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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8년 04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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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600쪽 | 958g | 149*221*31mm |
ISBN13 | 9788936475604 |
ISBN10 | 8936475606 |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0월 31일
10월의 굿즈 : POINT OF VIEW 북커버/스탬프/유리 티포트/페이퍼 아크릴 문진/북 백/저널 노트
2024년 09월 30일 ~ 2024년 10월 31일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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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계공졸(不計工拙)'은 "잘되고 못되고가 가려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추사가 추구한 무심한 예술의 경지를 나타냅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한국 문인화의 최고봉으로 손꼽히고 국보 180호에 지정된 <세한도>가 요즘 교과서에는 어떻게 실려 있고, 선생님들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요. 제가 교과서에서 봤던 것처럼 다른 분들도 대개 고졸한 풍경의 집과 나무를 떠올리실 겁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대부분의 이미지도 그렇고요. 그러나 이 그림의 반만 보고 평가하는 100프로 잘못된 감상입니다. 이 그림과 같이 있는 추사의 글씨까지 전체를 봐야 합니다.
“<세한도>는 구도와 묘사력 따위를 따지는 화법만이 아니라 필법과 묵법의 서법까지 보아야 제맛과 제멋과 제 가치를 알 수 있다. 또 ‘세한도’라는 화제 세 글자와 ‘우선시상 완당(藕船是賞阮堂)'이라는 낙관이 그림의 구도에 무게와 안정감을 주면서 그림의 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중략)… 이 <세한도>에서 더욱 감동적인 면은 서화 자체의 순수한 조형미보다도 그 제작 과정에 서린 추사의 처연한 심경이 생생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림과 글씨 모두에서 문자향과 서권기를 강조했던 추사의 예술세계가 소략한 그림과 정제된 글씨 속에 흥건히 배어 있다는 것이 이 그림의 본질이다. <세한도>의 진가는 그 제작 경위와 내용, 그림에 붙은 글씨의 아름다움, 그리고 갈필과 건묵이라는 매체 자체의 특성에 있다. 즉 그림과 글씨와 문장이 고매한 문인의 높은 격조를 드러내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즉, 추사가 누누이 강조한 학문과 예술의 일치를 보여줍니다. 한국 문인화의 최고봉이라는 의미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세한도>가 그려진 이후 사연도 이 그림의 진가를 알려줍니다. 그런 평가가 나오기까지 배경 설명이 좀 필요하겠군요.
추사는 어려서는 북학파의 석학 박제가의 제자였지요. 박제가는 청나라 연경을 자주 오가며 그곳의 많은 학자들과 교류하였고, 추사와 중국 학자들 간의 다리를 놓아주었죠. 부친 김노경이 외교사절로 연경으로 갈 때 추사도 함께 가 청나라 학자들과 본격적으로 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청조 문화의 일인자 평을 듣고 있는 운대 완원과 담계 옹방강을 평생의 스승으로 만납니다. “추사는 옹방강과의 만남으로 보담재(寶覃齋)라는 당호를, 완원과의 만남으로 완당(阮堂)이라는 아호”를 갖게 되었죠. 이들의 엄청난 자료와 저술들을 보았고 평생 교류하게 되는데, 이후 추사는 금석학과 고증학에 전념하는 계기, 학식의 정확한 토대를 세우는 학문의 자세를 가지게 됩니다. 추사의 학문세계는 그가 1816년 31세 지은 책 제목 「실사구시설」로 요약됩니다. ‘실사구시’를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내건 명구로 생각하는데, 그 구호는 “청나라 고증학의 개조인 고염무가 주창한 캐치프레이즈”로,『한서(漢書)』에 나오는 “사실에 의거하여 사물의 진리를 찾는다”라는 표현이 연원입니다. 1811년에 옹방강이 추사에게 ‘실사구시’라고 써서 보내준 편액도 있습니다.
추사는 “학문하는 방도는 굳이 한나라, 송나라로 나눌 필요 없이, 심기(心氣)를 고르게 하고 널리 배우고 독실하게 실천하면서 의거하여 진리를 찾는 자세로 나아감이 옳다(한송불분론漢宋不分論)”라고 합니다. 이것과 더불어 추사는 고증학의 기본 정신이라고 할 ‘입고출신(入古出新, 옛 것에서 새로움이 나온다)도 강조하지요. ‘실사구시’와 ‘입고출신’은 추사 평생의 정신이며 그의 학문을 설명합니다. 추사는 음운학·천문·경학·역사지리학·주역·노장·불교와 시·문장·서예·전각 등 전방위로 공부했고 연결할 줄 알았으며, 글씨도 전·예·해·행·초서에 통달해 자유자재로 썼습니다. 추사의 개성과 파격은 중국 서예사 2천 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고 뛰어넘은 듯하지요. 그래서 '괴(怪)'하다는 평이 격찬으로도 험담으로도 추사 생전 내내 따라다녔죠. 그러나 후대에 청조 고증학을 연구하던 후지쓰카 지카시는 추사를 “청조학 연구의 제일인자”라고 평했고, 중국의 학자들도 추사가 중국의 학자였다면 제일가는 명필로 꼽혔을 거라 말하죠. 우린 이것도 알아야 합니다. 추사는 부유한 명문가 출신이어서가 아니라 부단한 노력으로 스스로 선 천재라는 것을.
“내 글씨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칠십 평생에 나는 벼루 열 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네.”
(평생의 벗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늘이 총명을 주는 것은 귀천이나 상하나 남북에 한정되어 있지 아니하니 오직 확충하여 모질게 정체(精彩)를 쏟아나가면 구천구백구십구 분은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나머지 일 분이 인력(人力) 바깥에 있는 것도 아니니 끝까지 노력해야만 하는 거라네.”(석파 이하응(흥선대원군), 역매 오경석 같은 제자에게 수련을 강조하며 한 말)
추사가 일곱 살 때 쓴 「입춘첩」을 보고 채제공이 예언하기도 했듯이 추사는 너무 뛰어나서 오히려 더 화를 당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부모에 대한 효심이 깊었고 벗과 제자를 돕고 가르치는데 아낌없는 그였지만, 완벽주의자이고 너무 똑똑해 성격이 원만하지 않은 것도 있어 적도 많이 만들어 조정에서 안동 김 씨의 세력이 커질 때마다 고초를 당했죠. 그래서 제주도와 북청으로 유배를 두 번이나 가게 되지요. 이쯤에서 추사 생애를 보는 구분을 좀 볼까요.
㊀ 1786~1809년(1~24세): 출생부터 연경에 다녀오기까지 청년 수업기.
㊁ 1809~19년(24~34세): 대과에 합격하기까지 10년간의 학예 연찬기.
㊂ 1819~40년(34~55세): 출세해서 관직에 있는 21년간의 중년기.
㊃ 1840~49년(55세~64세): 8년 3개월간의 제주 유배기.
㊄ 1849~56년(64~71세): 해배 후 서거까지 8년간의 만년기.
-1849~51년(64~66세): 해배 후 용산에 살던 2년 반의 강상시절
-1851~52년(66~67세): 북청에 1년간 유배된 북청 유배시절
-1852~56년(67~71세): 해배 후 서거까지 4년의 과천시절
<세한도>는 추사가 제주 유배시절에 제자 이상적이 연경에서 많은 책을 구해 제주까지 보내주는 정성에 감격해 헌사한 작품이지요. 이상적은 연경에 갔을 때 오찬 자리에서 <세한도>를 16인의 청나라 학자들에게 보여줬고, 추사의 명성을 익히 아는 이들이 시나 문장으로 제(題)와 찬(贊)을 붙였지요. 이것을 이상적은 표구를 하게 되는데 <세한도>는 원래 크기 23.3×108.3cm에서 「청유 16가의 제찬」이 붙은 이후로 지금은 14m가 넘는다고 합니다. <세한도>는 추사의 지인뿐 아니라 문인들도 여럿 따라 그릴 정도였고 매너리즘에 빠진 당대에 새로운 문인화의 예가 되었습니다. <세한도>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되기까지의 드라마 같은 사연은 책에서 확인해 보세요. 이 작품이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일 수밖에 없는 사연이 절절합니다.
제주 유배는 추사 인생과 글에서 매우 큰 변곡점이었습니다. 추사체를 잘 아는 박규수, 청명 선생과 동주 선생의 평처럼 전한 시대 예서부터 왕희지, 구양순, 옹방강 등 서학(書學)을 연구하고 임모(글씨나 그림 따위를 본을 보고 그대로 옮겨 쓰거나 그림)하며 자신의 서체를 만들어온 추사가 진정한 추사체를 완성하는 ‘입고출신’을 이뤄낸 것이 제일 큰 성과겠죠. 삶과 앎의 어우러짐을 깨달은 추사가 유배가 끝나자마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사과를 해야 될 이들에게 찾아가는 모습은 정말 훈훈했습니다. 그러나 9년의 유배 기간 동안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한 차례 더 유배 생활을 했던 것, 그가 죽기 전까지 부친과 자신의 사면 복권을 보지 못한 건 안타까웠습니다. 추사가 죽는 날까지 ‘실사구시’와 ‘입고출신’의 정신으로 공부하고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었던 건 어려울 때에도 함께했던 인복 덕도 있었다고 생각되더군요.
책 가득한 추사의 글씨와 변천사, 그의 그림 중 특출난 난초 그림 비롯 각종 편지들, 그의 교우 관계와 인생 이야기, 영향을 받은 중국 서예 자료들과의 비교 등을 풀어놓는 유홍준 선생의 글이 물 흐르듯 흘러 일목요연하게 잘 이해됐습니다. 추사에 대한 자료 조사가 여전한 와중에 주석과 고증으로 가득한 책은 일반 독자가 접근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미흡함과 오류가 많았다고 밝히신 유홍준 선생의 전작 『완당평전』이 이 책의 ‘입고출신’ 계기가 된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학문과 예술, 추사의 작가성과 인간성을 다 잡은 이 전기 형식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백벽(百蘗)’의 점수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추사에 대한 도전이 끝은 아니시겠지요. 학문과 예술을 별개의 것으로 보거나 예술을 그저 기술이나 재주, 위안거리로 여기는 세태에서 추사는 얼마나 귀감이 되는 존재인지!
기백 넘치고 유려하던 추사의 글씨와 너무 달라 마지막 글씨 <판전(板殿)>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진정 '불계공졸'로 받아들일만 한가 의문이었는데, 유홍준 선생 해석 이상으로 생각하기 어렵겠기에 끄덕하고 말았습니다. 다음에 쓰실 추사 책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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