강렬함에 충격을 받았고 살아남은 자들의 고문 장면에서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멀게만 느껴지던 그 날의 이야기가 직접 경험한 듯 내 기억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슬픔에 사로잡혔다. 그 이야기의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면 지나온 한 해를 잘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잘 맞이하기 위하여 어김없이 송년 감사미사에 꼭 참례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생겨서 참석하지 못했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였다. 순간 새로운 한 해가 정말 온 것인가 하는 의심이 자꾸 들었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기념하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날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의미 없는 날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지난 한해를 잘 보내고 새해를 잘 맞이하기 위하여 기념하고 기억하는 의식에 참여한다. 제야의 타종소리를 들으며 그 종소리에 지난 한 해를 실어 보내고,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새로운 다짐과 함께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가보다. 새해 첫날뿐 아니라 생일과 각종 기념일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날을 기념하고 기억해야만 그 날은 계속 나에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지훈 감독의 영화 『화려한 휴가』의 마지막 대사가 떠오른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썼다가 지운다. 다시 썼다가 다시 지운다. 그렇게 일주일이 열흘이 지났다. 격앙된 목소리로 그날의 기록에서 받은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쏟아내었다.. 지운다. 슬픈 얼굴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글자들을 화면위에 늘어뜨렸다.. 지운다. 눈물로 울음을 울지 못한다. 그동안 흘렀던 눈물과 똑같은 눈물을 흘릴 수는 없다. 그동안 쌓았던 을분과 똑같은 을분을 터뜨릴 수는 없다. 이것은 소소한 감정의 소비로 마무리할 수 있는 종류의 진실이 아니다. 울면 안된다. 가족과 싸웠다고, 몸이 아프다고, 저녁 어스름이 감성을 건드린다고 흘렸던 것과 똑같은 물리적 성분으로 구성된 액체를 흘려 내림으로 해서 잠시 머물렀다가 떠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고통이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실은.
1980년 광주, 5.18은 '고립'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은폐'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닸다. 죽은 사람들의 영혼은 아직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해 아른아른 우리들 삶의 틈새로 흘러다니고 죽지 않은 사람들은 방사능 피폭처럼과 유전자들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잔인하게 세포들을 태운다. 죽었거나 살았거나 그 총검 앞에 학살.고문.폭력.살인.능욕과 같은 가장 잔인한 언어들은 무기력하다. 그 어떤 언어도 참담했던 기억 앞에서는 무능하게 스크린과 지면을 채울 뿐 희생자를 가둔 가장 깊은 곳의 진실은 여전히 희생자들의 몫이다. 이 책에서 다시 깨닫는 그 날 광주의 실상은, 25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아픔, 이들의 고립, 저들의 은폐, 저들의 폭력이 희생자들에게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방가능 피폭처럼 몸속의 유전자와 시간이 함께 파멸해가는 것이어서, 영원히 치유되지 않고, 계속되는 고통이고, 순간순간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시간과 함께 켜켜히 산처럼 쌓여 점점 더 무겁게 짓눌리는 것이 곧 삶이 되어 버리는, 우리가 한 때 외면하고, 오해하고, 은폐했던 가장 잔인한 역사의 한 장이다.
그 열흘간의 고립이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날의 폭력과, 그 날의 학살과 도륙의 잔인성이 아니다. 그 날의 피와 멍, 찢기고 찔리고 총에 맞아 헤집어진 내장과 머리통과 썩어가는 시체 냄새와 함께 있었던 16세 한 소년의, 16세 나이의 순진하고 맑은 영혼이 삶과 죽음이 공유하는 두렵고 냄새 역겨운 현장 속에서 맞설 수 있었던 고결함의 원천이 어디에서 나왔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소년은 알지 못했다. 단지 소년의 친구, 그 시간 죽어 원혼이 되었을 정대가 먼저 죽었다. 함께 대열에 있던 정대가 총소리와 함께 무너졌을 때 함깨 잡고 있았던 손을 놓쳤고, 공포의 순간이 스쳐간 후 친구의 죽음을 외면했다는 자책감이 소년을 그렇게 했다. 소년은 마르크스의 혁명 전사도 정의의 수호 천사도 아니었다. 왜 태극기로 주검을 덮는지가 궁금했던 한 소년이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지 궁금했던 소년이 은숙 누나에게 들은 대답,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고, 그들은 나라가 아니라는 궁색한 대답을 듣고 혼란스러운만큼 딱 그만큼밖에 역사도, 민족도, 자유도, 민주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소년이었다. 엄마가 찾아와 회유해도 끝까지 도청을 떠나지 않게 했던 소년의, 가슴에 총탄이 박힌 채 다른 소년들과 함께 가지런히 한꺼번에 주검이 되어 도청바닥에 누워있던 사진 한 장 속에 남겨져야 했던 그 소년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맞설 만한 고결함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아마도 지극히 인간적이고 상식적인, 그들이 소년인 나를, 죄없는 나를, 죽이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죽음의 공포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16세 아이였다. 소의 눈망울처럼 순진한 16세 아이의 눈에 비친 도륙과 학살의 현장에서 그토록 순수하고 단순하게 맞서게 했던 것의 실체가 '불의에 맞서는'이라는 말로 설명되어 질 수 있는 단순한 것이었을까.
책을 읽고 꽤 시간이 흘렀다. 책을 덮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한 글자도 적지 못했다. 다른 책도 또 다른 책을 읽었어도 아무 것도 적지 못했다. 적는다는 것의 의미, 생각한다는 것의 한계, 공감하고, 간접경험을 하고, 깨닫고, 알게 되고 책 속의 글자를 통해 하는 정신적 행위가 차고 단단한 벽에 부딪치는 느낌이었다. 모르는 사실을 알았던 것도 아니고, 예상 외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던 것도 아니고, 어쩌면 사진으로 다큐로 다른 종류의 문자로 자주 접했던 내용이었지만, 그 때마다 엄숙하고 숭고한 무엇이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조용히 반추하게 했지만, 공포에 맞선 양심적 선택이 역사적 순간을 외면하고자 하는 내적 이기적 자아를 이길 수 있을까. 소용없다.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그럼 지금 무얼 할 수 있느냐는 것은 또다른 선택이다.
광주가 고립되어 있는 동안, 내가 살던 도시와 대부분의 다른 도시에서는 폭도들이 총을 탈취해 도시를 불태우고 체계를 전복하려 해서 진압되었다는 소식이 뉴스로 나왔다고 했고, 나는 그것을 알지도 못했거나 혹은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해와 달이 엄청나게 많이 바뀌어 광주와 인연이 닿아 살게 되어 처음 찾은 5.18 묘역에서 17세, 18세의 비석을 보았을 때의 먹먹함은 대학 시절 이후 시청각 자료로 접했던 무참했던 사진과 동영상과 글들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이 곳 사람들에게 그 날의 기억에 대해 조심스레 물어보았을 때, 사람들은 그 깜깜했던 5월의 밤을 기억했다. 여학생의 목소리를 기억해 냈다. 2007년 여름 흥행돌풍을 몰고 왔던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이요원이 맡았던 여학생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까만 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르던 광주 시민에게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되는 목소리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극중 이요원이, 영화 속 결혼식장 모두 웃고 있는 단체 사진 속 유일하게 어둡고 무표정한 모습의 이요원이 그 모든 사람들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는 사실 외에, 그 다음 일에 대해 영화는 말할 기회를 잃었다. <소년이 온다>에는 그 다음 이야기가 있다. 차라리 죽음이 더 편했을 그 다음 이야기, 인간으로서 어느 처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고문과 맞닥뜨렸는지에 대해 여자로서 더는 치욕적일 수 없을 가학행위를 받고, 그 기억과 공포와 함께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의 구체적이고 상세한 디테일이 여기에 있다.
가해자들. 그들을 총으로 쏘고, 그들의 시체를 트럭에 퍼 나르고, 개머리판으로 머리통을 빠개고, 잡혀온 사람들을 온갖 이름의 고문으로 세포의 구석구석 상흔을 남긴 그 가해자들은 그럼 누구일까. 가학적이기로 가장 유명한 실험으로 밀그램의 전기고문 실험과 짐바도르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떠올렸다. 인간의 권위에 대응하는 본능을 보여준다는 이 실험은 파시즘과 홀로코스트의 가해자들의 심리를 변호하는 데 쓰였고, 많은 비판을 받았다. 총을 쏜 사람들 중에는 일부러 총구를 하늘로 치켜올려 맞추지 않게 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게 인간의 잔학한 본성을 이해하는 데 무슨 위안이 될까.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 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117
잔혹함. 부당함. 아니아니 그 말은 너무 남용되어왔다. 나는 울지 않기로 했다. 눈물을 흘리지 않기로 했다 나의 값싼 눈물을 내가 사소한 삶의 불평 불만 때문에 눈 밖으로 짜내었던 똑같은 눈물을. 내가 삶의 무게에 짓눌렸다고 징징거릴때 빼내던 똑같은 눈물을. 내가 지는 석양의 고독함에 홀려 충만한 감성이 불러내는 삶의 원초적 슬픔을 느꼈을때 흘렸던 똑같은 성분의 눈물을. 내가 인간 관계에서 상처 받아 이 세상 나만 혼자라고 느꼈을 때 흐느끼던 똑같은 성분의 눈물을. 그 값싼 눈물을 너 16세 소년의 원혼을 향해 흘리지는 않기로 했다. 너는, 혼이 되어 육체가 없이 내게로 온 너는 그렇게 소비될 수 있는 감정으로 닦아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나는 소소한 일을 가지고 너무 그동안 많이 울었다. 쉽게 소비되고 또 다시 채워지고 했던 나의 눈물이 광주 민주화 운동의 학살 앞에 스러져가 혼이 된 너를 향한 마음과 같은 가치가 될 수 없다. 너의 혼은, 너는 죽어서, 왜 죽었어야 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너는 그래서 이 여름, 나에게로 왔다. 작가를 한강을 통해
서정적 예술성을 지향하는 작가가 목적의식을 가진 계몽적 글쓰기를 선택해야만 하는 암울한 시대를 만났을 때 예술성을 버리고 진실을 알리는 일에 경우가 있다. 한강은 예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역사가 결코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될 진실을 전한다. 김형수는 문학적, 창작적, 작가적 가치관을 확립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묶은 그의 글에서 '피할 수도 없고 극복할 수도 없는 것을 감당하는 유일한 길은 그것을 삶으로 송두리째 안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서럽고 몽환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시작에서 우리는 16세 소년의 영혼을 맞는다. 대의가 무엇인지나 알았을까. 자신이 무엇을 위해 거기 서 있는지에 대해, 역사의 무엇이었는지, 그가 그 자리에 서고 달리고 앞으로 진전하고 끝내는 친구의 손을 놓치고 총을 맞고 리어커에 십자 모양으로 실리고, 서러운 혼이 되어 더럽혀진 썩어가는 몸들 사이에 붙잡혀 아른아른 거리고 있었던 것의 의미가, 그것이 어떻게 역사를 바꾸어놓았으며, 그 역사의 수혜자들이 자신의 희생을 어떻게 망각해가고 있게 될지 전혀 눈꼽만큼의 아이디어도 없을 그 순박하기 짝이 없는 정대를, 그의 혼을 묘사할 때, 작가는 시인이다. 값싸게 슬퍼하지 않으면서 진정으로 그 소년의 혼, 갑작스레 죽어 다시는 몸이 될 수 없는 혼이 가까스로 썩어가는 자신의 몸으로부터 멀어져, 우리에게로 다가오는 혼을 향해 눈을 감고 바라보고 안고 공유한다. 깊이 공유한다.
경험이다. 짧막한 어린 시절의 기억과, 기록과 역사를 허구라는 형식으로 엮었지만, <화려한 휴가>를 소비하는 형식으로 혹은 다른 역사 소설을 소비하는 형식으로 이 책을 통해 감정을 자극받거나 카타르시스적 슬픔을 배출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소년을, 자꾸 멀어져가는 소년의 원혼을 붙잡아 멀리 보내지 말고, 기억하고, 다짐하고, 계속해서 경험해야 할 것이다.
* EBS의 지식채널 e에서 실려보내준 영상 속에 이 책의 주인공 동호의 실제 이야기가 약간 있어서 퍼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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