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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9년 11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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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27쪽 | 300g | 148*210*20mm |
ISBN13 | 9788936456221 |
ISBN10 | 8936456229 |
[드라마, 영화로 만나는 소설] 이야기의 형태 - 머그/콜드컵 증정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04일
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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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우아하다고? 에이, 말도 안 돼.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은 들어봤어도 우아한 거짓말은 처음 들어본다. 우아하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져 사전을 검색해 보았다.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라는 뜻이란다. 역시나 거짓말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다. 매력적인 제목에 끌려, 유쾌하게 읽었던 <완득이> 작가의 신작이라는 데 눈이 번쩍 뜨여 책을 집어들었다. 빨려들어가듯 순식간에 다 읽고 난 지금, 제목에 낚인 듯 꺼림칙하다. 친구의 거짓된 말에 삼 년간 시달려온 열네 살 소녀가 자살을 선택했는데, 그런 거짓말을 우아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는가.
내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남겨준 <완득이>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깊었다. 욕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는 싸움꾼 완득이었지만 난쟁이 춤꾼 아빠와 정신지체로 말을 더듬는 삼촌은 최소한 완득이에게 삶의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그를 옆에서 지켜봐 주는 욕쟁이 똥주 선생님도 든든하기만 했다. 그렇게 씩씩하게 삶을 헤쳐나가는 완득이를 바라보며 배꼽 잡고 웃기도 했고 가슴이 후련해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은 아니었다. 주인공인 이천지와 언니 만지가 나올 때만 해도 그럼 천지 동생 이름은 백지겠네, 하면서 가볍게 웃어넘겼다. 페이지를 몇 장 넘기자마자 생일선물로 MP3를 사달라며 엄마를 조르던 천지를 작가는 하늘나라로 보내버렸다.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오늘 죽었다'고 첫 장에서 암시를 줬지만 마음의 준비도 못한 채 급히 떠나보내야만 했다. 뭐가 그리 급했느냐고 작가에게 따지듯 묻고 싶었다.
나는 더 이상 착한 아이가 아닙니다. 때문에 모두 용서하고 떠날 생각은 없습니다. …… 하지만,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 미운 마음만은 버리고 가고 싶습니다. 이기적이지만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털실 뭉치를 남겼습니다. 사과는 하고 가겠습니다. 온전하게 용서하지 못하고 가서, 미안합니다. 이제, 가야겠습니다. 내 몸이 너무 무거워서, 그만 가야겠습니다……. (101쪽)
책 읽는 내내 먹먹했다. 가슴이 답답해 결국 소화제를 먹어야만 했다. 과연 청소년들이 이런 암울한 소재와 거친 표현들을 제대로 소화시킬 수 있을지 염려된다. 소재가 작가의 어릴 적 아픈 기억에서 나온 거라는 사실이 더 마음을 아려오게 한다. 왕따가 기억 속에 잊혀질 무렵 은따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이젠 학교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초등학생마저 뉴스에 보도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살의 이유가 따돌림이 되었건 성적이 되었건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런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을까, 생각하니 애처롭다. 이처럼 예민한 사춘기 시절엔 마음의 작은 생채기 하나도 삶의 끈을 쉽게 놓아버리게 하는구나.
"잘 지내니?"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나를 붙잡았던 말입니다. 늘 안부를 묻던 이모의 저 말이 없었다면,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끝내 어린 생을 놓아버렸을지 모릅니다. 너밖에 없다는, 사랑한다는, 모두 너를 위해서라는 우아한 말이 아닌, 진심이 담긴 저 평범한 안부 인사가 준비해두었던 두꺼운 줄로부터 나를 지켜준 것입니다. 중학생 때겠지요. - 작가의 말 중에서 (226쪽)
내가 오해했었나 보다. 우아한 거짓말은 천지를 괴롭혔던 친구 김화연을 꼬집어 한 말이 아니었음을 작가의 말을 통해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너밖에 없다, 사랑한다, 모두 너를 위해서야, 라고 내뱉는 어른들의 말이 아이들이 보기엔 우아한 거짓말이었던 게다. 작가는 어쩌면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냈는지 모른다. 그 응어리진 아픈 추억들이 작품 속에서 분출된 느낌이다. 아빠를 사고로 잃고 마트 식품코너에서 일하는 엄마와 두 딸 천지와 만지, 엄마를 병으로 잃고 자녀를 거의 돌보지 않는 아빠 밑에서 힘들게 사는 자매 미라와 미란, 돈 버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부모 밑에서 자란 외로운 아이 화연, 처자식 유학 보내고 혼자 쓸쓸히 살고 있는 기러기 아빠 오대오. 뭔가 온전히 채워지지 않은 사람들, 연민으로 감싸 안고 싶은 사람들 투성이다.
책을 읽다 보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퍼뜨린 악의적인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깨닫게 된다. 화연이가 천지를 아예 대놓고 괴롭히거나 삐딱하게 굴었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머리끄덩이를 잡든 욕을 하든 그렇게라도 응어리진 마음을 풀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겉으로는 친한 척 위해주는 척하면서 은근히 따돌리고 뒷담화 하는 화연이를 보니 그 아이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정말이지 화가 난다. 더군다나 낯선 학교에 새로 전학 온 학생을 타켓으로 삼다니… 나쁜 아이 같으니라고! 친구 한 명 없던 천지는 겉으로 친절한 화연이에게 마음을 의지하게 되고, 삼 년간 반복적으로 상처를 받으면서도 꾹꾹 눌러담는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폭발해버린 것이다. 아니 삶을 멈춰버렸다.
"짜장면 때문에…… 나, 죽을 거야……." "이런 살인 짜장을 봤나. 내가 그놈의 짜장에 된장을 확 발라버릴라니까, 걱정 말고 물부터 마셔라." 엄마가 준 컵을 꼭 쥐었습니다. 차가웠습니다. "천지야, 속에 담고 살지 마. 너는 항상 그랬어. 고맙습니다, 라는 말은 잘해도 싫어요, 소리는 못 했어. 만약에 지금 싫은데도 계속하고 있는 일 있으면, 당장 멈춰. 너 아주 귀한 애야. 알았지?" 이제 그만 멈추려고요. 눈물이 자꾸 굵어졌습니다. (110~111쪽)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마음에 묻는다고 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 마음이 더 찢어지게 아프다는 말일 게다. 천지 엄마의 아픔도 이해가 가지만 천지가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상대가 가족 중에도 없었나 묻게 된다. 엄마는 먹고살기 바빠서 딸들에게 무관심했을까? 언니 만지의 무뚝뚝한 성격이 자매간에 대화의 벽을 만든 건 아니었을까? 또래보다 생각이 어른스러웠던 천지가 혼자 짊어지고 가려 한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하자 죽음에 대한 책임을 화연이게만 떠넘길 수도 없었다.
"……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며? 근데, 엄마는 안 그런 거 같아. 그날 다 흘려보낸 것 같아." "가슴에 묻어? 못 묻어. 콘크리트를 콸콸 쏟아붓고, 그 위에 철물을 부어 굳혀도 안 묻혀. 묻어도, 묻어도, 바락바락 기어 나오는 게 자식이야. 미안해서 못 묻고, 불쌍해서 못 묻고, 원통해서 못 묻어." 엄마는 맨밥을 듬뿍 퍼서 우걱우걱 먹었다. "남편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더니……." "근데, 엄마. 부모 복 없는 애는…… 친구 복도 없어." (56~57쪽)
살아가면서 부부간에 꼭 필요한 게 사랑과 대화라고 했던가. 부모와 자식 간에도 적용되는 공식이다. 문득 책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손바닥을 벌려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나비. 슬픈 영혼이 되어버린 천지는 모든 것을 용서한 채 마음의 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우리 곁을 떠나갔다. 천지야! 지금쯤 네 마음은 홀가분해졌겠지. 때늦은 후회 그리고 아릿한 기억들….
이른 아침에 나가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들어오는 아들과 딸들에게 우리는 어떤 살가운 말을 건네며 살고 있는지 묻게 된다. 저자가 일러주는 대로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해대며 "다 너 잘 되라고, 사랑하니까 하는 소리다."라는 말보다는 "잘 지내고 있지?", "오늘 학교에서는 어땠니?"라는 진심 어린 말로 사랑을 표현해주면 좋지 않을까. 아이들이 아무 문제 없이 잘 자라주면 다행이지만 우리 애들은 문제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 자식 가슴속 어디선가 슬픔이 차곡차곡 곪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중한 내 자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09/12/02
Written by Da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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