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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3년 04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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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03쪽 | 510g | 140*210*30mm |
ISBN13 | 9788932023939 |
ISBN10 | 893202393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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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30일 ~ 2024년 10월 31일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19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이기호 작가의 ‘김 박사는 누구인가?’를 읽었다. 단편 소설집 한권을 다 읽는 일은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비슷비슷한 내용으로 보통 7편 정도가 수록되어 있는데 몇 편 읽다보면 지치기 일쑤다. 그래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이 수록된 그리고 한번쯤 더 인정받은 문학상 수상집을 즐겨 본다. (그렇게 오랫동안 단편소설을 습작해온 나도 이러니 다른 사람들은 어떠하겠는가!)
이기호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래서 ‘최순덕 성령 충만기’와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다 읽었지만 고백하자면 대충 읽었다. ‘최순덕 성령 충만기’에 나오는 시봉이던가 그 엉뚱하고 잔인한 친구들은 상대하기가 버거웠다. 이상하게도 이기호 작가의 소설은 재미있지만 읽기 힘든 묘한 구석이 있었다. ‘김박사는 누구인가?’도 그랬다. 틀림없이 재미있는데 뭔가 허덕이게 만드는 힘들게 만드는 구석이 있어서 허허실실 훑어가며 읽었다. 그렇게 읽다가 그만 턱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작가가 앞다리걸기로 나를 잡아 넘겼다. 아차차 나는 급하게 다시 시작했다. 결코 심심풀이로 읽어버릴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작가의 말은 몇 번이나 들어서 익숙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랩을 하듯 ‘이 무슨 개나리 꽃망울 같은 일인가’, ‘이 무슨 복사씨와 살구씨 같은 일인가’ 하는데 큭큭 웃었다. 그런데 소설을 읽고 나서 다시 작가의 말을 읽는데 그만 목이 콱 메었다. 가끔 그런 경험이 있다. 단편 소설을 읽다 목이 콱 멘다든지 아니면 아예 통곡을 해 버린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김 박사는 누구인가?’는 통곡까지 가지는 않고 목이 메고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왜 인지 모르겠다. 그건 읽어야 할 일이다.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과 ‘화라지송침’은 반복해서 읽었고 ‘탄원의 문장’ 과 ‘내겐 너무 윤리적인 팬티 한 장’은 아주 꼼꼼하게 정독했다. 하지만 역시 두 번 읽어야 최소한 제목의 의미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밀수록 가까워지는’은 어느 날 삼촌이 두고 간 후진하지 못하는 프라이드를 화자가 끌고 다니면서 펼치는 이야기다. 삼촌은 애인처럼 아끼는 프라이드 자동차를 후진이 되지 않도록 일부러 패킹을 제거했다. 왜 그랬을까? ‘화라지송침’은 어린 시절 많은 신세를 진 종조부의 손자 재종형제를 잠시 떠맡은 부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내의 은인집안 형제를 선의로 보살피던 화자의 깨달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모두 독자가 짐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진다. 어느 것 하나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읽는 독자의 마음에 파장이 생긴다. 이런 걸 보고 우리는 좋은 소설이라고 한다.
이기호 작가의 이야기 서술 방식은 말하고자 하는 지점을 직접서술하지 않고 독자를 몰아서 간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양이나 오리가 된 것만 같았다. 이기호 작가가 모는 대는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여기서 잠깐 저기서 잠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틀어주기만 했지 정확히 어디를 가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화라지송침’에서 15년간 양돈사에서 노예 상태로 있던 기봉 씨를 보살피던 화자는 불현듯 아내가 왜 기봉에 대해 쌀쌀맞게 대하고 왜 기봉 씨가 온 이후 자신마저 외면하는지 깨닫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독자가 눈치껏 알아채야 한다. 그래서 두 번 읽고 조금 알아차렸다. ‘선의’라는 이름이 가진 폭력성과 그 선의를 받은 사람의 복잡한 심경을 말이다. 그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마음들을 이기호 작가는 양 몰듯 몰아서 우리에게 보여주었고 그걸 다 본 나는 결국 울컥하고 말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은 베르나리 키리니의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는 대단히 논리적이고 계산된 엉뚱한 이야기들이었다. 수학적인 허풍이랄까! 이적이 안 쓰는 뇌를 쓰고 싶을 때 외국 원서를 읽는다고 했는데 나처럼 외국어를 읽기에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 뇌의 안 쓰는 부분을 건드리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을 책이다. 그런데 이런 책은 머리로 읽는다. 진짜 머리만 가지고 읽어서 절대 코끝 찡할 일이 없다.(이기호 작가도 사실 엉뚱하기로 치면 누구 못지않다.) 번역서는 머리로 읽고 우리 소설은 가슴으로 읽는다. 모국어가 치고 들어오는 영역은 확실히 다르다. 아, 모국어가 없는 사람은 집이 없는 것과 같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김 박사는 누구인가?’ 꼭 읽어보시라 추천할만한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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